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고등학교 시절에는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몰랐어요. 그냥 그날그날 학교에 가고, 수업을 듣고, 그게 다였던 학생이었죠.”
고졸 문과생에서 박사과정 연구원이자 대학 교수까지. 이력만 보면 ‘똑 부러진 커리어’를 가진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국립재활원 서경준 연구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 이면에 있는 수많은 막막함, 실패, 버팀의 시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고백이야말로 지금 진로 앞에서 혼란스러운 수많은 청년들에게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공부를 잘한 적도 없고, 진로도 없었습니다”
서경준 연구원은 고등학교 시절을 '그저 지나갔다’고 표현한다.
“특별한 장래희망도 없었고, 그렇다고 친구들과 활발하게 어울린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출석만 열심히 했던 기억밖에 없네요.”
그는 문과를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학과 과학이 싫었기 때문이다. “법과 사회 과목을 좋아했어요. 그걸 좀 열심히 공부했죠. 멋있어 보여서 막연히 법 관련 직업을 생각하긴 했는데, 진지하게 준비한 적은 없어요.”
“수능 두 번, 자존감은 바닥… 그러다 기계과로”
전환점은 수능을 두 번 본 뒤 찾아왔다.
“두 번 다 원하는 성적이 안 나왔어요. 스스로가 너무 작게 느껴졌고, 의욕도 없던 시기였죠.”
그때 그의 아버지가 권했다. “공대 가면 취업 걱정은 없지 않겠냐”며. 그렇게 기계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문과 출신에게 공학은 낯설고 어려운 분야였다.
“역학, 물리, 공업수학… 이해가 안 되니까 답답했어요.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계속 의심했죠.”
그때부터 그는 도서관에서 전공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이해가 될 때까지 반복했고, 모르면 무조건 찾아봤다.
“아버지가 사주신 두꺼운 기계용어사전을 항상 들고 다녔어요. 그걸 보며 하나씩 정리했죠.”
그렇게 한 학기를 마치자, 놀라운 일이 생겼다. 과에서 1등을 하고,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된 것.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취감을 느꼈어요. 그때 처음으로 ‘나도 뭔가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계획보다 중요한 건, ‘하루하루를 버티는 힘’이었습니다”
전문대를 졸업한 뒤 편입했고, 자연스럽게 대학원으로 이어졌다. 어느 순간 그는 석사학위를 받았고, 국립연구기관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방황했던 제가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신기해요. 엄청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매일 조금씩 하다 보니, 방향이 잡히더라구요.”
하지만 그 사이에도 수많은 실패가 있었다.
“수능 재수, 자격증 시험 낙방, 석사 3년, 면접 탈락… 실패는 너무 당연했어요. 그래서 그냥 ‘한 번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도전했죠.”
그는 ‘실패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까 실패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진로를 모르겠다면, 모르는 게 아니라 ‘아는 게 없는 것’일 수 있어요”
현재 그는 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가르치고, 고등학교에서는 '기계공학자'라는 직업에 대해 소개하는 특강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과 마주할 때마다 그는 자신의 과거 속에서 꺼낸 조언을 건넨다.
“진로를 모르겠다는 친구들이 많아요. 저는 늘 이렇게 말해요. 모르는 게 아니라, 아는 게 없어서 그래요.”
직접 해보기 전엔 뭘 좋아하는지도, 뭘 잘하는지도 모른다.
“공부가 어렵다면 전시회라도 가보세요. 기술을 눈으로 보고, 이야기를 듣는 경험이 중요해요. 그런 게 쌓이다 보면 ‘이걸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잘하려 하지 말고, 그냥 하루를 살아내 보세요”
그는 과거 번아웃을 심하게 겪은 적도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하루하루가 버거웠어요. 그때 그냥 오늘 하루만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잘하려고 하지 말고, 살아보자.”
그렇게 아주 작은 루틴, 소소한 감사, 주변 사람들의 온기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큰 계획보다 중요한 건, 그 하루를 버티는 태도였던 것 같아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길은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인터뷰 말미, 그는 “내가 잘난 사람이었다면 이런 이야기는 못 했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저는 그냥 오래 버틴 사람이고, 작은 시도들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에요.”
그는 아직 막막한 길 앞에 선 이들에게 이렇게 전한다.
“여러분도 저처럼 특별한 능력이 없다고 느껴지면, 그냥 떠오른 생각을 시도해보세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계속 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길이 점점 완성될 겁니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그는,
"앞으로는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들을 조금 더 사회와 연결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물론 지금처럼 연구도하고 강의도 계속하고 싶지만 거기에 멈추지 않고 제 이야기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조금이라도 용기를 줄 수 있는 활동들을 해보고 싶습니다."며 "꼭 거창한 무언가는 아니어도, 지금 막막한 누군가가 제 얘기를 듣고 '나도 한번 해볼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게 제일 큰 보람일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