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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을 넘어 사랑으로: 장재형 목사가 조명하는 갈라디아서의 공동체 윤리



장재형 목사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5 22절과 23절에서 제시하는 성령의 열매를 단순한 개인의 윤리적 덕목 목록으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단일한 뿌리에서 파생된 유기적 총체로 파악하는 깊이 있는 신학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바울이 열거하는 아홉 가지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미덕이 아니라, 성령께서 신자의 내면에 맺으시는 하나의 온전한 성품의 다채로운 발현이라는 것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모든 열매의 시작과 끝이사랑에 있음을 역설합니다. 세상이 노래하는 사랑은 종종 조건적이고 유한하며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성경이 증언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 자체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 아가페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선포했을 때, 그는 바로 이 사랑의 원형을 제시한 것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지점에서 히브리적 사유의 핵심인안다(yādaʿ)’는 개념을 도입하여 사랑의 본질을 더욱 심도 있게 조명합니다. 히브리어야다는 단순한 지적 정보의 습득을 의미하지 않고, 인격적이며 언약적인 깊은 관계, 즉 경험과 순종이 수반되는 체휼적 앎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이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 고백했을 때, 이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안에서 그분의 성품을 온전히 체득하게 될 종말론적 소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장재형 목사는 설명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아는 것은 곧 그분의 사랑을 아는 것이며, 그 사랑의 경험이 우리로 하여금 비로소 주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을 때, 베드로의 대답은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였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주님의아심에 의탁합니다. 이는 자신의 사랑이 주님께서 먼저 베푸신 그 크신 사랑을 깨달은 것에서 비롯된 반응임을 고백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성령의 첫 열매인 사랑의 본질이라고 장재형 목사는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인간적 결단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먼저 아시고 사랑하신 하나님의 선제적인 은총에 대한 응답인 것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사랑과 희락의 관계를 동전의 양면으로 비유하며, 사랑이 존재하는 곳에 참된 기쁨이 필연적으로 동반된다고 가르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기에, 사랑을 경험할 때 가장 깊은 내적 충만함과 기쁨을 누리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께서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기쁨은 바로 앞 절에서 말씀하신서로 사랑하라는 계명과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인간 실존의 고통과 괴로움의 근원을 사랑의 부재, 즉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찾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두 번째 열매인 희락은 세상이 주는 찰나적 쾌락이나 긍정적 사고방식의 산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무조건적인 사랑 안에 거할 때 샘솟는 영적 기쁨입니다.


