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 목사의 깊이 있는 로마서 12장 강해를 따라 성도의 삶과
직분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풀어냅니다. 고린도전서 12장과
에베소서 4장을 함께 읽으며, 하나님이 주신 은사(카리스마)가 어떻게 교회를 세우고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는” 사랑으로 이어지는지 설명합니다. 우주적 그리스도론과 세속적 그리스도론의 시야에서 우리의 일상적 섬김이 큰 비전과 연결되는 길을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떻게 자라나는가. 바울은 로마서 12장으로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대답을 건넨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이 장을 “교리가
삶으로 흘러가는 통로”로 읽는다. 로마서 1–11장이 은혜의 복음을 단단히 세워 주었다면, 12장은 그 복음이
일상의 말과 행동, 관계와 선택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는지 보여 준다. 그래서 그는 로마서 12장을 고린도전서 12장, 에베소서 4장과
함께 읽어야 전체 그림이 또렷해진다고 말한다. 다양성과 일치, 은사와
직분, 그리고 사랑이라는 토대가 서로를 비추면서 하나의 건강한 교회론을 만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장재형목사는 “은사”를
그 말의 뿌리인 “카리스(은혜)”와 다시 연결한다. 카리스마는 나의 성취나 자격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이다. 그렇기에 교회 안에서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 겉으로 돋보이는 역할이든, 눈에 띄지 않는
자리든, 모든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주어진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몸”의
비유를 길게 풀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눈이 손을, 머리가
발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필요하고, 서로가
필요하기에 각자가 존중받는다. 장재형목사는 우리가 서로를 “지체”라고 부르는 오래된 언어 속에 이미 이 신비가 담겨 있다고 짚는다. 지체라는
말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요청한다. 비교와 열등감, 과시와
독주는 지체라는 말과 함께 설 자리를 잃는다.
고린도전서 12장 28절의
목록은 다양한 직분과 은사가 함께 조화를 이루는 그림이다. 장재형목사는 그 핵심 기능을 개척의 사도성, 분별의 선지자성, 양육의 교사성,
그리고 실제 필요를 채우는 집사적 섬김으로 정리한다. 사도는 복음의 기초를 놓고 새로운
지평을 연다. 선지자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공동체의 방향을 가다듬는다. 교사는 말씀을 바르게 가르쳐 믿음의 근육을 단단히 세운다. 집사적
섬김은 긍휼과 구제, 행정과 조정, “서로 돕는 일”을 통해 공동체를 실제로 움직이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위계가
아니라 유기성이다. 앞에 서는 이도, 뒤에서 받쳐 주는 이도, 모두 같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한 몸이라는 사실이 질서를 만든다.
로마서 12장 6절 이하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고
전제한 뒤 구체적인 태도를 덧붙인다. 예언은 “믿음의 분수대로” 해야 한다. 섬기는 이는 섬김에 전념하고, 가르치는 이는 가르침에 집중하며, 권면하는 이는 권면으로 사람을
세워 준다. 구제는 성실하게, 다스림은 부지런하게, 긍휼은 즐거이. 장재형목사는 이 짧은 문장들에 은사 사용의 윤리가
압축돼 있다고 본다. 무엇을 하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특히 “믿음의
분수대로”라는 권면은 깊은 기도와 통찰을 얻을수록 더 낮아지고 더 검증받으라는 요청으로 들려야 한다. 개인의 감동이 성경의 객관성과 공동체의 분별을 통과할 때, 은사는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세운다. 그렇지 않으면 가장 귀한 은사조차 공동체를 흔드는 날카로움이 될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로마서 12장 9절을
전환점으로 삼는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사랑이 빠진
은사는 빈 껍데기다. 사랑이 은사의 방향을 정하고, 속도를
조절하며, 목표를 분명히 한다.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라. 존중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 이 권면들은 은사가 건강하게 흐를 수 있는 영적 기후를 만든다. 열심은 추진력을, 인내는 지속력을,
기도는 분별력을, 소망은 회복력을 준다. 이런
기후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13절,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말이 단지 좋은 문장이 아니라 우리의 습관이 된다.
“성도의 쓸 것을 공급”은 돈만을 뜻하지 않는다. 시간과 재능, 지식과 관계, 공간과 관심도 모두 포함된다. 내게 있는 것을 몸의 다른 지체를 위해 기꺼이 나누는 태도가 핵심이다. “손
대접”은 더 구체적이다. 집과 마음의 문을 열어 타인을 환대하는
일, 함께 식탁에 앉아 나눔과 경청의 시간을 만드는 일, 피곤한
이의 귀가 길을 함께 걸어 주는 일까지 모두가 손 대접이다. 초대교회에서 환대가 복음 전파의 통로이자
공동체 생존의 기반이었다면, 오늘의 도시에서도 환대는 여전히 강력한 언어다. 장재형목사는 커뮤니티 냉장고 운영, 청소년 학습 멘토링, 이민자·난민을 위한 언어 파트너,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의 동행 같은 사례를 들며 “성도의 쓸 것을 공급”의 현대적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다스리는 은사를 받은 이는 투명한
재정과 공정한 절차를 세우고,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이는 청소년의 디지털 문해력과 비판적 사고를 키우며, 권면의 은사를 가진 이는 번아웃 시대의 회복 공동체를 돌본다. 긍휼의
은사는 보이지 않는 상처를 듣는 귀로, 방언과 통역의 은사는 낯선 문화 사이의 벽을 허무는 다리로 쓰인다. 은사는 예배당 안에서만 반짝이지 않는다. 월요일의 직장과 학교, 동네와 온라인 공간에서 더 또렷하게 검증된다.
