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95문
Q. To whom is baptism to be administered? A. Baptism is not to be administered to any that are out of the visible church, till they profess their faith in Christ, and obedience to him; but the infants of such as are members of the visible church are to be baptized.
문. 세례는 누구에게 베푸는 것입니까? 답. 세례는 보이는 교회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게 복종하겠다는 고백을 하기 전까지는 베풀지 않으며, 다만 보이는 교회의 회원인 자들의 자녀들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ㆍ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행 8:36)
ㆍ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행 2:38-39)
ㆍ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창 17:10)
ㆍ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1-12)
ㆍ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고전 7:14)

인간의 삶은 수많은 '경계'와 '소속'의 연속이다. 우리가 어떤 조직에 들어갈 때, 혹은 특정 국가의 시민권을 얻을 때 거치는 절차는 단순한 형식을 넘어 그 존재의 사회적 위치를 결정짓는다. 현대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이를 '온보딩(Onboarding)'이라 부른다. 새로운 구성원이 조직의 문화와 가치에 동화되어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이 과정은 조직의 영속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95문은 영적 세계의 온보딩, 즉 세례가 누구에게 베풀어져야 하는지를 다룬다. 이는 단순히 '누가 교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세대를 관통하며 흐르는지에 대한 신학적 선언이다.
세례의 대상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보이는 교회(Visible Church)' -또는 '가시적 교회'- 밖에 있던 성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복종을 고백할 때다. 이는 실존적 결단과 인격적 회심을 전제로 한다. 마치 낯선 땅으로 이민을 간 사람이 그 나라의 헌법을 존중하고 가치를 따르겠다고 서약하며 시민권을 얻는 과정과 같다.
여기서 '보이는 교회'란 우리가 눈으로 확인 가능한 신앙 공동체를 뜻한다. 이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삶의 궤적을 수정하여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오겠다는 공적 선포다. 이러한 공적 고백은 한 개인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강력한 심리적 기제가 된다.
둘째는 '언약 백성의 자녀들'이다. 소요리문답은 신자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는 혈통적 유전이 아니라 '언약적 원리'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약속하셨다(창 17:7). 이 약속은 구약의 할례를 거쳐 신약의 세례로 이어진다.
유아세례는 아이의 지성적 이해나 고백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그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그 부모가 속한 공동체의 언약적 책임을 근거로 한다. 이는 부모의 신용이나 자산이 자녀에게 상속되어 자녀가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는 '신뢰 자산'의 이전과 유사하다.
유아세례를 향한 현대적 오해 중 하나는 그것이 개인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소속의 본질을 오해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선택 이전에 이미 어딘가에 속해 있다. 가족, 국가, 언어권 등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의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틀이 된다. 유아세례는 자녀를 영적인 무국적 상태로 방치하지 않겠다는 부모와 공동체의 의지다. 아이가 자라면서 스스로 신앙을 고백할 때까지, 하나님의 은혜라는 보호막 안에서 자라게 하겠다는 거룩한 울타리다.
더 나아가 세례의 대상에 대한 이 가르침은 '연대'를 보여준다. 세례는 개인의 경건을 확인하는 도장이 아니라, 한 생명을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겠다는 연대의 예식이다. 성경은 믿지 않는 배우자나 자녀조차 믿는 자로 인해 거룩함의 영역 안에 있다고 말한다(고전 7:14). 이는 거룩함이 전염성이 있음을, 즉 한 사람의 신앙이 주변과 후세대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지를 시사한다. 우리는 파편화된 개인주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신앙은 언제나 공동체적이며 세대적이다. 유아세례는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소망의 인장이다.
또한 세례는 신앙의 문턱을 넘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으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특전(Privilege)이다. 성인의 고백이 '자각된 은혜'에 대한 응답이라면, 유아의 세례는 '선행적 은혜'에 대한 확증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지 목격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그분이 먼저 우리를 아셨고, 우리가 그분을 선택하기 전에 그분이 먼저 우리를 택하셨다는 그 압도적인 은혜가 세례의 물줄기를 타고 흐른다. 이 거룩한 온보딩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단절된 세상 속에서 영원한 소속감을 얻으며,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장 고귀한 신앙의 계보를 물려주게 된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