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지도 위에 권력자들이 무심코 그은 선 하나가 수백만 명의 운명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사례는 뼈아플 정도로 흔했다. 1차 세계대전 직후 중동의 국경을 제멋대로 재단하여 오늘날 분쟁의 씨앗을 뿌린 '사이크스-피코 협정'이 그러했고, 우리 한반도의 허리를 가른 38선이 그러했다. 그리고 2025년의 문턱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잔인한 선이 그어지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이 폭로한 미 중앙사령부(CENTCOM)의 문건에 기반한 '가자 지구 분할 계획'은 단순한 전후 처리 방안이 아니다. 그것은 한 도시의 심장에 칼을 대어 '살릴 곳'과 '죽일 곳'을 나누는 현대판 선별 작업(triage)이자, 실패한 국제 정치가 낳은 가장 기형적인 청사진이다.
이 계획은 가자 지구를 재건이 허락된 동쪽의 '녹색 지대(Green Zone)'와, 폐허 속에 방치될 서쪽의 '적색 지대(Red Zone)'로 나누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건조한 색깔론 뒤에 숨겨진 실체는 전율이 일만큼 냉혹하다. '녹색'은 생명을 상징하는 색이어야 마땅하나, 이 계획 속의 녹색은 철저한 '복종과 통제'를 의미한다. 반면 '적색'은 경고가 아니라, 철저한 '버려짐'을 뜻한다.
이 계획의 가장 섬뜩한 지점은 지도를 가르는 새로운 경계선, 즉 '황색 라인(Yellow Line)'의 등장이다. 현재 이스라엘군이 통제하는 이 선을 기준으로 동쪽은 문명의 혜택이 주어지는 곳, 서쪽은 야만의 폐허로 남겨지는 곳으로 운명이 갈린다. 우리가 이 계획에서 읽어야 할 첫 번째 텍스트는 바로 미국의 지정학적 피로감과 냉소주의다. 과거 미국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국가 건설(Nation Building)'이나 민주주의의 확산을 외쳤다. 그러나 이번 계획은 다르다. 하마스를 완벽히 제거할 수 없다는 군사적 실패를 자인한 뒤, 통제 가능한 구역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도려내겠다는 외과 수술식 포기 선언에 가깝다.
새롭게 밝혀진 사실 중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국제 안정화 부대(Uluslararası istikrar gücü)'의 역할이다. 통상적으로 국제 평화유지군은 분쟁 지역 전체의 안정을 위해 투입된다. 하지만 미국의 구상에 따르면, 이 국제 병력은 오직 '녹색 지대'에만 배치된다. 그들의 임무는 가자 지구 전체의 평화가 아니라, 이스라엘군과 협력하여 국경 통과 지점을 관리하고, 재건이 이루어지는 특정 구역을 요새화하는 것에 국한된다.
이는 국제 사회가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선별적 통제'를 돕는 하청 업체로 전락하게 됨을 의미한다. 국제군이 이스라엘과 통합된 형태로 국경을 관리한다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주권이 사실상 소멸하고, 녹색 지대가 이스라엘의 위성 통치 구역으로 편입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반면, '적색 지대'로 명명된 서쪽 해안가는 그야말로 지상의 연옥이 될 운명에 처했다. 문건은 이곳이 하마스의 통제하에 남게 될 것이며, 국제군은 이곳에서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곳이 '재건 없이 폐허(harabe) 상태'로 방치될 것이라는 점이다. 200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식수도, 전기도, 지붕도 없는 이 폐허 속에 갇히게 된다. 21세기 문명사회에서 특정 인구 집단을 잔해 속에 가두고, 삶이 아닌 생존만을 강요하는 계획이 버젓이 전략 문서로 작성되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정치적 주체가 아닌, 관리되어야 할 위험 요소, 혹은 격리되어야 할 바이러스 취급을 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적색 지대에 갇힌 사람들에게 하늘은 지붕이 아니라 폭격의 통로일 뿐이며, 땅은 삶의 터전이 아니라 거대한 무덤이 된다.
전문가들은 이 상황을 두고 "전쟁도 아니지만, 평화도 아닌(savaş da olmayan ama barış da olmayan)" 상태가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는 평화학에서 말하는 가장 나쁜 시나리오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에 재건은 불가능하고, 평화가 오지 않았기에 삶은 지속될 수 없다. 공식적인 종전 선언 없이, 산발적인 테러와 보복이 일상화된 '동결된 분쟁(Frozen Conflict)' 상태가 고착화되는 것이다. 이는 지난달 논의되었던 휴전 합의나,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PA) 주도의 영구적 정치 해결책이라는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처사다.
마치 두 개의 주사위를 던진 것과 같다. 한쪽 주사위(녹색 지대)는 재건과 안전이라는 혜택을 받지만, 다른 쪽 주사위(적색 지대)는 절망과 고립이라는 꽝을 뽑았다. 이 불균형은 결국 가자 지구를 영구적으로 분열시킬 것이다. 하나의 통합된 팔레스타인 국가는 사라지고, '번영하는 식민지(녹색)'와 '고립된 게토(적색)'라는 기형적인 두 개의 실체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적색 지대의 폐허 속에서 자라날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저 멀리 보이는 녹색 지대의 불빛을 바라보며 박탈감과 증오를 키울 것이고, 이는 또다시 하마스나 혹은 더 극단적인 세력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결국 이 분할 계획은 안보를 위한 것이라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다음 전쟁의 씨앗을 가장 비옥한 증오의 토양에 심는 행위다.
미국의 이러한 접근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 속에서 중동 문제에 더 이상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을 여력이 없는 제국의 현실을 반영한다. 그들은 '해결'보다는 '관리'를 택했다. 그러나 그 관리의 방식이 너무나도 비인도적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벽을 세워 문제를 가두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기 귀찮아 답안지를 찢어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폐허 속에서 숨 쉬는 200만 개의 심장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유닛이 아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아버지이며, 꿈을 꾸는 아이들이다. '적색 지대'라는 행정 용어로 그들의 고통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 재건에서 배제된 채,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사이에서 내일을 기약해야 하는 삶을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가? 국제 안정화군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200만 명의 고통을 외면하고 선택된 소수만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과연 '정의'인가?
이 잔인한 이분법은 결국 실패할 것이다. 역사는 증명한다. 억압과 차별, 그리고 물리적 격리를 통해 얻은 평화는 모래성보다 약하다는 것을. 녹색 지대의 안온함은 적색 지대의 절규가 멈추지 않는 한 결코 유지될 수 없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천국과 지옥을 나누려는 시도는 언제나 지옥의 불길이 벽을 넘어오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도를 찢어 구역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찢어진 땅을 기우고,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는 통합의 청사진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국제 사회는 '효율적인 통제'라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한 안보는 상대방을 폐허 속에 가두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폐허를 함께 치우고 빵을 나누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가자 지구의 지도가 '녹색'과 '적색'으로 칠해지는 순간, 우리의 양심은 '검은색'으로 물들 것이다. 먼 훗날 역사는 2025년의 우리를 어떻게 기억할까. 폐허 속에 갇힌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던, 비겁한 방관자들의 시대로 기록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지도 위에 선을 긋는 자들은 기억해야 한다. 그 선이 그어지는 곳은 종이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살과 피 위라는 사실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