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즐겨 사용하는 말이다. “생각은 말을 만들었고(사실은 닭과 달걀같이 선후는 모호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말을 전(소통)하려 글을 만들었다. 글이 만들어지니 거꾸로 글이 말을 지배하고, 다시 말은 생각을 지배한다. 따라서 글과 말은 사람이나 국가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지배한다. 따라서 역사와 더불어 언어가 망가지면 개인만이 아니라 나라도 망한다.” 국권상실기 이래 우리 국어가 너무나 헝클어져 온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 글을 쓰게 되는 출발점이다.
이 글의 주제는 둘이다. 첫째는 소위 한글학자가 정음을 창제한 세종이 만든 음소 4개를 없애는 등 製字(제자) 원리를 무분별하게 무너뜨렸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다. 둘째는 한글전용 정책 때문에 우리말의 가독력이 떨어졌다는 고발이다.
그 결과는 외국인과 대화, 즉 발음 능력이 꺾여 해외를 향한 진취력을 떨어뜨렸고, 뜻글로 구성된 단어의 이해능력 저하로 독해력(문해력)이 세계적으로 최하위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다. 나아가 발음조차 엉터리인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이 남발되면서 세대・직업군・계층 따라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태로 전개되었다. 결국 국민의 우민화와 사회분렬이 심화되고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여러 차례 나누어 쓸 것임을 밝히며, 독자들의 넓은 惠諒(혜량)을 부탁하는바, 이 글은 그 엄혹하던 국권상실기에 우리말을 지키기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걸었던 분들의 인격과 국어사랑이라는 숭고한 정신을 폄하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분들에게 높은 존경심을 갖고 있음을 의심하지 말아 주시기 바란다.
한글을 미끼로 삼는 국뽕 유투브와 (훈민)정음 파괴자
요즈음 유투브의 영향력이 공중파를 넘어섰다고 한다. ‘한글’은 그 유투브 시장에서 손님몰이의 대표적 미끼 주제 가운데 하나다. 문제는, 앞선 언급과 같이 언어생활이 속으로 썩어들어가는 현실은 인지조차 못 하면서 ‘못된 송아지 엉덩이 뿔 나듯’ 한글 자랑만 앞세운 국뽕 유투브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점이다.
유투브 제목을 들어보자.
‘위대한 한글’, ‘한글의 세계화’, ‘한글이 세계를 놀래다’, ‘15분만에 배우는 한글’, ‘미국교수의 한글 비밀 탐구’, ‘한자 버리고 한글만 쓰는 일본’, ‘한글이 제2 모국어 될까 무서워요’ ‘옥스퍼드 대학 한글 반짝반짝 의태어 다양한 표현과 감정에 무릎 꿇었다’. 이제는 멀미가 날 정도로 넘쳐난다.
단지 제목의 과장만이 아니다. 상당수 유투버들의 저질스러운 언어능력과 적절치 못한 어휘선택이 우리말을 더욱 빠르게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필자에게 또 다른 위기의식과 문제의식을 안겨준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만고의 진실, 그리고 사라진 말 ‘정음’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는 사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아도 아는 만고의 진실이다. 더욱이 언문청, 정음청을 두고 그 보급에 힘썼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기억할 것이다. 그런 ‘정음’이라는 어휘는 온 데 간 데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세종은 훈민정음이라는 말과 더불어 직접 언문이라는 어휘도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세종을 비롯한 조선의 왕들이 사용했던 ‘언문’이 ‘우리말’을 비하하는 말이라 주장하면서, 정음이나 언문이라는 말 대신에 소위 개화기 이후 많은 학자는 ‘한글’이라는 생뚱맞는 어휘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한글전용’이라는 구호로 오도되면서 수천 년 동안 사용해온 상형문자인 契(글)* 또는 書契(서글, 소위 한자)을 사실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 契(글) : 최초의 자전이라 할 수 있는 후한 때 편찬된 說文解字(설문해자)에도 등장하고 약속이라는 기본개념이 소개되어 있으며, 훗날 ‘書契’로 바꾸었다는 해설이 곁들여 있다. 나아가 청 때 강희자전에서는 발음에 대한 상세한 풀이가 덧붙여 있다. 계약이나 문서를 뜻할 때는 ‘계’, 사람의 성씨를 말할 때는 ‘설’, 契丹(거란)을 말할 때는 ‘글’로 발음하라고 하였다. 다만 저들의 발음체계와 우리의 발음이 다르기 때문에 저들은 ‘키에’, ‘키앗’으로 발음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같은 문자라도 발음은 지역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많은 언어학적 연구에 의하면 고대로 갈수록 우리 발음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즉 契(글, 소위 한자; 원나라 이전에는 없던 어휘) 자체가 동이족이었던 상나라에서 급속히 발전된 문자이므로 당연한 사실일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의 핵심 목적을 통찰하지 못한 언어학자들
우선, 왜 ‘정음’이라는 어휘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는지, 그리고 ‘언문’이 (훈민)정음을 낮추어 부르는 명칭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깊은 통찰이 요구되는 무거운 주제이지만, 여기서는 간단하게 요점만 다루겠다.
