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밈은 농담에서 시작하지만, 시대를 비춘다
2025년, 한국의 온라인 공간에서 두 단어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테토녀’와 ‘에겐남’. 처음엔 웃음 섞인 SNS 밈이었다.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 여자’, ‘에스트로겐(Estrogen) 남자’. 하지만 이제는 그저 유머로만 소비되지 않는다. 이 밈은 세대가 젠더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졌음을 드러내는 하나의 사회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호르몬 밈에서 사회언어로
‘테토녀’는 주도적이고 자기결정적인 여성, ‘에겐남’은 감정과 관계의 균형을 중시하는 남성을 상징한다. 최근 일부 매체에서는 이 용어를 ‘테이크 톨러런스 여성(Take Tolerance Woman)’, ‘에코노믹 젠틀맨 남성(Economic Gentleman)’으로 해석하며 자기 주체성과 공감 능력을 각각 상징하는 사회적 코드로 분석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단어가 생물학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심리적 성향과 사회적 가치관을 설명하는 언어로 쓰인다는 것이다. 즉, 호르몬이라는 자연과학의 단어가 사회언어로 재해석된 것이다.
데이터로 본 젠더 감수성의 이동
‘테토녀·에겐남’ 밈이 공감을 얻는 배경에는 세대의 젠더 감수성 변화가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24년 발표한 「젠더 인식 변화 실태조사」에 따르면, 20~30대 응답자의 67.4%가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이는 2016년 48% 대비 19%p 상승한 수치다.
또한, 트렌드모니터(2025) 조사에서는 “성별보다 개인의 성향과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답한 비율이 70%를 넘었다. 이는 젠더를 사회적 지위나 역할이 아닌 정체성의 일부로 인식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즉, 사람들은 이제 ‘남자답게’, ‘여자답게’보다 ‘나답게’라는 표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사회심리학이 본 변화: 역할에서 성향으로
사회심리학적으로 젠더는 오랫동안 ‘사회적 역할’로 설명돼 왔다. 그러나 2020년대 후반 들어 젠더는 ‘정체성과 성향의 스펙트럼’으로 이해되는 추세다.
서울대 사회심리연구소의「젠더 역할 변동 보고서」(2025)는 이 현상을 “사회적 성(Social Gender)에서 심리적 성(Psychological Gender)으로의 이동”으로 분석했다. 즉, 사람들은 자신을 더 이상 ‘남성/여성’이라는 범주로 한정하지 않고, 내면의 에너지, 감정, 의사결정 스타일 등으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테토녀’와 ‘에겐남’은 이런 변화의 결과물이다.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아니라, 성향 중심의 자기 이해가 강화되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다.
디지털 세대와 자기서사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에서는 #테토녀, #에겐남 해시태그를 단 콘텐츠가 수천만 조회수를 넘겼다.(2025년 10월 기준, 약 3,000만 회 — 데이터랩 추산) SNS에서 이 밈은 자기 정체성 표현의 수단으로 작동한다.
“나는 테토형이라 추진력이 강해요.”
“나는 에겐형이라 감정선이 깊어요.”
이런 언어는 개인의 내면적 특질을 ‘사회적으로 이해 가능한 코드’로 바꿔준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메타정체성(Metacategorical Identity)’이라 부른다.
즉, 사회언어를 통해 스스로를 설명하고, 자기서사를 사회적 구조 속에 배치하는 방식이다. 이제 사람들은 ‘성별’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

호르몬에서 정체성으로, 정체성에서 공존으로
‘테토녀’와 ‘에겐남’은 결국 세대의 자화상이다. 호르몬에서 출발했지만, 그 의미는 생물학을 넘어 사회, 심리, 문화의 언어로 확장되었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교체”가 아니라 “성 역할의 재구성”이며, “정체성의 다층화”다.
2025년의 젠더 담론은 이분법을 벗어나고 있다. 성별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성향·가치·관계의 방식이 새로운 사회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테토녀’와 ‘에겐남’은 결국 “나를 설명하는 새로운 언어를 찾는 세대의 실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