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통지유예 위법, 변호사로서의 신뢰 훼손 인정"... 위자료 100만 원→500만 원 상향
검찰 수사 과정에서 내려진 출국금지 조치를 당사자에게 제때 알리지 않은 수사기관의 ‘통지유예’ 관행에 제동을 거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이로 인해 변호사인 당사자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폭넓게 인정하며 1심보다 3배 이상 늘어난 배상금을 국가가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항소부(재판장 한숙희 판사)는 지난 3일, 백주선 변호사가 대한민국(법무부)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585만 5,000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는 1심 인정액인 185만 5,000원에서 대폭 상향된 금액이다.
◇ "공항 가서야 알았다"... 출국 막힌 변호사
사건은 지난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과 관련된 '성남FC 후원금 의혹'을 수사하며 그해 9월 26일부터 12월 24일까지 약 3개월간 백 변호사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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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법무부가 이를 백 변호사에게 통지하지 않기로 하는 '출국금지 통지유예'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던 백 변호사는 2022년 12월 8일, 경기북부지방변호사회와 일본 삿포로변호사회의 국제 학술교류회 참석차 인천국제공항을 찾았다가 출국 심사대에서 제지당했다. 그는 즉시 검찰에 해제를 요청해 당일 오후 3시경 금지가 풀렸으나, 이미 예약된 항공기는 떠난 뒤였다.
◇ 2심 재판부 "통지가 원칙, 유예 요건 엄격히 해석해야"
이번 재판의 쟁점은 출국금지 결정 자체의 적법성이 아닌, 당사자에게 이를 알리지 않은 '통지유예'의 위법성 여부였다.
재판부는 출입국관리법상 출국금지 결정 시 서면 통지가 원칙임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통지유예는 범죄 수사에 중대하고 명백한 장애가 우려될 때만 인정되는 예외적인 조치"라며 "원고의 경우 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법이 정한 '총 출국금지 기간이 3개월을 넘을 경우 당사자에게 통지해야 한다'는 규정을 들어, 당시 3개월에 육박하는 기간 동안 금지 조치를 하면서도 알리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 "법률가에게 신뢰는 생명"... 위자료 5배 인상
항소심 재판부가 1심보다 배상액을 크게 높인 배경에는 '변호사'라는 직업적 특수성이 고려됐다.
재판부는 항공권 취소 수수료 등 재산상 손해(85만 5,000원) 외에, 위자료를 1심의 1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5배 상향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는 변호사로서 출국금지 사실이 알려질 경우 직업적 신뢰도와 사회적 평판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수사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잠재적 범죄자로 오인받을 수 있는 불안정한 지위에 놓였던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백주선 변호사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로 입건되거나 참고인 조사를 받은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 법조계 "행정편의주의에 경종"
이번 판결은 수사 편의를 위해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출국금지 통지유예에 대해 법원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법무법인 호평의 백명재 대표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국민의 알 권리와 이동의 자유를 행정 편의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판결"이라며 "특히 뚜렷한 혐의가 없는 대상자에 대한 '깜깜이 출국금지' 관행이 개선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법무부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며 통지유예가 적법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