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섰다. 2022년 급등 이후 3년 만의 고환율 구간 재진입이다. 미국의 금리 인하 지연,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국내 경기 둔화 우려 등이 맞물리며 원화 약세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생활경제 전반에서는 고환율 충격이 실물로 전이되며 ‘긴축 일상’이 확산 중이다. 2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01.2원까지 상승했다가 1497원 선에서 거래를 마쳤다.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1500원대를 넘어서자 시장은 일시적인 관망세에 들어갔다.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강세가 추가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환율 상승의 체감 충격은 해외 체류자들에게서 가장 먼저 나타났다.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 주요 유학지에서는 생활비와 등록금이 동시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의 한 유학생 부모는 “한 달 유학비로 송금하던 2,000달러가 이제는 300만 원을 훌쩍 넘는다”며 “생활비를 절반으로 줄였다”고 토로했다.
해외 파견 근무 중인 주재원들도 마찬가지다. 유럽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주재원은 “급여는 그대로인데 환율이 오르니 현지 구매력이 급감했다”며 “식비를 아끼기 위해 직접 김장을 담그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체류 지원비가 환율 변동에 연동되지 않아 실질 급여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여행 수요는 여전히 견조하지만, 현지 지출 규모는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해외 카드 결제액은 전년 동기 대비 7% 감소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일본·동남아 노선은 꾸준하지만, 식비와 쇼핑 예산을 줄이는 여행객이 많다”며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고환율 체감 긴축’이 여행산업뿐 아니라 국내 소비 전반에도 심리적 위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소비자연구원은 “환율 급등이 해외 소비뿐 아니라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국내 체감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환율 국면이 장기화되자 안전자산으로의 쏠림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시중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은 한 달 새 11% 증가했다. 일부 은행에서는 달러예금 신규 개설이 몰리며 상담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
보험업계에서는 달러보험 상품의 신규 가입이 전월 대비 18% 이상 늘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환테크(환율+재테크)’ 수요도 확대됐다. 외화채권, 달러 ETF, 글로벌 머니마켓펀드(MMF)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시중은행 PB센터 관계자는 “최근 개인 고객 중 상당수가 원화 자산 일부를 달러로 분산 보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고환율이 외환시장 불안으로 번지지 않도록 환율 안정화 조치를 강화할 방침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환율 급등을 단기적 피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 투자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달러 강세가 연말까지 유지될 가능성은 낮다”며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이 가시화되면 원화는 점진적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환율이 하락하더라도 체감물가 안정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수입물가와 유통비용에 환율이 반영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은 “환율 상승이 3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수입식품과 항공료 등 체감물가 상승률이 0.3~0.5%포인트 더 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 “과도한 시장 불안은 없다”… 그러나 민생 부담 여전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을 열어두며 시장 안정을 우선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재 환율 수준은 글로벌 금융 여건과 국내 수급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판단된다”며 “시장 불안을 과도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생경제의 부담은 이미 가시화됐다. 유학생, 파견근로자, 여행객뿐 아니라 수입 중소기업, 항공·관광업계 등 환율 영향을 직접 받는 산업계의 비용 압박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특히 중소 수입업체는 결제 대금 부담이 급증하면서 단기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곳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달러 예금 쏠림 현상을 단기적 피난이 아닌 국내 통화 신뢰 약화의 신호로 해석한다. 국내 한 금융연구소 관계자는 “1500원 환율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한국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신뢰 수준을 반영한다”며 “정부와 한은이 원화 신뢰 회복 메시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환율 안정의 해법은 외환시장 개입이 아닌 경제 체력 강화와 투자심리 회복에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환율 급등세가 일시적 조정에 그칠지, 한국 경제의 체질적 약세로 굳어질지는 연내 글로벌 통화정책 변화에 따라 판가름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