이 지점에서 장재형목사는 “세속적 그리스도론”이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꺼낸다. 주일의 신앙이 주중의 생활세계로 스며들어 가정·직장·문화·시민사회 전체를 바꾸는 그림이다.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라는 말을 조직과 제도의 정의로 번역한다. 팀의 갈등을 중재하고, 약자의 목소리를 보장하며, 불투명한 관행을 밝히고, 공정한 계약과 평가를 제도화한다. 이는 설교보다 더 명료한 증언이 되기도 한다. 동시에 그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의 시야도 열어 준다. 에베소서 1장 10절이 말하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골로새서 1장 20절이 선포하는 “만물을 화목”하게 하시는 십자가의 능력은 개인 구원을 넘어 창조 전체의 회복을 가리킨다. 교회가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며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일은 그 거대한 화해의 장면을 미리 보여 주는 작은 예행연습이다. 다시 말해, 우주적 그리스도론의 비전이 세속적 그리스도론의 현장에서 작동할 때, 우리의 작은 환대와 섬김이 큰 이야기에 접속된다. 작은 실천은 큰 비전을 현실로 끌어당기고, 큰 비전은 작은 실천을 지치지 않게 붙든다.
로마서 12장의 문지방에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가 놓여 있다. 살아
있는 제물은 움직이는 제물이다. 예배는 닫힌 공간과 특정 시간에만 머무는 의식이 아니라, 열린 일상 속에서 이어지는 순종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요청은 은사 사용의 배경을 분명하게 한다. 기준은 시대의 상식이나 경쟁의 논리가 아니라, 말씀과 성령으로 새로워진
마음이다. 그래서 직분은 지위를 주지 않고 책임을 준다. 권리는
늘어나지 않고 섬김이 늘어난다. 특권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무릎이 더 자주 꿇어진다. 장재형목사는 이 간결한 역설을 로마서 12장의 모든 권면에 관통시킨다. 은사–직분–사명–태도가 한 선으로 이어질 때, 교회는 조직에서 유기체로, 집단에서 가족으로, 모임에서 몸으로 바뀐다.
현실은 완벽하지 않다. 은사는 때로 충돌하고, 직분은 경쟁하고, 선한 의도도 엇갈릴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16–18절에서 서로 같은 마음을 품고, 높은 데 마음 두지 말고,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며,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권한다. 장재형목사는
분쟁의 순간에도 상대의 은사를 인정하는 한마디—“당신의 강점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가 분위기를 바꾼다고 말한다. 이 말이 가능하려면 “작은 회개”가 일상화되어야 한다.
내가 먼저 사과하고, 먼저 내려놓고, 먼저 환대하는
작은 선택이 공동체의 큰 전환을 만든다. 여기에 “작은 기도”가 더해진다. 매일 잠깐이라도 공동체의 이름을 불러 가며 드리는 중보는, 눈에 보이는 조직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력을 키운다. 이렇게
사랑과 회개, 기도가 물처럼 흐르면, 은사는 점점 더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된다.
결국 장재형목사가 안내하는 로마서 12장의 길은 한 문장으로 모아진다. 은혜로 받은 카리스마를 사랑 안에서 겸손히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는” 습관으로 우주적 그리스도론의 비전을 세속적
그리스도론의 현장에서 증언하라. 이것은 멀고 추상적인 사변이 아니다.
오늘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선택들이다. 동네의 연약한 이웃을 살피는 눈길, 팀의 막힌 관계를 풀어 주는 권면, 가정의 식탁을 여는 환대, 교실과 회의실에서 이루어지는 공정한 절차, 예산과 일정에서 드러나는
성실함, 메시지와 행동 사이의 일치가 그 선택의 이름들이다. 그렇게
한 걸음씩 걸을 때, 주일의 예배는 월요일의 현장에서 다시 시작되고,
우리의 작은 실천은 도시의 공기와 문화를 조금씩 바꿔 놓는다. 언젠가 우리가 주 앞에 설
때, 작은 회개와 환대의 식탁, 성도의 쓸 것을 채우던 손길들이
하나의 선율처럼 연결되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화해시키시는 큰 교향 속에 자연스레 합류하게
될 것이다. 로마서 12장이 요구하는 살아 있는 예배가 바로
여기 있다. 그리고 장재형목사가 오늘의 교회와 성도에게 건네는 권면도 분명하다. 하나님이 주신 카리스마를 사랑으로 사용하라. 그 사랑이 당신의 교회를
단단히 세우고, 당신의 직장을 정직하게 만들며, 당신의 도시를
조금 더 따뜻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우리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이 약속한 화해의 완성에
한 조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