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 대한 이슬람과 기독교의 차이: 남편의 자격을 다시 묻다

-올라간 손과 뚫린 손: 당신의 사랑은 통제인가, 희생인가?

-당신의 가정은 거래처인가, 십자가인가? : 계약을 찢고 언약으로.

-카와문의 권위 vs 아가페의 죽음.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올라간 손과 뚫린 손: 사랑의 두 가지 얼굴 - 꾸란 4장 34절과 에베소서 5장 25절 사이의 깊은 심연에 대하여

 

성경과 꾸란, 두 경전은 수십억 인류의 영혼을 지배하는 거대한 두 개의 산맥이다. 그러나 ‘여성’과 ‘아내’라는 주제 앞에 섰을 때, 이 두 산맥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깊은 협곡이 입을 벌리고 있다.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 그리고 권위라 착각하는 것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서다. 여기, 두 가지 종류의 ‘손’이 있다. 질서를 위해 높이 치켜든 손과, 사랑을 위해 못 박힌 손. 그대는 어느 손을 잡겠는가?

 

사막의 질서: ‘카와문(Qawwāmūn)’의 무게와 계약의 논리

 

먼저 꾸란 4장 34절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 보자. 이 구절은 이슬람 사회의 가정관을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이다. 알라의 말씀은 명료하고 단호하다.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Qawwāmūn)이다. 이는 알라께서 한쪽에게 다른 쪽보다 더 많은 것을 주셨고, 남성이 그들의 재산으로 부양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카와문’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돈을 벌어오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리자’, ‘통치자’, ‘질서를 세우는 자’라는 강력한 권위를 내포한다. 이슬람의 결혼은 철저한 ‘계약’이다. 남편은 경제적 부양과 보호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아내는 순종과 정절을 제공한다. 이것은 사막의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매우 합리적이고 공정한 거래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계약이 깨졌을 때, 즉 아내가 순종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누슈즈, nushūz), 꾸란은 남편에게 서늘한 권력을 쥐여준다. 훈계하고, 잠자리를 거부하며, 그래도 안 되면 ‘때리라(daraba)’라는 것이다. 물론 수많은 현대 이슬람 학자가 이 ‘때림’을 상징적인 것이거나 가벼운 칫솔 같은 것으로 쳐야 한다고 방어하려 애쓴다. 하지만, 수많은 무슬림 남성의 뇌리에 박힌 이 구절의 본질은 변명할 여지 없이 명확했다. 그것은 “내게는 너를 통제할 힘이 있다”라는 권위의 선언이다.

 

이것은 ‘상명하복’의 세계다. 질서가 사랑보다 우선한다. 남편의 손은 언제든 가정의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위로 올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은 분명 보호의 손길이지만, 동시에 언제든 징계의 채찍이 될 수 있는 ‘두려운 손’이다.

 

골고다의 역설: 죽음으로 완성되는 권위

 

이제 시선을 돌려 에베소서 5장 25절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 보자. 당시 로마 시대의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사도 바울은 혁명을 넘어선 반역에 가까운 선언을 한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심과 같이하라."

 

이것은 미친 명령이다. 세상의 어떤 군주가, 어떤 가장이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단 말인가? 여기서 요구되는 사랑은 감정적인 낭만이 아니다. 그것은 ‘아가페(Agape)’, 즉, 조건 없는 희생이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한 방식은 교회가 아름답거나 순종적일 때가 아니었다. 교회가 여전히 죄인이고, 더럽고, 반역할 때, 그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을 찢고 피를 쏟았다. 성경이 말하는 남편의 권위는 ‘지배’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철저한 ‘자기 비움’과 ‘죽음’에서 나온다.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남편이 아내를 위해 죽는 것이다.

 

꾸란의 남편이 질서를 잡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릴 때, 성경의 남편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손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이것은 계약이 아니다. 이것은 ‘언약(Covenant)’이다. 계약은 상대가 의무를 어기면 파기되지만, 언약은 상대가 배신해도 내가 그 대가를 대신 치르며 끝까지 붙드는 것이다. 에베소서의 명령은 남편에게 ‘왕’이 되라고 하지 않는다. ‘구원자’가 되라고, 아니 더 정확히는 ‘희생제물’이 되라고 요구한다.