1. 훈민정음 반포문 첫 구절은 누구나 즐겨 인용한다.
“國之語音이 異乎中國ᄒᆞ야 ~”
이 첫 구절에 이미 ‘語’와 ‘音’ 즉 ‘말’과 ‘소리(발음)’를 거론하였지, 글자를 주제로 삼지 않았다. 물론 뒤에서 백성들이 글로써 자신의 뜻을 드러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말’을 읽고 쓸 수 있으면 뜻을 드러낼 수 있다고 하였음도 누구나 알고 있다.
2. 또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는 신하들과의 논쟁에서도 세종은 지방(영역)마다 발음이 다르다는 사실을 전제하며 그 다른 발음을 바로잡아 표준화하겠다는 의지를 매우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언어학자들이 ‘비교 대상조차 없는 과학적 표음문자의 창제’라는 점에만 집중한 나머지, ‘발음의 표기방법과 지방 간의 발음 차이를 극복하겠다는 의도’는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音(음)’의 ‘표기방법이 창제의 핵심 목적’이었음에도, 여기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3. 이러한 의도는 최만리 반대상소에 대한 세종의 답변에도 분명히 드러난다.
“너희들은 운서나 제대로 아느냐? 四聲(사성)이나 七音(칠음)의 자모가 몇 개인지나 아느냐? 이걸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
세종은 契字(글자) 자체의 유용성과 위력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지방마다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저 대륙과 이 땅의 발음이 다르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토로한 것이다.
4. 세종이 ‘발음기호 창제’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는, 자신이 스스로 ‘(훈민)正音’ 즉 ‘바른 소리’라고 명명하였다는 사실이다. 만약 후대인들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문자의 창제’만을 의식하였다면, ‘正文’이나 ‘正字’, 아니면 ‘新文’이나 ‘新字’라고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종은 ‘새 글자(新字)’의 창제가 목적이 아니었고 ‘正音(바른 소리)’ 곧 ‘소리의 표준화’가 목적이었다.

정음을 훼손하면서 ‘한글’이라 명명한 사람이 뭣이 그리 소중한가
‘음(소리)의 바른 표기가 핵심’이었음은 정인지 서문에서도 확실하게 드러난다.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 닭울음이나 개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세종이 잘 만들어 놓았던 4자를 없애므로, 바람소리, 개소리는커녕, 사람소리로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영어의 f, v, th 등등의 발음을 흉내낼 수 없게 되었고, 심지어 r, l의 발음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런 형편임에도 외국어를 마구 남발하여, 그 모국어 화자조차 대부분 알아듣지 못하는 이상한 발음이 난무하는 기형적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뿐인가? 다수의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겠지만, 각자병서와 합용병서의 다름을 뭉개버린 일은 세종의 창제원리에 대못을 박은 행위라고 나무랄 수 있다. 즉 오늘날 소위 ‘쌍자음’이라 불리는 각자병서의 경우, 본래 ‘ㄱ・ㄷ・ㅂ・ㅅ・ㅈ’과 같은 전청(빠르고 짧은 소리)과 ‘ㅎ’이라는 차청(긴소리)을 병기하면 소리를 느리고 길게 하라는 음소표기였지, 오늘날 ‘쌍자음(ㄲ, ㅃ 등)’처럼 된소리를 나타내는 자모가 결코 아니었다.
