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막은 가나안 정복과 사사시대를 통과하는 내내 실로에 있었습니다. 그 기간은 대략 3백 년 정도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성막에서 법궤는 사사시대 말기에 이탈한 셈입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며 치열한 전투가 벌어집니다. 2차 아벡 전투 이후 법궤는 지성소를 떠났습니다(삼상 4:11). 블레셋은 법궤를 전리품으로 여겨 다곤 신전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신전에 있던 다곤 신상이 법궤 앞에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엔 손발이 부러지고 목도 부러지지 않았습니까? 일곱 달 동안 블레셋 신전들은 폐허처럼 변합니다. 급기야 블레셋은 견딜 수 없어 법궤를 이스라엘로 되돌려보냅니다.
블레셋은 법궤를 이스라엘 땅 벧세메스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 안을 들여다보다 떼죽음했습니다. 그 결과 법궤는 기럇여아림 아비나답 집으로 옮겨집니다(삼상 7:1). 어수선했던 법궤 이동이 일단락되고 20년이 흘러갔습니다. 그 무렵 선지자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이게 합니다. 이스라엘은 그곳에서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 손길을 구합니다. 사무엘은 무엇보다 먼저 어린 양을 잡아 번제로 드렸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모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군대를 동원합니다. 블레셋이 쳐들어오자 이스라엘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치시자 이스라엘은 담대해집니다. 그렇게 전투에서 이기며 에벤에셀을 기념합니다(삼상 7:12). 사무엘은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며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또한 고향 라마로 돌아와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습니다(삼상 7:17). 그러나 사무엘 행적을 샅샅이 살펴보십시오. 아쉽게도 실로와 기럇여아림을 찾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실로에는 성막이, 기럇여아림에는 법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리는 사무엘이 전혀 이 두 곳을 찾지 않았습니다.
실로와 기럇여아림을 찾지 않는 신앙회복 운동은 어떤 의미입니까? 어린 시절 사무엘 추억이 고스란히 남은 곳은 어디입니까? 고향 라마보다는 성막이 있는 실로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사무엘에게 라마는 추억이랄 게 없습니다. 그런데도 상속받은 자기 집이란 이유로 라마를 중요시합니다. 그렇게 성막에서 자란 어린 시절은 깡그리 외면했습니다. 그나마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모하며 이름을 부릅니다. 하지만 신앙회복을 주도한 사무엘은 성막과 법궤를 놓쳤습니다. 아니, 어쩌면 기억 속에 아예 없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사무엘이 은퇴 시기를 저울질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무엘 뜻대로 고분고분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는 파격이 시도됩니다. 초대 왕 사울이 등장하며 성막과 법궤는 어떤 변동이 있었습니까? 법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실로에 있던 성막은 기브온으로 옮겨졌다고 보입니다. 다윗이 사울 눈길을 피해 도망치다가 제사장에게 진로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아울러 식량과 무기까지 구했습니다. 그때 아히멜렉 제사장이 제사상에서 물려낸 떡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의 칼도 주었습니다(삼상 21:9). 그 여파로 사울은 제사장 85명을 학살했습니다(삼상 22:18-19). 이후 성막은 실로에서 기브온으로 옮겨졌다고 짐작됩니다(대상 21:29-30).
