
אָהַב (아하브) - 사랑하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자식만큼 사랑스러운 존재가 또 있을까?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신뢰를 떠나서 얼마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을까? 물론 이삭이 자라면서 부모를 전혀 괴롭히지 않았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부모 속을 전혀, 단 한 번도 안 썩힌 자식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목사로 거룩한 척 살아가는 나부터가 얼마나 부모 속을 많이 썩인 자식인 줄 알게 되면 다들 입에 거품을 물거다. 얼만큼을 상상하건 그 이상일 테니까.
오죽하면 내 어머니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런 기도를 해 오셨다고 한다. "주님, 동보는 제가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맡기오니 하나님께서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 해주시옵소서."라고 말이다. 기도라 그렇지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포기'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포기’란 아예 내던지듯 버리는 '유기'와는 다르다. 포기하지 않으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그 초토화의 상황 앞에서 어머니는 눈물의 심정으로 '내려놓음'을 기도하셨다. 그리고 나로 인해 가슴 아팠던 그 수많은 일들을 의도적으로 잊으신 듯하다.
이삭이 나만큼 문제아였을리는 없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자식이라는 존재는 기쁨과 후회와 분노와 눈물 속에서 사랑이라는 싹을 틔우는 존재라 본다. 나 역시 자식이 있다. 그것도 셋이나 있다. 때론 화가 나고, 때론 후회되기도 하고, 때론 눈물 나기도 하지만, 그들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기쁨과 환희를 주곤 한다. 그러다 보니, 그 기쁨과 환희 때문에 후회와 분노와 눈물을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 아니, 의도적으로 잊어버리려 한다.
부모 자식의 관계이든 연인의 관계이든 혹은 부부의 관계이든 사랑하는 관계에는 이 같은 '의도한 건망증'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 '의도한 건망증'이 없다면, 자꾸 지난 일들을 들춰내며 서로가 고통 속에서 시간을 허비한다면 그 관계를 과연 '사랑'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만약 사랑한다면, 종종 그 징표로 '의도한 건망증'을 확인하길 바란다. 물론 '아무때나'는 절대 아니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