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김연아를 꿈꾸는 설원의 별, 유승은은 누구인가
이탈리아 리비뇨의 차가운 설풍도 열여덟 소녀의 뜨거운 비상을 막지 못했다. 2026년 2월 10일(한국시간), 대한민국 스노보드의 미래라 불리던 유승은(18·성복고)이 마침내 세계 정상의 반열에 올랐다.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 결선에서 유승은은 합계 171.00점을 기록하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는 대한민국 여자 선수 역사상 최초의 동계올림픽 설상 종목 메달이며, 프리스타일 스노보드 종목 전체를 통틀어도 전례 없는 쾌거이다.
피겨 스케이팅에 김연아가 있었다면, 이제 설원에는 유승은이 있다. 열악한 저변과 비인기 종목이라는 한계를 딛고 오직 실력 하나로 세계를 놀라게 한 모습은 20년 전 빙판 위의 기적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유승은은 단순한 고등학생 선수를 넘어, 이제는 대한민국 동계 스포츠의 패러다임을 바꿀 상징적인 인물로 우뚝 섰다. 이번 메달은 단순한 3위의 기록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빙상 강국'을 넘어 '동계 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하는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다.
압도적 기술력과 과감한 점프, 유승은만의 ‘시그니처’ 비행
이날 유승은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예술'과 '기술'의 완벽한 조화였다. 결선 1차 시기에서 유승은은 자신의 필살기인 '백사이드 트리플콕 1440(공중에서 4바퀴를 돌며 비스듬히 회전하는 기술)'을 깨끗하게 성공시켰다. 높이 5.5m, 비거리 24m에 달하는 압도적인 도약은 심판진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는 곧 고득점으로 이어졌다. 특히 착지 과정에서의 안정감은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는 평가다.
유승은의 강점은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에 있다. 지난 2025년 월드컵 은메달 획득 이후 줄곧 견제 대상으로 지목받아왔으나,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도 자신의 연기를 100% 발휘했다. 그녀의 기술은 단순한 회전수에 그치지 않는다. 공중에서의 동작 하나하나에 리듬감이 살아있고, 보드와 몸이 혼연일체가 된 듯한 유연함은 '설원의 요정'이라는 별명을 실감케 했다. 2차와 3차 시기에서도 그녀는 블라인드 점프와 프런트사이드 기술을 섞어가며 전략적인 경기 운영을 선보였고, 결국 일본과 뉴질랜드의 강자들 사이에서 당당히 시상대에 올랐다.
부상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강철 멘탈의 소유자
오늘의 영광 뒤에는 남모를 눈물과 인고의 시간이 있었다. 유승은은 지난 2024년 월드컵 데뷔 직후 발목 복사뼈 골절이라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다. 선수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재활 기간 중에도 팔꿈치 탈구와 손목 골절이 잇따랐지만, 유승은은 "보드를 타지 못하는 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다"며 오로지 설원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렸다. 그녀의 부모님과 소속팀 롯데 스키·스노보드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유승은은 하루 10시간 이상의 고강도 웨이트 트레이닝과 이미지 트레이닝을 병행했다.
이러한 불굴의 의지는 경기장 안팎에서 빛을 발했다. 부상 이후 점프에 대한 공포심이 생길 법도 했지만, 유승은은 오히려 난도를 높이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고통을 견디며 반복한 수천 번의 착지 연습은 올림픽 결선에서의 완벽한 착지로 보상받았다. 18세라는 어린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성숙함과 강인한 정신력은 그녀가 왜 '천재'로 불리는지를 증명한다. 역경을 기회로 바꾼 그녀의 서사는 이제 많은 청소년 선수들에게 꿈과 희망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2026 밀라노를 넘어 2030년을 향한 대한민국 스노보드의 로드맵
유승은의 이번 동메달은 한국 스노보드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그동안 대한민국 설상 종목은 '배추보이' 이상호의 평행대회전 은메달 이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며 침체기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유승은의 등장은 하프파이프의 최가온, 이채운과 더불어 한국 스노보드의 황금 세대를 구축하는 핵심 퍼즐이 되었다. 이제 세계 스노보드계는 대한민국을 '기다려지는 강호'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유승은의 성장이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18세라는 나이는 신체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2030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후보 0순위로 거론될 것이 자명하다. 정부와 대한스키협회의 더욱 체계적인 지원, 그리고 사계절 훈련이 가능한 실내 훈련 인프라 확충이 뒷받침된다면 유승은은 김연아가 피겨에서 이룩한 업적을 설원에서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제 겨울이 되면 빙상장뿐만 아니라 하얀 눈 위에서 비상하는 유승은의 모습에 열광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설상의 미래, 유승은이 써 내려갈 새로운 전설
유승은은 이제 '제2의 김연아'라는 수식어를 넘어 '제1의 유승은'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각인시켰다. 그녀가 리비뇨의 하늘에 그린 은빛 궤적은 대한민국 동계 스포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찬란하게 장식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딛고 일어선 한 소녀의 용기는 결과보다 과정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앞으로 그녀가 마주할 수많은 점프대 위에서, 우리 모두는 그녀의 비행을 응원하며 함께 숨을 죽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