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אֹיֵב (오예브) - 원수, 적대자
- 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출 23:22)
난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할아버지는 원래 전라도 분이셨는데, 어릴 적에 경상도로 오셔서 할머니를 만났다고 한다. 두 분 모두 원래 가난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 후 할아버지는 운전을 하시다가 버스회사를 운영했고, 할머니는 일종의 사채업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쌓으셨다. 내가 서너 살쯤 되던 당시 할머니 댁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 있는데, 포항에서는 소위 '청기와집'이라고 불리던 어마어마한 집이었다. 물론 집안일을 하는 분들도 계셨다.
할아버지는 깐깐하고 성질이 못되기로 소문난 분이셨다고 한다. 할머니 역시 무당을 섬길 정도로 드센 분이셨다고 한다. 나는 장손이라 항상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깐깐하고 못된 성질이나 할머니의 드센 성질을 직접 느낄 수는 없었다.
그러다 내가 국민학교 -당시에는 국민학교였다- 다니기 전에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다. 할머니에게서 돈을 빌려간 사람들은 돈을 떼먹고 달아나곤 했고, 할아버지는 그 훨씬 이전부터 외도와 노름으로 이미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가세가 기울고, 할아버지의 영향력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원래 말씀이 없으셨던 건지, 말씀이 없어지신 건지는 모르지만 할아버지는 말씀을 별로 하지 않으셨다. '야이, 웬수야'라는 할머니의 악다구니에도 그저 입을 닫으셨다.
과연 할머니의 "야이, 웬수야"는 원망이었을까? "이제라도 나를 좀 바라봐 달라"는 여자로서의 애절한 호소는 아니었을까? 어쨌든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할머니에게 그 어떤 사과도 고마움도 표현하지 않으셨다.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도 할머니에게 있어서 할아버지는 그저 철천지 원수였다.
가끔 관계가 좋아진 부모님을 보거나 아내의 다정하고 귀여운 모습을 보면,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립기도 하다. 아내는 할아버지를 뵌 적이 없다. 큰손자며느리를 보셨다면, 할아버지도 얼마나 예뻐하셨을까 싶기도 하다.
그나저나 참 궁금하다. 지금 두 분은 다시 만나셨을까? 아직도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야이, 웬수야'라고 부르실까?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