또 ‘ㅺ, ㅼ’과 같은 합용병서를 부정하므로써 우리 언어가 간직한 언어의 역사성을 되짚지 못하게 하였으며(예컨대 >스탄), 이 글에서는 깊이 다루지 못하지만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간직된 文典(문전), 소위 문법체계의 하나인 餘音(여음)에 무지하였던 탓에 언어표기를 크게 망쳤다. 게다가 두음법칙과 구개음화로 나타나는 소리의 변형을 그대로 표기에 반영하게 하므로 원래 어휘 형태를 왜곡시켜 문해력을 떨어뜨렸다.
이렇게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원리를 짓밟고 언어체계를 흩트려 놓은 결과의 총화가 오늘날의 ‘한글’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한글’이라는 명칭의 작성자를 두고 논문으로 공적을 다툰들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한글의 作名父라는 말과 표기에 경악하다
필자는 평소 우리말의 모순, 나아가 급속한 붕괴에 불안을 심각하게 느껴왔다. 그 붕괴의 원인이 무엇인지, 또 그 붕괴가 몰고 올 사회적 혼란, 곧 우리 모든 국민의 정체성 혼란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 것인지 연구하고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첫걸음으로 삼은 것이 바로 ‘한글’이라는 용어의 정당성 검토, 그리고 정음이나 언문을 대체할 만한 당위성과 합리성이 있는지의 검증이었다. 물론 ‘한글’이라는 이름을 만든 사람으로 주시경이 알려져 있고, 그가 엄청난 존경을 받아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고 필자도 존경한다. 그럼에도 필자는 그의 언어학적 지식과 학문적 업적에 대해 오랫동안 의문을 품어 왔다.
당연히 ‘한글전용’의 아성이 철옹성보다도 더 굳건한 오늘날 얼마나 반발이 심할 것인가 모르는 사람도 아니다.
어쨌든 네이버 검색부터 시작하다, 다소 충격적 제목의 글을 보게 되었다.
‘한글’의 作名父가 누구일 것이냐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어느 교수의 글이었다.
참으로 기가 찼다. 주시경 이전에, 다른 분이 이미 ‘한글’이라는 어휘를 사용한 사례가 있었음을 밝혔던 사실이 못마땅하였던지,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주시경이 한글을 명명했다’는 통념에 못을 박겠다는 의도를 여실히 드러냈다.
제목부터 자기 모순이다. 왜 하필 作名父일까? 요즈음 필자와 같이 契(글)을 세계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조차 매우 모호한 경우가 아니라면 문자(契)를 가급적 쓰지 않고, 쓰더라도 契(글) 또는 정음 가운데 하나는 괄호 안에 병기한다. 그런데 이 글의 제목은 괄호조차 없이 作名父라고만 쓰여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첫째, 옆에 소위 한글 발음 표기를 달아놓지도 않은 채 作名父라고만 썼다는 점에서, 한글전용을 그리도 주창하는 국어국문학계의 흐름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작명부’라고만 써서는 의미전달이 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둘째, 契(글)을 전세계 사람들이 모두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필자조차 ‘어?! 무슨 말이지?’ 하며 뜻이 빨리 전하여지지 않을 정도여서 두세 번을 본 다음에야 단어의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한글만으로 모든 소통이 가능하다면 왜 굳이 한글도 없이 作名父만 표기했는가, 또 命名者나 造語者라는 익숙한 표현 대신, 거의 누구에게도 친숙하지 않을 作名父라는 말을 선택하였는가 의심된다. 결국 한글전용을 외치지만, 정작 자신의 주장이 부정당하니 억지 주장을 하려다 모순을 드러낸 것은 아닌가?
한글이라는 어휘 자체는 뜻조차 모호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契(글)은 말이 아니라 ‘문자’를 뜻한다. 후한 때 허신이 만든 ‘설문(해자)’를 보면,
大約也 易曰後世聖人易之㠯書契
큰 약속이다. 역경에서 이르기를 후세의 어느 임금(古書(고서)의 聖人을 흔히 성인이라 번역하지만, 고대의 聖人은 임금을 뜻하여 필자가 임금이라 번역한것이다)이 이것을 서글로 바꾸었다.
