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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분쟁의 해결은 '명분'을 세워주는 '협상'에 달려 있다.

-모든 협상에서 각자의 '명분(名分)'을 세워주어야 한다.

-'지지 않는 협상'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협상 테이블에 드러난 '요구(Position)'와 그 이면에 숨겨진 '욕구(Interest)'를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중동 문제의 해법은 각자의 '욕구'를 인정하고, 그 '욕구'를 충족시킬 '명분'을 세워줄 수 있는 '협상의 서사'를 창조하는 데 있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세상의 주요 3 종교가 탄생한 땅, 중동! 끝없이 되풀이되는 분쟁의 수레바퀴! 이곳의 공기는 단순한 먼지가 아니라, 수천 년 묵은 역사와 종교, 그리고 마르지 않는 피의 기억으로 무겁다. 국경을 넘어 끝없이 이어지는 난민들의 행렬, 폭격으로 무너진 도시의 잿더미 속에서 울부짖는 아이들의 모습은 내게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왜 이곳의 갈등은 이토록 풀기 어려운가.

 

우리는 해답을 찾기 위한 수많은 협상 테이블과 분쟁의 현장을 보았다. 서방의 외교관들은 지도를 펼쳐놓고 '합리적'인 경계선을 그으려 했고, 경제학자들은 '이익'을 공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은 번번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그 실패의 중심에서 이 분쟁의 본질이 '영토'나 '자원' 이전에, 바로 '명분(名分)'에 있음을 깨닫는다.

 

중동에서 '명분'은 단순한 체면치레나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이며, 지도자의 생존과 직결되는 실존적 가치이다. 수백, 수천 년간 이어진 배신과 외세의 개입, 성지(聖地)를 둘러싼 종교적 신념은 타협을 '배신'으로, 양보를 '굴복'으로 규정하게 만들었다. 이곳의 지도자들은 국제사회의 박수갈채보다, 자신들의 백성에게 "우리는 패배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 즉 '명분'을 더 절실히 원한다.

 

따라서, 중동에서의 협상은 '제로섬(Zero-Sum) 게임'의 파이를 나누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양측 모두가 자신의 승리를 선언할 수 있는 '서사(Narrative)'를 만들어내는 고도의 심리극이어야 한다. 이기는 협상이 아니라, 양측 모두 '지지 않는' 협상을 설계해야 한다.

 

이러한 '지지 않는 협상'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협상 테이블에 드러난 '요구(Position)'와 그 이면에 숨겨진 '욕구(Interest)'를 구분하는 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협상을 못 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제시한 '요구'에만 집착한다. 하지만 사람은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밑에 깔린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요구'라는 대리인을 내세울 뿐이다.

 

목이 말라 시원한 음료를 찾는 손님의 '욕구'는 '시원함' 그 자체이다. 그가 "콜라 한 병"을 달라고 '요구'했을 때, 가게에 콜라가 없다고 말하면 협상(장사)은 끝난다. 하지만, 그의 '욕구'에 초점을 맞춘다면, "콜라는 없지만 '시원한' 사이다는 있다"고 제안할 수 있다. 손님은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콜라'라는 '요구'가 아니라 '갈증 해소'라는 '욕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1965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 교수의 일화는 이를 더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천성적으로 귀찮은 것을 싫어해 스웨덴 수상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요구'했다. 노벨상위원회가 아무리 수상의 영예를 설파해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파인먼의 '욕구'가 '상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귀찮은 것이 싫다'는 것임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그녀는 단 한마디로 그를 설득했다. "좋아요. 가지 마세요. 하지만, 당신이 가지 않으면, 노벨상을 거부한 최초의 수상자가 되어 수많은 기자가 몰려올 겁니다. 적어도 1~2주는 그들을 상대하느라 훨씬 더 귀찮아질 거예요." 파인먼은 즉시 스웨덴으로 떠났다. '귀찮음을 피한다'는 핵심 '욕구'가 정반대의 '요구'(수상식 참석)를 통해 해결된 것이다.

 

나아가, 중동의 협상은 맛있는 빵을 나누는 형제의 문제와도 같다. 엄마가 형에게 "네가 빵을 자르되, 선택은 동생이 먼저 하도록 하라"고 했을 때, 형은 동생의 '욕구'(공평한 몫)를 만족시키기 위해 빵을 가장 똑같이 자르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 한쪽이 칼자루를 쥐고 '요구'를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양측의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창의적 대안'과 '룰'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 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1978년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다. 이는 '요구'가 아닌 '욕구'에 초점을 맞추고, 양측 모두에게 '명분'을 세워준 완벽한 '창의적 대안'이었다. 당시,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메나헴 베긴 총리는 이미 깊은 원한의 감정으로 원수가 되어버린 두 국가를 대표하고 있었다. 4차례의 중동전쟁을 치른 양국에 평화는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중재는 기적을 만들었다. 이 협상의 본질은 '명분'의 교환이었다. 이집트의 '요구'는 '시나이 반도 반환'이었고, 그 '욕구'는 '잃어버린 영토 회복이라는 국가적 자존심'이었다. 이스라엘의 '요구'는 '시나이 반도 사수'였고, 그 '욕구'는 '국가 생존을 위한 안보 확보'였다.

