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연애지상주의냐 솔로냐

이태상

창간호를 낸 뒤 계절마다 나오는 계간 <홀로>는 연애하지 않는 사람을 문제 있는 ‘미완의 존재’로 보는 연애지상주의를 깨는 잡지란다. 연애를 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자유롭고 풍요로운지를 설파한 칼럼, 사랑과 소유욕의 역설적 관계에 대한 사유와 함께 자취요령, 혼자 하는 여행 등 ‘모태홀로’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60쪽 내외의 분량에 담는단다. <홀로>의 발행인 이진송(이화여대 국문과 대학원)씨는 사랑 자체를 부정하거나 모두 솔로가 되자는 건 아니라며 “연애와 비 연애를 우열 관계로 볼 게 아니라 삶의 한 형태로 평등하게 보자는 것”이란다. 그가 보는 자유연애는 1910년대 개화기, 서양에서 수입된 인위적 문화에 불과하다고 본다. 

 

시집 한 권, 술 한 병, 빵 한 덩어리에 그대가 내 옆에 있으면 더 바랄 것 없다는 지상천국을 노래한 서력 12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오마 카얌은 근본 궁극적 신비 속에 쌓인 수수께끼를 풀 길 없는 우리의 절망감을 술로 달래자고 이렇게 읊었다.

 

 

어제, 이날 이때의 광증이 생겼어라. 

내일의 침묵 또는 승리의 개가나 절망의 비가도

자, 마시자. 

어디서 우리가 왔으며 왜 왔는지 모르나니

어서 마시자.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알 수 없나니. 

 

그 한 예로 영국 시인 딜란 토마스(1914-1953)를 들 수 있으리라. 특히 죽음과 종교와 섹스 그리고 사랑의 여러 가지 무드와 스타일로 무아의 황홀경에서 부르짖는, 고음으로 오르기도 하고 비통 침울한 저음으로 가라앉기도 하는 언어의 발음과 발성에 매료되고 집착했던 그는 미국 순회강연 도중 39세로 그의 삶을 마감했다. 당시 검시관의 진단서에 기재된 사망 이유는 그가 하룻밤에 스트레이트로 위스키를 연거푸 열여덟 잔이나 마신 그의 ‘두뇌에 대한 모욕’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살아서 쓴 ‘그리고 죽음이 지배하지 못하리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미칠지라도 그들의 정신은 말짱할 것이오.

바다에 빠져도 그들은 다시 떠오를 것이오.

연인들은 없어져도 사랑은 남을 것이오.

그리고 죽음이 지배하지 못하리라. 

 

마치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함을 앎이로다.”(로마서 6장 9절)했듯이, 술에 취했던 성령에 취했던 간에, 주정뱅이, 협잡사기꾼, 식객이었던 건달 딜란 토마스도 예수처럼 그가 살아생전에 꿈도 못 꾸던 영광을 사후에 누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의 산문과 희곡을 통해 유감없을 정도로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탕진한 시인으로서 게걸스러운 그의 영혼은 성령에 취했든 안 했든 간에 성신의 거룩한 제단에 펼쳐지는 시심의 향연에 참석하게 되어 흔희작약하였으리라. 영국 런던 템즈 강가에 자리한 웨스트민스터 성당 ‘시인의 코너’에 한 자리를 차지, 그의 기념비가 1982년에 건립되었다. 그것도 그에 못지않게 방종 방탕했던 바이런 경의 기념비 옆에 건립했다. 이렇게 이슬 먹고 구름똥 싸며 바람처럼 살다 간 ‘자유인’들은 그렇다 치고 우리 평범한 속물들은 어쩌랴. 삶의 다른 한쪽 죽음을 의식하고 사는 것 이상의 종교도, 죽음을 안고 사는 삶을 더할 수 없이 잘살아보는 것 이상의 예술도, 사랑으로 숨 쉬고 사는 사랑 이상의 삶도 없으련만…….