이어서 제시되는화평은 은혜와 깊이 연관됩니다. 바울 서신의 서두에은혜와 평강(Grace & Peace)”이 관용구처럼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장재형 목사는 지적합니다. 은혜가 선행될 때 비로소 참된 평강이 결과로 따라온다는 신학적 원리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문제없는 상태나 갈등의 부재를 의미하지만,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죄와 죽음의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 즉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의롭다 하심(칭의)을 경험한 영혼의 깊은 안식입니다. 우리의 행위나 공로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라는 은혜의 선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정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그리고 이웃과 진정한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적 평안은 마음에여유(room)’를 만들어내며, 이는 자연스럽게오래 참음이라는 너그러운 성품으로 이어집니다. 장재형 목사는 고린도후서 6장에서 바울이 교인들을 향해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권면한 것을 예로 들며,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은 마음을 좁고 각박하게 만들어 타인을 쉽게 정죄하지만, 은혜를 체험한 심령은 너그러워져 타인의 허물을 인내하며 기다려줄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사랑에서 발현하여 희락과 화평, 오래 참음으로 이어지는 성품은 다시 자비(남에게 베푸는 친절), 양선(적극적인 선의 실천), 충성(관계에서의 신실함), 온유(자신의 힘을 통제하여 타인을 섬기는 성숙함), 그리고 절제(자기 욕망을 다스리는 능력)라는 구체적인 삶의 태도로 확장됩니다. 장재형 목사는 바울이 이 아홉 가지 열매를 나열한 뒤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선언한 것은, 성령의 열매가 인간이 만든 어떤 율법이나 규범으로도 판단하거나 제재할 수 없는, 차원이 다른 생명의 원리임을 천명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이러한 성령의 법을 따라 사는 삶은 필연적으로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5:26)는 바울의 권면으로 귀결됩니다. 장재형 목사는 시기 질투의 죄가 인류의 원죄와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를 창세기 강해를 통해 심도 있게 분석합니다. 창세기 3장의 아담의 죄가 하나님처럼 되려는교만’, 즉 유한한 피조물이 창조주를 향해 도전하는수직적 죄의 원형이라면, 4장에 나타난 가인의 죄는 동생 아벨이 받은 축복을 기뻐하지 못하고 그를 살해한시기 질투’, 즉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수평적 죄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사야 14장의 계명성(루시퍼)의 타락 기사를 인용하며, 교만의 본질이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는 자기 높임의 욕망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 수직적 교만이 내면에 자리 잡을 때, 인간은 필연적으로 수평적 관계에서 타인의 성공이나 은혜를 용납하지 못하는 시기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가인이 겸손했다면 동생의 제물이 열납된 것을 함께 기뻐하며 그 비결을 배우려 했을 것이지만, 교만은 그의 눈을 멀게 하여 형제를 죽음으로 내모는 어리석음을 낳았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투기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은, 그들이 율법주의에 빠져 서로를 판단하고 경쟁하며 영적 교만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장재형 목사는 통찰합니다. 성령으로 사는 삶은 이처럼 자기 의를 내세우고 타인과 비교하며 경쟁하는 삶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삶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논의를 갈라디아서 6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며, 바울이 제시하는 기독교 윤리의 핵심을관계의 회복상호 책임으로 요약합니다. 신앙은 관념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정황 속에서 구현되어야 하며, 그 첫 번째 실천의 장이 바로 범죄한 형제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6:1). 여기서 장재형 목사는신령한 너희라는 바울의 호칭이 가진 목회적 지혜에 주목합니다. 이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하기에 앞서 그들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며 격려하는 바울의 온유한 성품을 보여줍니다. 율법주의는 죄와 벌의 도식에 따라 범죄한 자를 즉각적으로 정죄하고 찌르지만, 복음이 제시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은온유한 심령으로 그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온유는 팔복에서마음이 가난한 것과 나란히 언급되는 겸손과 맞닿아 있으며, 이는 타인의 죄를 다룰 때 자신 역시 동일한 시험에 빠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태도라고 장재형 목사는 설명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고린도전서 10 12절의 경고처럼, 타인의 실패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겸손이 회복의 첫걸음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율법을 앞세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여인을 돌로 치려 했지만, 예수님은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으로 그들의 위선적인 의를 해체시키셨습니다. 예수께서 땅에 쓰신 글씨가 무엇이었든, 그 행위는 돌 판에 새겨진 율법보다 더 근원적인 창조주의 법, 즉 용서와 긍휼의 법이 있음을 상징한다고 장재형 목사는 해석합니다. 주님께서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을 때, 이는 죄를 용납하신 것이 아니라, 정죄가 아닌 용서를 통해 새로운 삶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복음의 방식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용서의 원리는 마태복음 18장의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에서 더욱 명확해집니다. 장재형 목사는 일만 달란트가 한 개인이 평생을 일해도 갚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임을 강조하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진 죄의 빚의 크기를 상징한다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전액 탕감받았다는 사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무한한 용서를 경험했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에게 백 데나리온(비교할 수 없이 적은 액수) 빚진 동료를 용서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마땅한 의무가 됩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는 주님의 경고는, 용서가 구원의 조건은 아닐지라도, 구원받은 자의 삶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야 할 증거임을 보여줍니다. 주기도문에서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용서가 하나님의 용서를 이끌어내는 조건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받은 그 큰 용서에 근거하여 형제를 용서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이자 고백이라고 장재형 목사는 가르칩니다.


반면,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는 이러한 은혜를 망각한 율법주의자의 자기 의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합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종교적 행위(금식, 십일조)를 내세우며 타인을 멸시했지만, 세리는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결론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죄인이라 고백한 세리가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모든 시도가 헛되며,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의지하는 겸손한 심령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장재형 목사는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갈라디아서 6 2절의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명령은 이 모든 논의의 정점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이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고 해석합니다. 첫째는 마태복음 11장에서 예수께서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을 때의죄의 짐입니다. 이 짐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져주심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남의 죄를 정죄하는 대신 그 허물을 덮어주고 함께 아파하며 그가 회복되도록 돕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속죄 정신을 본받아 서로의 짐을 지는 삶의 시작입니다. 둘째 짐은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을 때의사명의 짐입니다. 이는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그분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형제의 연약함이라는 짐을 함께 져주는 것은, 곧 주님과 함께 사랑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법, 서로 사랑하라는 최고의 계명을 성취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5절의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는 말씀은,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신앙적 양심과 책임에 대해 직접 응답해야 할 영역이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상호 책임과 개인의 책임 사이의 건강한 균형을 가르쳐준다고 장재형 목사는 덧붙입니다. 바울이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6:3)고 경고한 것처럼, 율법주의는 자신이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지만, 복음 안에서 우리는 빌립보서 3장의 바울처럼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고백하며, 오직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도상의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장재형 목사의 갈라디아서 강해는 이처럼 우리를 자기 의와 정죄의 감옥에서 해방시켜, 성령 안에서 서로의 짐을 기꺼이 짊어지며 사랑과 용서의 공동체를 세워나가는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삶으로 우리를 강력하게 초대하고 있습니다.

 


davidjang.org
작성 2025.10.09 16:19 수정 2025.10.0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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