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변이나 매체에서 초등학교 첫사랑 이야기는 가끔 들어봤어도 유치원 첫사랑 이야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듯하다.
나는 아내를 유치원에서 처음 만났다. 내 기억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마치 서양 여자아이처럼 생긴 데다가 머리도 노랗던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유난히 작고 예쁜 어린이였다. 45년 전 내 기억 속 아내의 모습은 항상 양갈래 머리를 땋은, 짱구 이마가 유난히 귀엽고 예쁜 아이다. 그 이마를 딸아이가 쏙 빼닮았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중고등학생 시절, 나는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됐다. 잠깐 동안 좋은 마음으로 사귀게 되었지만, 아내의 입시와 더불어 여러 요소들의 방해로 인해 나는 버티지 못하고 그 손을 놓고 말았다. 그 요소들 중에는 장인어른도 한몫하셨다. 물론 지금은 나도 딸이 있으니 충분히 이해는 간다. 교회에서 양아치로 소문난 녀석이 내 딸을 좋아한다고? 살려둔 게 다행이다.
시간이 흘러 20대가 되었을 때에도 난 기회를 잡지 못했다. 아내는 유학을 갔고, 유학을 다녀와서는 결혼을 했다.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모두 놓쳐버렸다.
결국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아내와 결혼하게 되었다. 정말 긴 시간을 돌고 돌아서 왔다. 유치원 때부터라고 한다면, 40년을 돌아 왔다. 중ㆍ고등학생 시절부터라고 한다면, 30년을 돌아서 왔다. 20대라고 쳐도 20년 이상을 돌고 돌아 왔다. 아내가 이혼을 하고 난 뒤, -마치 45년 전 내가 서성거렸던 것처럼- 내 근처를 서성거렸다던 그때부터라고 쳐도 10년 이상을 돌고 돌아 왔다.
45년의 인연이다. 아내와 나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있었겠는가. 얼마나 간절하면서도 원망스러운 시간들이었겠는가. 아내는 그 시간들을 버텨내기 위해 얼마나 혼신의 힘을 짜내며 살아왔겠는가. 주변의 왜곡과 오해 속에서 얼마나 외로운 시간들을 눈물로 보내왔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 정말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종종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빠, 총각으로 기다려 줘서 고마워."라고 말한다. 난 그 말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는다. 대신 잠들어 있는 아내의 이마와 얼굴을 만지며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내가 너무 늦었지?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