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공간에서의 ‘보호막’ — 또래를 데려오는 행동의 첫 단서
“선생님, 오늘은 제 친구랑 같이 오면 안 돼요?” 치료실 앞에서 이렇게 묻는 초등 ADHD 남아의 얼굴에는 묘한 긴장이 섞여 있다. 그는 혼자 있는 것을 힘들어하고, 새로운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마음이 안정된다. 그 친구는 마치 보호막(shield)처럼 기능한다. 이때 ‘친구’는 단순한 또래가 아니라, 불안을 견디게 해주는 심리적 대체물이다.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콧(Donald W. Winnicott)은 아이가 세상을 경험할 때 ‘지속적인 대상(holding object)’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이는 내면의 불안을 조절하기 위해 ‘믿을 수 있는 존재’를 곁에 두려 한다. ADHD 아동에게 그 ‘존재’가 바로 또래 친구일 수 있다. 그는 아직 자신의 내적 긴장을 스스로 다스리는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기에, 외부의 인물(친구)을 ‘정서적 도우미’로 사용하는 것이다.
ADHD 아동의 불안, 그리고 관계의 방어
ADHD 아동은 종종 ‘주의산만하다’거나 ‘충동적이다’라는 말로만 설명되지만, 실제로 그 이면에는 불안(anxiety)이 깊게 자리한다. Barkley(2015)는 ADHD를 단순한 ‘주의력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조절(self-regulation)의 어려움으로 보았다. 즉, 감정·충동·사회적 관계를 조절하는 뇌의 전두엽 기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작은 자극에도 감정이 과도하게 요동친다. 이 불안은 낯선 상황에서 특히 강하게 작동한다. 치료실, 선생님, 새로운 과제 등은 모두 ‘예측 불가능한 세계’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무언가, 즉 ‘친숙한 친구’를 데려와 상황을 안전하게 만들려 한다. 여기서 친구는 무의식적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로 기능한다. ‘내 옆에 친구가 있으면, 나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내적 믿음은 불안을 잠시 완화시킨다. 이것은 일종의 ‘외부 자아(extended ego)’로서, 아동이 아직 미성숙한 자아 구조를 보완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시도다.
‘친구’라는 거울: 자기 이미지와 사회적 정체성의 형성
아이들이 또래를 통해 배우는 것은 단순한 놀이기술이 아니다. 정신분석가 피터 포나기(Peter Fonagy)는 ‘정신화(mentalization)’ 개념을 통해, 인간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며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고 했다. 즉,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ADHD 아동에게 친구는 이런 자기 인식(self-image)을 돕는 거울 역할을 한다. 그는 친구의 반응을 통해 자신이 “괜찮은 아이”, “함께할 만한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는다. 그러나 동시에 친구의 존재에 과도하게 의존할 때, 이는 자기 정체성의 미분화(undifferentiation)를 의미할 수도 있다. ‘나’와 ‘너’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며, 친구 없이는 자기 존재감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이 시기에 부모나 교사는 아이가 ‘함께 있음’과 ‘독립됨’을 동시에 경험하도록 도와야 한다. 즉, “친구 없이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강요하기보다, “친구가 없어도 네가 안전하다는 걸 알아가자”는 점진적 학습의 과정이 필요하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일 —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 설 수 있게 돕기
많은 부모가 걱정한다. “우리 아이는 왜 항상 친구를 끌고 다니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려고 해요.” 하지만 이런 행동을 단순한 의존성이나 버릇으로만 보지 않아야 한다. 그 속에는 ‘나는 혼자일 때 무너질지도 몰라요’라는 불안이 숨어 있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첫 번째 일은, 아이의 불안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렇게 친구한테 매달리니?”보다 “친구랑 있으면 마음이 편하구나”라는 공감이 먼저 필요하다. 이 공감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수치심 없이’ 드러내는 첫 번째 안전기지가 된다. 두 번째로, 혼자서도 안전하다는 경험을 조금씩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치료실, 학원, 놀이터 등에서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오늘은 5분만 혼자 기다려볼까?” 같은 방식으로 ‘독립의 성공 경험’을 쌓게 한다. 이때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신뢰의 분위기다. 부모가 “나는 네가 혼자 있어도 괜찮을 거라고 믿어”라고 말해주는 순간, 아이는 내면에서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배운다. 마지막으로, 친구 관계를 통제하려 하지 말고, 그 안에서 감정을 읽어주는 것이다. “그 친구가 네 옆에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어?” 이 질문 하나가 아이에게는 자신도 몰랐던 마음을 스스로 언어로 인식하게 한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는 점점 친구에게 ‘의지’하기보다 ‘소통’하려는 방향으로 성장한다. 결국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함께 있어 주되, 붙잡지 않는 것. 이 느슨한 연결이 아이의 불안을 녹이고,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함께 있음’에서 ‘홀로 설 수 있음’으로
ADHD 아동이 또래를 데려오는 행동은 단순한 ‘사회적 흥미’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조절의 미성숙, 불안의 방어, 그리고 관계를 통한 자기보호의 시도다. 우리는 그 안에서 아이가 외치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나 혼자 있으면 무서워요. 누군가가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요.” 치료나 양육의 목표는 친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친구가 없어도 안전하다”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때 아이는 비로소 진정한 자기 통제력과 자존감을 회복한다. ‘함께 있음’에서 시작해 ‘홀로 설 수 있음’으로 가는 그 여정이야말로, ADHD 아동의 성장을 이끄는 심리의 본질이다.
아이의 행동 뒤에는 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이해하는 순간, 양육의 방식도 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