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12월 6일과 7일 이틀 동안, 중동의 카타르에서 열리는 제23차 도하 포럼이 열린다. 전 세계가 전쟁과 위기로 흔들리는 가운데, 이번 포럼은 “정의의 확립”이라는 주제 아래 160개국 이상에서 5,0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모일 예정이다. 이번 포럼에서 시리아의 새 대통령 아흐메드 샤라가 처음으로 참석하며,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등 미국 주요 인물들도 주목받고 있다. 최근 공격을 받은 카타르는 포럼의 안전을 위해 광범위한 보안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광야에서 외치는 정의의 소리: 제23차 도하 포럼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사막의 밤은 차갑고, 별들은 무심하게 빛난다. 그러나, 2025년 12월, 카타르 도하의 밤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위태롭다. 우크라이나의 평원이 불타고, ‘가자’의 비명이 멈추지 않으며, 시리아와 수단의 눈물이 마르지 않는 이 '상실의 시대'에, 전 세계 160개국에서 날아온 5,000여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다. 그들의 손에는 각국의 이익이 적힌 계산서가 들려 있지만, 그들의 입술은 하나같이 '정의(Justice)'를 말하고 있다. 과연 이 화려한 포럼장 안에서 외쳐지는 정의는, 포탄이 쏟아지는 거리의 아이들에게 닿을 수 있는 실체 있는 희망인가, 아니면, 그저 허공에 흩어지는 공허한 메아리인가.
무너진 약속의 무덤 위에서 다시 쓰는 희망
우리가 발 딛고 선 2025년의 국제 사회는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와 같다. 힘의 논리가 법의 권위를 짓밟고, '약속'이라는 단어는 휴지 조각처럼 가벼워졌다. 이러한 절망의 끝자락에서 도하 포럼이 내건 슬로건, "정의의 구축: 약속에서 현실로(Adaletin Tesisi: Vaatlerden Somut Gerçekliğe)"는 차라리 비명에 가깝다. 이는 단순한 회의 주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맺어온 수많은 평화 조약이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인정하는 통렬한 '고해성사'다. 카타르 자체가 최근 4개월간 이란과 이스라엘의 포화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았다는 사실은, 이곳이 안전한 회담장이 아니라 전장의 한복판임을 증명한다.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줄타기 하는 중재자: 튀르키예의 고독한 외침
이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튀르키예의 행보는 마치 외줄을 타는 광대처럼 위태로워 보이지만, 그 눈빛만은 매섭도록 진지하다. 하칸 피단 외무장관은 단순한 외교관이 아니다. 그는 갈기갈기 찢긴 세계의 틈새를 기어 내려가, 서로 총부리를 겨눈 적들을 한 테이블에 앉히려는 '수선공'의 심정으로 도하에 섰다. 그가 참여하는 '분열의 시대에 중재'라는 세션은 탁상공론이 아니다. 흑해의 거친 파도 위에서 곡물 협정을 끌어냈던 그 투박한 손으로, 그는 이제 중동이라는 화약고의 뇌관을 제거하려 한다. 이는 나토(NATO)라는 서방의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동방의 정서를 이해하는 튀르키예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다. 피단 장관은 아사드 이후의 중동 질서를 설계하며, 튀르키예가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라, 평화의 설계자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고 있다.
단절된 혈관을 잇는 경제의 심폐소생술
전쟁이 인간의 영혼을 파괴한다면, 무역의 단절은 인간의 삶을 질식시킨다. 메흐메트 심셰크 재무장관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단절의 시대에 무역 재고'라는 주제는, 끊어진 공급망을 다시 잇고, 꽉 막힌 경제의 혈관을 뚫어야 한다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다. 그는 이 포럼을 통해 튀르키예가 동양과 서양을 잇는 가장 안전하고 튼튼한 다리임을 증명해야 한다. 정치적 신념은 달라도 빵은 나눠 먹어야 한다는 밥상의 철학처럼, 그는 이념을 넘어선 경제적 공생을 이야기한다. 카타르의 자본과 튀르키예의 생산력이 만나는 지점,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전쟁의 폐허 위에 다시 시장이 서고, 아이들이 배를 곯지 않는 미래를 꿈꾼다. 이것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낯선 손님과 그림자 실세들: 무대 뒤의 진실
이번 포럼의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은 단연 시리아의 새 대통령, 아흐메드 샤라의 등장이다. 아사드 정권의 붕괴라는 거대한 먼지구름을 뚫고 나온 그는, 피 묻은 시리아의 역사를 씻어내고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이 무대에 섰다. 그의 떨리는 손을 잡아줄 이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무대 뒤편,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미국의 그림자들을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의중을 품은 톰 배럭과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존재는, 공식적인 외교 라인보다 더 뜨거운 '막후 거래'가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겉으로는 우아한 백조처럼 보이지만, 수면 아래서는 치열하게 발버둥 치는 이중적인 외교의 민낯. 우리는 샤라 대통령의 눈빛과 트럼프 측근들의 속삭임 사이에서, 다가올 중동의 운명을 예감한다.
정의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도하의 화려한 조명이 꺼지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5,000명의 참석자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 뒤, 우크라이나의 참호와 가자의 무너진 건물 틈에도 과연 '정의'의 빛이 스며들 수 있을까. 이번 제23차 도하 포럼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정의는 화려한 연설문 속에 있지 않다. 정의는 약속이 아니라 '행동'이며, 명사가 아니라 움직이는 '동사'여야 한다. 시리아의 난민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공포에 떨던 아이가 편안히 잠드는 그 구체적인 현실이 없다면, 우리의 모든 논의는 위선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는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다. 누군가는 칼을 들지만, 누군가는 그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들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