 

카터 대통령은 이 '욕구'에 집중했다. 그 결과, 이집트는 1967년 빼앗긴 시나이 반도를 '단 1인치의 양보도 없이' 되찾아왔다. 사다트는 이집트 국민들에게 "잃어버린 영토를 완벽하게 회복했다"라고 선언할 수 있었다. 이는 명백한 '승리'의 명분이었다. 반면,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를 내주는 대신, 아랍의 맹주인 이집트로부터 국가로서의 공식적인 '인정'과 '안보'를 확보했다. 시나이 반도를 '비무장지대'로 만듦으로써 최대의 안보 위협(욕구)을 제거한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대의 외교적 '승리'였다.

 

두 지도자는 각자 자신의 '명분'을 들고 귀국했다. 사다트는 '영토 회복'을, 베긴은 '국가 안보'를 외쳤다. 비록 사다트가 이 협정 때문에 훗날 암살당하는 비극을 맞았지만,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평화는 그 어떤 중동의 평화협정보다도 견고하게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명분'이 평화를 지탱하는 굳건한 기둥이 된 것이다.

 

반대로, '명분'을 세우는 데 실패하고 '요구'에만 집착한 협상이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는지 우리는 '오슬로 협정'에서 목격한다.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맺은 이 협정은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지만, 결국, 중동 평화의 가장 비극적인 실패로 남았다.

 

표면적으로 이 협정은 팔레스타인에게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일부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단계적' 평화 방안이었다. 하지만, 양측 지도자들은 자국민에게 내세울 확실한 '명분'을 확보하지 못했다.

 

PLO의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은 무엇을 얻었는가. 그는 '독립 국가', '동예루살렘', '난민 귀환권'이라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핵심 '욕구' 중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가 얻은 것은 이스라엘의 점령하에 있는 고립된 영토의 '제한적 자치권'이라는 '요구'의 파편일 뿐이었다. 팔레스타인 강경파(하마스 등)는 즉각 그를 '민족의 대의를 팔아넘긴 배신자'로 규정하고 맹렬한 테러를 시작했다. 아라파트는 자신의 '승리'를 증명할 명분이 없었다.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팔레스타인에게 '땅'(성서 속 유대와 사마리아)을 양보했지만, 이스라엘 국민들이 원하는 '안보'라는 '욕구'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오슬로 협정 이후 버스 폭탄 테러 등이 급증하며 이스라엘인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이스라엘 우익은 라빈을 '국가 안보를 팔아넘긴 배신자'로 몰아세웠고, 결국 그는 자국의 극우주의자 손에 암살당했다.

 

양측 모두에게 '명분'이 부재했던 오슬로 협정은 피로 얼룩진 '2차 인티파다(민중봉기)'로 귀결되었다. '건설적 모호성'이라는 외교적 수사는 결국 양측 모두의 불신만 키우는 독이 되었다. 이는 평화 협상에서 '명분'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교훈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가자지구의 참상, 예멘의 내전, 시리아의 비극 역시 '명분'을 상실한 힘의 충돌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완전한 제거'라는,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명분에 갇혀 있다. 하마스 또한 '저항의 승리'라는 명분 없이는 결코 무기를 내려놓을 수 없다. 양측이 자신의 '승리'를 선언할 수 없는 한, 이 비극은 끝나지 않는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오랜 중동 분쟁에서 그 문제의 해법은 '완벽한 정의'의 구현이나 '합리적 이익'의 배분에 있지 않다. 그것은 각자의 역사와 종교, 민족적 트라우마가 빚어낸 '욕구'를 인정하고, 그 '욕구'를 충족시킬 '명분'을 세워줄 수 있는 '협상의 서사'를 창조하는 데 있다.

 

국제사회의 중재자는 '심판'이 아니라 '극작가'가 되어야 한다. 양측 지도자가 자신의 국민들 앞에 서서 "우리는 지지 않았다. 우리는 이것을 얻어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대본을 써주어야 한다.

 

이는 결코 냉소주의나 현실도피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수많은 인명을 구하고, 또 다른 난민의 행렬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형태의 '정치적 리얼리즘'이다. 진정한 평화는 종이 위에 잉크로 서명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광장에서 승리의 이야기로 선포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중동의 미래는 바로 이 '명분 있는 협상'에 달려 있다.

 

작성 2025.11.04 07:40 수정 2025.11.04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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