후대 청나라 단옥재라는 사람이 대단히 상세한 注(주)를 달면서 발음을 苦計切(고계절), 곧 우리 발음으로 치면 ‘ㄱ+ㅖ=계’가 되지만 저들의 발음은 그렇지 않다. 한편 단옥재의 注(주)에 대하여 모두 동의되지도 않고 필자가 다루는 주제의 글도 아니어서 번역 인용하지 않겠다. 또 옛 발음을 소급해 연구한 漢字古今音表(중화서국출판 1999)에 의하면 대체로 khiet, khiat, khiei으로 발음되었던 것으로 연구되었다. 오늘날 발음은 qì(우리 발음의 계에 대응)와 xiè(설에 대응)이다. 또 강희자전에는 契(글)이 등장하는 예문과 함께 발음이 여러 가지가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契’을 ‘글’이라는 발음하는 사람들은 현재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뿐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자전들도 ‘강희자전’을 참조하여 편찬되었는데, 새긴다는 뜻과 문자 자체를 뜻할 때는 ‘계’, 부족이름은 ‘글’(거란을 말함), 애쓰는 모습이면 ‘결’, 사람이름이면 ‘설’로 읽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契約(계약)’과 같이 한정된 단어가 아니고, 문자 자체를 가리킬 때는 모두 ‘글’이라 발음하였다.
그 증거는, 나이가 든 사람들이라면 모두 ‘서당’만큼이나 ‘글방’이 더 널리 쓰였음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文字를 뜻하는 ‘契’자의 발음은 분명 ‘글’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일상의 뜻과 발음이 우리 자전에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개탄을 넘어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한글’의 ‘한’이 무엇을 근거로 하였는지 따져보자. 한글이라는 어휘에 어울리는 ‘한’에 대응할 만한 뜻글은 무엇이 있을까? 엣센스국어사전(이희승 감수, 민중서림)을 보니 干, 限, 恨, 漢, 韓, 旱, 汗, 閑 등이 올라 있다.
또 다음과 같은 항목이 정리되어 있다.
한1 ‘하나’의 뜻. 대략의 뜻.
한2 <옛> ‘하다’의 관형사형. 큰・많은.
한- ①‘크다’는 뜻 ¶ ~길/ ~글. ②바르다는 뜻 ¶ ~낮/ ~복판/ ~가운데, ③가득하다는 뜻 ¶ ~사발, ④같다는 뜻 ¶ ~패.
그렇다면 ‘한글’에 어울릴만한 뜻글은 韓이 유일하다. 그러나 ‘한글’이란 말을 처음 생각한 사람 머리 속에 그 韓이 있었을까? 만약 민족주의적으로 생각하였다 하더라도, 실제 작명 과정에서 그것이 체계적으로 논증된 바는 없다. 대체로 ‘순수한 토박이 말’을 생각하였을 것이다.
결국 ‘크다’, ‘바르다’, ‘가득하다’는 뜻을 갖는 접두사 ‘한-’만 남는다. 그렇다면 과연 이 ‘접두사’가 세종의 백성 사랑, 음계 하나의 오차까지 잡아내던 천재적 감각, 천문학과 음양오행을 두루 통달한 동양철학의 지식을 모두 종합하여 만든 ‘정음’을 대체할 수 있는 이름으로 충분할까?
만약 ‘하나’의 뜻을 염두에 두었다면, 수많은 글자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뜻이 될 것이요. 또 ‘바르다’는 뜻을 생각하였다면 왜 굳이 세종이 직접 명명한 ‘정음’을 버려야 하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크다’라면 무엇이 큰 것인가, 주체가 없다. ‘가득하다’면 무엇이 가득할까? 모두 애매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한’도 ‘글’도 어느 쪽도 세종의 창제 목적과 세종이 명명하였던 ‘正音’을 합리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명분과 논리성을 갖추지 못하였다.