 

정녕 누구와 만났다 헤어지는 것이 그 어느 누구의 뜻과 섭리에서인지 알 길 없지만 사랑의 사자(使者) 큐빗의 수많은 화살을 운 좋거나 아니면 나쁘게도 용케 맞지 않는 사람들은 어쩌며, 운수 대통인지 아니면 운수가 사나워 이 ‘사랑의 화살’을 한 가슴에 연거푸 맞고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의 깊은 상처는 그 누가 다스려 아물게 해줄 수 있을까. 이 사랑의 독침을 맞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실연의 가시덤불 속에서 남몰래 소리 없이 몸부림치면서 온몸으로 피눈물 흘리고 있으리라. 붉은 피가 창백해지도록.  

 

이 쓰도록 맵도록 새콤달콤한 사랑의 미약(媚藥)을 맛보고 사랑의 마술에 한 번 걸리면 이 마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랑만을 위해 살든지 죽든지 하라’는 사랑의 절대적인 지상명령을 거역할 수 없게 되나 보다. 사랑과 삶이 또 죽음까지도 연인들에게는 같은 이상, 같은 현실, 같은 진실의 삼위일체가 되는 것. 그렇다면 이 어떤 일일까.

 

장밋빛 인생은 가시덤불

장밋빛 사랑은 꿈속의 사랑

 

이것이 정말 사실이더냐. 참말로 그렇다면 어째서일까. 

 

“삶에는 방정식이 없다. 오직 무늬만 있을 뿐! 만약 방정식이 존재한다면 그동안 수많은 수학자나 과학자들이 평생을 다 바쳐서라도 복잡다단한 공식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삶은 살아보지 않고서는 답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다. 제일 큰 미스터리는 어떻게 정신이 육체 속에 들어오는 가다.”

 

-정명숙 시인

 

 

여기서 우리 칼릴 지브란의 ‘선구자’ 경구(警句) 하나 들어 보자. 

 

눈처럼 흰 종이 한 장이 말했다.

순결하게 나는 창조되었으니 

영원무궁토록 나는 순결하게 살리라.

내 몸에 더러운 것이 가까이 오거나 

검은 것이 내 몸에 닿는 것을 참고 견디느니

차라리 나는 불에 타서 하얀 잿가루가 되리라.

 

잉크병이 이 말을 듣고 그 시꺼먼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그는 종이에게 접근조차 안 했다. 종이가 하는 말을 들은 색색이 색깔의 여러 가지 색연필들도 또한 종이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눈처럼 흰 종이는 순결하고 정숙하게 영원토록 있었다. 순결하고 정숙하게. 그러나 외롭고 공허하게.

 

옳거니, 고통을 당할 바에는 사랑 때문에 넘치는 사랑 때문에 받는 고통 이상 또 뭣이 있으랴. 사랑이 가능만 하다면 사랑이 절로 샘솟기만 한다면 어떤 수난이나 고통도 감미롭기 때문이지. 이 세상 그 어느 누구에게도 너무 많이 줄 수 없는 것이 세상에 사랑밖에 또 있으랴. 아무리 쏟고 또 쏟아도 탕진되지 않고 고갈되지 않는 것이 세상에 사랑 말고 또 있으랴. 아무리 주고 또 줘도 그 더욱 주고 싶고 아무리 받고 또 받아도 그 더욱 받고 싶고 결코 주는데 지치지 않고 받는데 싫증나지 않는 것이 세상에 사랑뿐이리라. 그리고 하다못해 짝사랑인들 어떠랴.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1807-1882)의 말처럼.

 

사랑은 흐르는 샘물같이 

비록 목마른 이의 갈증을

풀어주지 못하는 때에라도 

흘러흘러 바다로 가다가

날씨가 가물기라도 하면 

홀연히 온데간데없이 

없어져 자취를 감추지만 

증발한 샘물은

결코 없어진 것 아니고 

저 푸른 하늘 떠도는 

조각구름 되었다가

빗물로 쏟아져 내려와 

그 샘을 그 더욱 

넘치도록 가득 채우지.