그러면 법궤는 언제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졌습니까? 그 시점을 확인하기는 조금 모호합니다. 하지만 가능한 접점은 있습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드물게도 아들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예루살렘 초기에 압살롬이, 마지막에는 아도니아가 들고 일어났습니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는 잠시 예루살렘까지 빼앗겼습니다. 압살롬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사독 제사장이 법궬르 옮겼습니다. 그때 다윗이 사독에게 법궤를 다시 예루살렘 성안으로 옮겨두라고 명합니다(삼하 15:25). 따라서 법궤 이동은 예루살렘에서 왕이 된 초기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법궤가 성막에서 이탈한 후 대략 백 년 정도 흐른 시점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법궤에서 무엇을 느꼈기에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까? 잘 아는 대로 법궤를 처음 옮길 때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새 수레에 법궤를 싣고 이동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곤 타작마당에 이르러 소가 날뛰는 바람에 웃사가 죽었습니다. 법궤가 곤두박질 칠 위기 상황인지라 급하게 웃사가 법궤를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도대체 법궤 이동에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사실 법궤는 레위 지파가 몸으로 짊어지고 이동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레위 지파를 소집하지 않고 통상 이동 수단을 활용했습니다. 물론 다윗은 나름 최상으로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지키던 사람이 죽는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다윗은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재점검합니다. 그리고 이내 무엇이 문제인가를 파악합니다. 성막과 성전, 그 결정적 차이가 무엇입니까? 성막은 이동할 수 있으나 성전은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 이동과정에 구름 기둥이라는 하나님 주권이 드러납니다. 반면 성전은 하나님 주권이 드러날 장치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성막과 성전은 또 다른 차이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구별하여 세운 레위 지파가 해야 할 일, 곧 역할이 달라집니다. 성막에서는 모든 레위 지파가 각자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반면 성전은 이동하지 않는 만큼 레위 지파 역할이 최소화되고 제한적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희생 제사와 연관된 소수 인원만 필요합니다. 그러니 제사장을 제외한 나머지 레위 지파는 사실상 실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막 이동이 레위인에게는 자긍심이자 생존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옮겨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레위 지파 역할은 약화되고 끝내는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나섰는데 반대하기도 난감합니다. 그러니 레위 사람들은 모두가 입을 꾹 다물고 침묵합니다. 1차 법궤 이동이 실패한 후 다윗이 깨달은 상황입니다. 레위 지파 도움 없이는 법궤를 옮길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레위 지파를 다독일 방책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다윗은 레위 사람들에게 새로운 직책을 만들어줍니다. 성전 관리자 2만 4천 명, 관원과 재판관 6천 명입니다. 더구나 이 모든 직책이 세습직 아닙니까? 그러니 레위 지파가 다윗에게 조언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결과 법궤는 무사히(?) 예루살렘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옮겨진 법궤는 임시장막에 놓였습니다. 그 앞에서 새로 구성된 성가대가 찬송합니다.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대상 16:4)
다윗은 찬송, 그 의미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습니다. 시편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연 궁켈(H. Gunkel)을 보십시오. 그는 시편 유형을 찬양시, 감사시, 탄원시로 분류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는 다윗이 성가대를 세우며 지시한 그대로 아닙니까? 다윗은 놀라울 만큼 정교하게 시편 성격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시편이 처음부터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나를 보여줍니다.
그만큼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찬송하는 의미를 확실히 알았습니다. 문제는 그런 다윗이 찬송을 어디에서 하라고 지시했습니까? 더구나 레위 사람을 세워 섬기라고까지(minister) 명령합니다. 이는 법궤 앞에서 지속 가능한 예배를 암시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성공한 법궤 이동과 함께 레위 지파는 직책이 달라집니다. 이후 레위 지파는 다윗 왕가와 남다른 결속력을 보입니다(대하 11:14).
따라서 법궤 이동에는 신앙인 다윗과 정치인 다윗이 교차합니다. 그 교묘하게 뒤엉킨 결과는 향후 치열한 성전논쟁 예고편입니다.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은 두 나라로 분열됩니다. 열 지파로 구성된 북이스라엘과 두 지파만 남은 남 유다로 나뉩니다.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1세는 예루살렘 성전예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통치합니다. 그렇게 벧엘(Bethel)과 단(Dan)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웁니다. 소위 예루살렘 성전을 대체한 새로운 성전인 셈입니다. 그는 또한 제사장과 절기마저 편리하게 바꾸었습니다(왕상 12:25-33).
이를 계기로 남북 두 나라 사이에 심각한 성전논쟁이 시작됩니다. 첫 주제가 하필이면 하나님의 집이 벧엘인가, 예루살렘인가입니다. 벧엘은 말뜻이 하나님의 집, 예루살렘은 평화의 집입니다. 그러니 언어유희(word play) 같은 질문을 여로보암이 던진 셈입니다. 성전은 곧 하나님의 집인데, 그 질문을 교묘하게 뒤틀어 내놓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집이 하나님의 집이냐 평화의 집이냐고 묻습니다. 말뜻만 보자면 벧엘이 하나님의 집 아닙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집은 벧엘이지 예루살렘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더구나 벧엘은 이스라엘 실제 조상인 야곱이 서원한 땅이기도 합니다(창 28:20-22). 또한 이스라엘 기틀을 다진 선지자 사무엘이 순회하며 통치한 곳에 벧엘은 있어도 예루살렘은 없습니다.
이 심각한 성전논쟁에 예루살렘 성전이 내놓은 답변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은 과연 벧엘을 뛰어넘을 하나님의 집, 신학 주제가 있기나 합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