조선시대 정음과 언문 등의 실제 사용 빈도
필자는 낯선 말을 접할 때, 그것이 본디 우리가 사용하던 말인지, 아니면 일본의 조어를 무비판적으로 차용한 것인가 확인하는 방법으로 조선왕조실록 검색을 즐겨 활용한다. 이번에도 정음 관련 어휘를 검색하였고, 그 사용빈도를 보며 다소 놀랐다.
正音(정음) 2건 2번 (검색 37건 49번 검색. 19번은 음악이나 음운 관련 어휘로 쓰임)
訓民正音(훈민정음) 10건 11번
諺文(언문) 151건 178번 (성종 때 35건, 연산군 25건)
諺書(언서) 386건 433번 (성종 때 출현, 선조, 광해군, 숙종 때 집중)
正音廳(정음청) 10건 15번
諺文廳(언문청) 5건 6번
眞書(진서) 40건 45번(女眞書(여진글) 6건 포함)
漢字(한자) 22건 24번
漢文(한문) 33건(검색:123건 가운데 90건은 인명. 고종 때 26번 집중)
漢音(한음. 소위 중국발음) 38건 41번
漢語(한어. 소위 중국어) 322건 429번
書契(서글) 1170건 (書狀(서장, 편지를)의 뜻으로 사용. 왕조실록 번역본은 모조리 ‘서계’로 옮김)
예상과 달리 ‘언문’과 ‘언서’라는 어휘 사용 빈도가 매우 높았고, ‘정음’과 ‘훈민정음’은 세조 때까지 나타나더니, 뒤에는 성종과 고종 때 각각 한 번씩만 등장한다. 이를 통하여 조선시대 일반적 어휘는 ‘언문’이나 ‘언서’였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언문이나 언서가 ‘자국어를 비하하는 어휘’였다면 세종 스스로 언문청을 설립할 리도 없고, 왕조실록에 그리 자주 등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언문·언서는 실제 행정과 생활 속에서 널리 쓰인 우리 글의 이름이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비록 세종의 본래 의도는 ‘발음 표기법의 창제’였지만, 훈민정음이라는 네 글자로 명명하므로 실제 사용상 다소 번거로운 이름이었다는 점이 널리 정착하지 못한 한 이유일 수 있다. 다만 해례본에서 드러나듯, 백성들이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도구가 되었고, 특히 계층을 넘고 떨어진 가족 간 서신이나 백성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소 수단으로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는 어느 나라, 어느 영역에서도 쉽게 구현되지 못한 문맹퇴치의 역사적 사례였다.
이 땅의 언어학자가 수행할 의무
세종이 창제하고 명명한 대로 (훈민)정음은 ‘바른 소리’를 적는 수단이 일차 목적이었다고 확신한다. 물론 세종의 창제 목적 가운데 또 다른 축은, 모든 백성의 의사소통에 더 빛을 발할 수 있었고, 그것이 ‘자각된 민중 힘으로 작용'하였다는 관점으로 우리 역사와 다른 나라 역사를 비교하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세종이 수천 년 동안 사용해 온 書契(서글)을 없애겠다는 의지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였다’는 참람한 말은 아무리 흔하게 쓰여도 역사성도 합리성도 없다. 이러한 말을 계속한다면 우리나라 사람 모두의 사고 구조조차 파괴할 것이다. 두렵지 아니한가.
이 땅의 언어 관련 학자들은 모두 나서서 이 망발을 제지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또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을 다시 통찰하면서, 이른바 ‘토박이말’이라고 부르는 어휘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각성하고 연구해 보라. 하늘이 왜 ‘하늘’이며, 사람이 왜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토박이말조차 서글에서 기원할 수 있음을 필자는 조심스럽게 귀띔하겠다.
합용병서가 우리말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깊이 연구해야 한다. 그 연구과정은 우리말이 북반구 모든 언어의 뿌리였을 가능성에 대한 열린 시각을 갖게 할 것이다.
우리 어휘는 조사, 감탄사 등을 제외하고 8~90%는 書契(서글)로 이루어졌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즉 書契(서글)을 모르고 우리말은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아주 조금만 연구해 보더라도 서글 창제의 문화배경이 가의 이 아니라, 우리 문화에 있음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곧 서글 창제자가 우리 직계 조상임을 이해하고, 이 문자를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배우고 기억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것이, 이 시대 언어학자의 의무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