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바논 남부, 리타니강이 굽어 보이는 푸른 언덕 꼭대기에 오래된 성 하나가 서 있다. 보퍼트 성이다. 십자군이 12세기 무렵 옛 요새 위에 다시 쌓아 올린 이 돌의 이름은, 옛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요새'를 뜻한다. 그러나 이 성이 지나온 세월은 그 이름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십자군이 떠나자, 살라딘의 군대가 들어섰고, 맘루크와 오스만이 차례로 깃발을 꽂았으며, 프랑스 위임통치군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머물다 갔다. 그리고 1982년, 당시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이 이끈 이스라엘군이 PLO로부터 이 성을 빼앗으며 큰 승리를 거둔다. 성은 말이 없다. 발치를 흐르는 강물처럼, 정복자들이 왔다가 사라지는 풍경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그 침묵의 성 위로, 2026년 5월 31일 다시 이스라엘 국기가 내걸린다. 이스라엘군이 26년 만의 최대 규모 진격 끝에 보퍼트 능선을 장악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26년이라는 숫자는 의미심장하다. 2000년 철군 이후 가장 깊숙한 침투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 세대 전, 이스라엘은 18년간의 점령을 끝내고 이 땅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 그들은 다시 같은 언덕을 오른다. 여기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은 왜 레바논을 가만두지 못하는가.
첫 번째 답은 강의 이름 속에 있다. 리타니강이다. 2006년 전쟁 이후, 이 강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의 완충지대를 가르는 유엔이 선포한 경계의 북쪽 끝이었다. 말하자면 '여기까지'라는 보이지 않는 선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이스라엘군은 그 선을 넘는다. 며칠간의 격전과 공습 끝에 리타니강을 건너 나바티예 인근의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하고, 헤즈볼라 기반 시설을 해체해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직접적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다.
현재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의 거점 도시 나바티예에서 불과 5킬로미터 거리까지 다가섰다. 표면적 명분은 명료하다. 국경 너머 갈릴리 마을들을, 메툴라의 주민들을 미사일과 로켓으로부터 지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 하나를 건너는 일에는 늘 그 이상의 욕망이 흐른다. 이스라엘은 현재 레바논 영토의 약 2천 제곱킬로미터, 곧 국토의 5분의 1에 가까운 땅을 점령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시선이 날카로운 까닭이 여기 있다. 한 분석가는 헤즈볼라를 리타니 이남에서 몰아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작전은 그 지역에 머물렀을 텐데, 더 북쪽까지 소개령을 확대하는 것은 더 깊은 안보 벨트를 구축하고 장기적 영토 통제의 조건을 만들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진단한다.
안보라는 단어는 종종 점령이라는 본심을 가리는 외투가 된다. 실제로 이스라엘 정부 안에서도 온도차가 있다. 카츠 국방장관은 헤즈볼라 무장 해제를 조건으로 리타니까지 '안보 구역'을 유지하겠다고 했으나, 스모트리치 재무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북쪽 국경을 아예 리타니강을 따라 다시 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완충지대와 영구 점령 사이, 그 위태로운 경계에서 한 나라의 운명이 흔들린다.
두 번째 답은 더 깊은 역사의 지층에 묻혀 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사실상 전쟁 상태에 있어 왔다. 1982년의 침공, 2000년의 철군, 2006년의 전쟁, 2024년의 충돌, 그리고 다시 2026년. 이번 라운드는 올해 3월 초에 시작됐다. 거의 한 세대마다 같은 비극이 되풀이된 셈이다. 헤즈볼라라는 이름의 무장 정파가 국경 너머에 존재하는 한, 그리고 그 배후에 이란이 버티고 있는 한, 이스라엘은 북쪽 국경을 결코 안심하지 못한다. 이번 공습이 헤즈볼라와 긴밀히 협력하는 이란 부대의 미사일 부대 지휘관을 겨냥했다는 사실은, 이 전쟁이 단지 레바논만의 전쟁이 아니라 더 큰 판의 한 조각임을 말해 준다.
가장 아픈 답은 마지막에 있다. 그것은 사람의 몫이다. 이번 라운드의 전투로 레바논에서 3,350명이 목숨을 잃고 100만 명 넘는 사람이 삶의 터전을 떠났다. 이스라엘 측에서도 최소 25명의 군인과 한 명의 방위 계약자가 남부 레바논 일대에서 전사했고, 북부 이스라엘에서도 민간인 두 명이 숨졌다. 숫자는 무심하지만, 그 하나하나는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딸이었다.
이스라엘은 리타니강에서 자흐라니강에 이르는 지역을 교전 지대로 선포했고, 일부 주민은 떠났으나 여전히 많은 마을에 사람이 남아 있다. 더 비통한 것은, 이 모든 일이 휴전 협정이 있는 상태에서 벌어진다는 점이다. 4월부터 명목상의 휴전이 이어졌지만, 양측은 서로 위반을 비난하며 포화를 멈추지 않았고, 이스라엘과 레바논 당국자들이 워싱턴에서 직접 협상을 벌이는 와중에도 진격은 계속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보퍼트 점령을 두고 이스라엘 전략의 "극적인 변화"라 칭하며 레바논에 대한 장악을 확대하겠다고 공언한다. 유네스코가 2024년 전쟁 당시 보퍼트 성을 포함한 34곳의 문화유산에 강화된 보호를 부여했음에도, 이번 점령 앞에서 깊이 우려한다는 성명을 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오래된 성을 다시 떠올린다. 십자군과 살라딘과 오스만과 PLO와 이스라엘이 차례로 깃발을 바꿔 단 그 언덕을. 인간은 돌로 요새를 쌓아 영원을 꿈꾸지만, 정작 그 돌이 지켜본 것은 오고 가는 정복자들의 덧없는 행렬뿐이다. 강은 여전히 흐르고, 백향목은 여전히 푸르건만, 사람만이 그 땅 위에서 끝없이 피를 흘린다.
한 세대가 철군하면 다음 세대가 다시 진격하고, 평화 협정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포성이 울린다. 보퍼트 성의 돌들이 만약 입을 열 수 있다면, 그들은 무어라 말할까. 아마도 가장 깊은 한숨으로 이렇게 묻지 않을까. 너희는 대체 몇 번을 더 이 언덕을 오르내려야 끝이 나겠느냐고. 정복하는 자가 영웅으로 기록되는 이 땅에서, 우리가 정작 우러러야 할 이름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 칼을 들어 언덕을 빼앗는 손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 곁에 끝내 평화의 씨앗을 심는 그 손을 우리는 언제쯤 영웅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