 

청소년 시절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보다가 ‘내가 만난 가장 잊을 수 없는 사람’이란 글 서두에 인용된 다음과 같은 시구(詩句)에 그것 참 가능하고도 남아 한참 거슬러 주고도 많이 남을 일이라고 가슴을 치면서 깊이 공감했었다. 그 어느 누구를 이렇게 죽도록 사랑해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행복이 세상에 또 있으랴 하면서.

 

사랑스럽고 상냥한 여인이 있지

이처럼 내 맘에 드는 얼굴을 본 적이 없어

나는 이 여인이 지나치는 모습만 봤을 뿐이지만 

내 목숨 다하는 날까지 

이 여인을 난 사랑할 거야. 

 

영국시인 바네입 구지(1540-1594)

 

그때 그 순간 애간장을 저미도록 간절한 나의 소원은 내 인생 사는 동안 그런 여인을 단 한 사람만이라도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디 나뿐이었으랴. 언젠가 비디오로 본 우리나라 토크 쇼 ‘세상사는 이야기’에 나온 34세의 한 ‘노총각’이 소년시절부터 7년 동안 짝사랑한 아가씨에게 바치는 다음과 같은 독백은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것 같다.  

 

세상에 당신을 사랑하는 남자가 백이 있다면

나는 그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세상에 당신을 사랑하는 남자가 하나 있다면 

내가 바로 그 남자일 것입니다.

세상에 당신을 사랑하는 남자가 하나도 없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 내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아가씨를 너무너무 간절히 사모하다 못해 그는 어느 날 동네 시냇가에서 돌 하나를 차면서 ‘이 돌이 시냇물에 떨어지면 그 아가씨가 날 좋아하지 않는 것이고 그 돌이 냇물 건너편에 떨어지면 그 아가씨가 날 좋아하는 것이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힘껏 그가 그 돌을 찼을 때 돌이 건너편 냇가 둑에 맞아 부서지더라고. 그야말로 김소월의 시 ‘초혼’에서와 같이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아니었을까. 또 지난 60년대 미국의 인기가요 ‘몰래 하는 사랑’의 노랫말처럼 “가슴이 터지도록 마음속으로 짝사랑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산꼭대기에 올라가 별에게라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또 그 언젠가 내가 어렸을 때 읽은 동화가 있다. 벌 한 마리가 나비를 짝사랑하다 어느 날 그 나비가 자기는 거들떠보지 않고 아름다운 꽃들만 찾아다니는 것을 보고 너무도 가슴 아파 몸부림치며 하늘로 치솟아 그의 그리움에 찬 숨이 얼어 달무리가 됐다는 너무도 애처롭고 안타까운 얘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짝사랑하며 살다 보니 그런 여인을 하나만 아니고 수도 없이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다. 날이면 날마다 시시각각으로, 감지 않고 눈을 뜨고 있는 한 길을 가다 만나기도 하고 영화나 TV 화면을 통해 만나기도 하고 책 속에서 만나기도 하고 아니면 꿈속에서도 만나게 된다. 어린아이라도 되고 그 아이 엄마 또는 그 누구의 부인이라도 괜찮고 그 아무라도 다 좋다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아무리 좋아하고 사랑해도 부족하고 더할 수 없어 한없이 슬플 뿐이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헷세가 말했듯이 ‘아름다움은 순간적인 찰나’라면, 다시 말해 불꽃놀이 불꽃처럼 터져 피어오르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라면, 꽃도 이슬도, 젊음도 목숨도, 인생 자체도 세상 모든 것이 그렇지 않으랴. 그럴진대 결코 반복되지 않고 늘 변하고 있는 모든 것의 모든 모습에서 영원토록 기억하고 남을, 스냅사진 찍듯 순간순간 새롭고 다른 아름다움을 보면서 애간장이 타고 녹도록 애달픈 사랑을 해 보리라.  

 

모든 순간적인 풍경과 장면에서

모든 순간적인 표정과 모습에서

모든 순간적이 생명이 피어나는

모든 순간적인 사랑이 타오르는 

모든 순간적인 불꽃놀이 불꽃의

모든 순간적인 모든 아름다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사랑하면서

순간순간 철저하게 끝내 주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5.11.22 10:42 수정 2025.11.2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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