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까지 대형 언어모델(LLMs)은 에세이 작성이나 간단한 계획 수립에는 탁월했지만, 복잡한 수학 문제나 논리적 사고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기존 모델이 언어의 ‘패턴’을 학습해 문장을 생성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등장한 ‘추론형 언어모델(Reasoning Model)’은 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단순한 문장 예측을 넘어, 인간처럼 사고의 단계를 거쳐 답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추론형 모델의 작동 원리
추론형 모델은 인간의 사고 과정을 모방하는 인공신경망(Neural Network) 기반의 시스템이다. 이 모델은 단순한 ‘입력-출력’ 구조를 넘어서, 문제를 단계적으로 분석하고 해결한다.
* 단계적 사고(Step-by-step Reasoning)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델은 문제를 여러 단계로 분리한다.
인간이 복잡한 문제를 ‘쪼개서’ 생각하듯, 모델도 중간 단계를 설정하며 해결 경로를 탐색한다.
*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모델은 스스로 정답에 도달하는 과정을 학습한다.
올바른 답을 도출하면 ‘보상’을, 잘못된 답을 내면 ‘패널티’를 받는 방식으로
마치 인간이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하듯, 더 나은 사고 패턴을 강화한다.
* 내적 연산 추적(Internal Computation Tracking)
모델이 문제를 푸는 동안 생성하는 일련의 ‘토큰(token)’은
내부의 사고 과정을 기록하는 일종의 ‘자기 대화(Self-talk)’로 해석된다.
이는 사용자가 보는 결과물이 아니라, 모델이 스스로 사고를 전개하는 과정의 흔적이다.
MIT 연구팀의 발견: “AI도 생각에는 비용이 든다”
MIT 맥거번 뇌과학연구소(McGovern Brain Institute)의 에블리나 페도렌코(Evelina Fedorenko) 교수 연구팀은
AI의 사고 과정이 인간의 사고와 놀라운 유사점을 지닌다는 사실을 밝혔다.
연구팀은 인간 피험자와 추론형 모델에 동일한 문제를 제시하고, 각각의 ‘사고 비용(Thinking Cost)’을 비교했다.
인간에게는 문제를 푸는 데 걸린 시간(밀리초 단위)을, AI 모델에는 정답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토큰의 수를 측정했다.
실험 결과: 인간과 모델의 ‘노력 패턴’이 일치하다
분석 결과, 인간이 오래 고민할수록 모델도 더 많은 토큰을 생성했다.
즉, 문제의 난이도와 사고의 깊이가 인간과 AI 모두에게 동일한 ‘비용’으로 작용한 셈이다.
특히, 인간이 가장 어려워한 문제 유형(예: ARC 논리추론 문제)은
모델 역시 가장 많은 토큰을 소비하며 해결해야 했다.
반면, 단순한 산술 문제에서는 인간과 모델 모두 빠르고 효율적인 결과를 보였다.
이러한 상관관계는 단순한 우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모델이 인간의 사고 과정을 ‘설계상’으로 모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사고 비용’이 인간과 동일한 패턴으로 수렴한 것이다.
인간의 두뇌와 AI의 ‘비언어적 사고’의 공통점
연구팀은 이 현상이 AI가 인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언어를 통해 사고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모델이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생성하는 토큰은 언어적 표현이지만,
그 실제 연산은 언어를 초월한 비언어적, 추상적 표현 공간에서 수행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인간이 머릿속으로 ‘언어 없이 생각’할 때의 뇌 활동과 유사하다.
결국, 추론형 모델의 사고 구조는 인간 두뇌의 인지적 처리 과정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AI가 점차 언어를 넘어, 인간 수준의 복합적 사고 영역에 접근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AI는 진정 인간처럼 ‘이해’할 수 있을까?
페도렌코 교수팀은 향후 연구 방향으로 다음 두 가지 핵심 질문을 제시했다.
1. AI는 인간 두뇌와 유사한 정보 표현 방식을 사용하는가?
2. AI는 학습 데이터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 지식’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이는 단순히 계산 능력을 넘어, AI가 실제로 ‘세상을 이해하는 존재’로 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분기점이다.
이 연구는 인공지능이 단순한 언어 예측 도구를 넘어, ‘사고의 과정’을 스스로 전개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과 유사한 ‘생각의 비용’을 가진다는 사실은 AI가 향후 고차원적 의사결정, 과학적 탐구, 창의적 문제 해결 등
보다 인간 중심의 인지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인간 사고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재현하는 인공지능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추론형 언어모델은 더 이상 단순한 텍스트 생성기가 아니다.
그들은 인간처럼 사고하고, 고민하고, 때로는 시행착오를 거쳐 답에 도달한다.
AI가 인간과 같은 ‘생각의 비용’을 지불한다는 사실은 기계가 인간의 지적 과정을 점차 닮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증거다.
언젠가 AI가 인간의 창의적 사고에 근접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 길을 인간이 어떻게 함께 설계할 것인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