 

통제하는 힘 vs 녹여내는 힘

 

이 두 경전의 차이는 단순히 문화적 차이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 존재와 관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세계관의 충돌이다. 꾸란의 세계관은 ‘공정함’에 기초한다. “네가 했으니 나도 한다.” “네가 안 했으니 나도 안 준다.” 이 논리는 차갑지만 명쾌하다. 그래서 이슬람의 가정은 겉보기에 질서 정연해 보인다. 강력한 권위 아래 통제된 평화가 흐른다. 하지만 그 평화는 두려움 위에 세워진 유리성일 때가 많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 순종하고, 남편은 권위를 잃을까 두려워 억압한다.

 

반면, 성경의 세계관은 ‘은혜’에 기초한다. “네가 하지 않았어도 나는 한다.” “네가 자격이 없어도 나는 내어준다.” 이것은 불공평하다. 세상의 계산기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손해 보는 장사다. 하지만 바로 이 ‘비대칭적인 사랑’만이 사람을 진정으로 변화시킨다.

 

지금도 율법의 채찍으로 억눌린 여성들이 예수의 복음을 듣고 변화되는 수많은 얘기가 들린다. 남편이 군림하기를 멈추고, 예수처럼 발을 씻겨주며 섬김의 자리에 내려앉았을 때, 굳게 닫혀 있던 아내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기적을 보았다. 힘으로 굴복시킨 순종은 껍데기뿐이지만, 사랑에 감동하여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순종은 죽음보다 강하다. ‘올라간 손’은 상대방의 행동을 통제할 수는 있어도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뚫린 손’은 상대방의 영혼 깊은 곳을 찔러, 그를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이 시대를 향한 질문: 계약인가, 언약인가?

 

우리는 지금 21세기, 개인의 자유가 신성시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정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왜일까? 우리가 결혼을 너무나 가벼운 ‘계약’으로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

 

“성격이 안 맞아서”, “더 이상 설레지 않아서”, “나에게 손해가 되어서”… 수많은 이혼 사유가 결국 “상대방이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꾸란의 논리, 즉 ‘거래의 논리’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준 만큼 받아야 하고, 받지 못하면 분노하며 관계를 깨뜨릴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이런 시대에 에베소서 5장의 외침은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그대는 계약 파트너를 구하는가, 아니면 언약의 동반자를 구하는가?” 언약은 상대방의 결점과 죄악마저도 나의 책임으로 끌어안는 것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거룩함과 회복을 위해 나의 행복을 기꺼이 제단 위에 바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오직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절대적인 사랑을 경험한 자만이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신의 영역에 속한 사랑이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그대의 손을 보라

 

당신의 손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가정 내에서, 혹은 연인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당신의 손은 어디를 향하는가? 자신의 자존심과 권위를 세우기 위해 높이 치켜들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상대방의 허물을 덮고 그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상처 입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슬람과 기독교, 두 거대한 강물은 ‘여성’과 ‘가정’이라는 주제 앞에서 서로 다른 바다로 흘러간다. 하나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질서의 바다로, 다른 하나는 ‘희생의 신비’가 흐르는 은혜의 바다로.

 

사막의 밤바람이 창문을 두드린다. 저 바람 소리 너머로,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 들려왔던 망치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쿵, 쿵, 쿵. 그것은 세상을 지배하려는 힘을 무력화시키고,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자신의 손을 내어주신 신의 울음소리였다.

 

이제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상대를 통제하여 나의 성을 쌓을 것인가, 아니면 나를 깨뜨려 상대를 꽃피우게 할 것인가. 그대의 가정은 계약서 위에 서 있는가, 아니면 십자가 위에 서 있는가. 

 

작성 2025.11.28 04:19 수정 2025.11.2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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