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나돌루 통신(Anadolu Agency)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열린 '하누카(유대인들의 명절)' 리셉션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동안 골란 고원 인정 및 예루살렘 수도 선언 등 이스라엘을 위해 취했던 강력한 조치들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해 재정적 지원을 지속하고 있으며, 중동 평화 정착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며 이란의 핵 능력을 무력화시킨 점을 언급했다.
촛불 켜진 백악관, 그리고 그가 던진 '평화'라는 이름의 검(劍)
겨울밤의 워싱턴, 백악관 창가에 하누카의 촛불이 일렁인다. 유대인들에게 이 빛은 수천 년 전, 성전을 탈환하고 어둠을 몰아낸 기적의 상징이다. 하지만 2025년 12월 17일, 그 불빛 아래 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그림자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거대함을 품고 있었다. 그는 단순히 축하를 위해 그 자리에 선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마치 성전의 재건자처럼, 혹은 혼돈을 잠재운 정복자처럼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은 외교적 수사라기보다는, 차라리 승전보에 가까웠다. "나 이전엔 아무도 해내지 못했다." 이 짧은 문장 속에 담긴 그의 자의식은 거대하다 못해 압도적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인간이 자신의 정치적 행위를 역사적 필연으로 포장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금기를 깨뜨린 파괴자이자 건축가
가만히 지난 시간을 되돌려본다.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의 땅이라 선언하고, 수많은 분쟁의 뇌관인 예루살렘을 수도로 공인하며, 기어이 미 대사관을 그곳으로 옮겼던 그였다. 당시 세계는 경악했고, 외교가는 우려를 쏟아냈다. 그것은 수십 년간 묵시적으로 합의된 '넘지 말아야 할 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 선을 지우개로 지우듯 없애버렸다. 그리고 오늘, 촛불 앞에서 그는 말한다. "아무도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다." 그의 말마따나, 그는 기존의 질서를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질서를 건축했다. 이것이 과연 용기인가, 아니면 무모함인가? 분명한 것은, 그가 만들어낸 이 '파격'들이 이제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지탱하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주춧돌을 중동의 한복판에 깊이 박아 넣은 것이다.
'진정한 평화'라는 선언의 무게와 아이러니
연설의 절정에서 그는 "중동에 진정한 평화가 왔다"라고 선포했다. 가자 지구의 포성은 여전한데, 그는 59개국의 지지를 끌어내, 휴전을 성사시켰다고 자부했다. 더 나아가 이란의 핵 능력을 "완전히 파괴했다"라고 단언했다. 이 말은 실로 무시무시한 힘을 내포한다. 이란의 핵 위협을 제거했다는 것은 단순히 무기를 없앴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중동의 힘의 균형추를 완벽하게 이스라엘 쪽으로 기울여 놓았다는 뜻이다. 그가 말하는 '평화'는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며 만들어 가는 따스한 봄날의 평화가 아니다. 그것은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켜 얻어낸, '강요된 침묵'으로서의 평화에 가깝다. 트럼프는 마치 자신이 쓴 시나리오대로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는 듯, 가자 지구의 휴전과 이란의 무력화를 자신의 트로피처럼 들어 올렸다. 현실의 흙먼지와 피 냄새는 그의 선언 속에서 정제되어, 깔끔한 외교적 성과로 둔갑한다. 선언이 곧 현실이 되는 그의 화법은 여전히 유효하며, 지지자들에게는 일종의 복음처럼 들린다. 이것은 정치라기보다 차라리 일종의 주술에 가깝다.
달콤한 칭찬 속에 숨겨진 서늘한 경고
하지만 이날 밤 가장 내 귀를 잡아끈 것은 그의 자화자찬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가장 강력한 우군인 유대인 로비 단체를 향해 던진 묘한 뉘앙스의 발언이었다. "미국 내 이스라엘 로비가 과거보다 약해졌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겉으로는 "그러니 더 분발하라"는 조언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소름 돋는 계산이 깔려 있다. "너희의 힘이 약해졌으니, 너희를 지켜줄 사람은 오직 나, 트럼프뿐이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다. 그는 지지자들을 결속시키는 동시에, 그들이 자신에게 더욱 의존하게 만든다. 과거의 강력했던 로비력을 상기시키는 것은 일종의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현재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그는 동맹에조차 끊임없이 긴장을 불어넣는다. "나를 믿으라, 그러나 나 없이는 너희도 위험하다." 이것이 트럼프식 동맹관의 본질이다. 그는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손에 쥔 족쇄를 놓지 않는다.
촛불이 꺼진 뒤, 우리에게 남은 질문들
연설은 끝났고, 박수 소리는 잦아들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여운은 길고도 묵직하다. 트럼프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유일무이한 수호자로, 중동 평화의 설계자로 규정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금 중동은 역사상 가장 안전한 시기를 맞이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의 강력한 힘과 결단에 의존하는 평화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그가 쌓아 올린 이 거대한 탑은 견고한 반석 위에 있는가, 아니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 위에 있는가? 그는 분명히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이란을 억제하고, 가자의 포성을 멈추게 했으며, 이스라엘의 위상을 전례 없이 높여놓았다. 그러나 그 대가로 요구되는 것은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이다. 그의 예측 불가능한 애정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그의 거래적 세계관 속에서 영원한 것은 오직 '이익'뿐이기 때문이다. 하누카의 촛불은 어둠을 밝히는 희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그 희망의 불꽃을 지키는 파수꾼임을 자처했다. 그러나 그 불꽃이 타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기름이 필요했는지, 그리고 그 불빛 그림자 뒤에 가려진 누군가의 눈물은 없는지, 우리는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권력자의 언어는 화려하다. 그러나 역사는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진실을 기억한다. 트럼프의 이번 연설은 2025년 말, 중동 정세의 정점을 찍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진정한 평화'라는 그의 선언이 훗날 역사의 법정에서 어떤 판결을 받을지, 우리는 두려움과 기대를 안고 지켜볼 뿐이다. 밤은 깊어지고, 촛불은 여전히 흔들리며 타오르고 있다. 마치 위태롭지만, 끈질긴 중동의 운명처럼 말이다.

트럼프의 속내와 그 발언에 담긴 이중적 메시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자신을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동맹으로 자처해 왔고, 그의 강력한 친이스라엘 성향은 외교 정책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러나 최근 백악관 하누카 리셉션에서 나온 그의 발언들은 단순한 지지 표명을 넘어섰다. 트럼프는 이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 지지자들을 결속시키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향해 경고의 칼날을 세웠다. 그의 발언에 담긴 이중적 메시지는 무엇을 노린 것일까?
첫째, "나 이전엔 아무도 해내지 못했다": 전례 없는 조치를 과시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첫 임기 동안 이스라엘을 위해 단행한 세 가지 주요 조치를 거론하며 자신의 업적을 부각했다. 골란고원의 이스라엘 영토 인정, 예루살렘의 수도 인정, 그리고 미국 대사관 이전 결정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미국의 외교적 관례를 깨뜨리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이전 대통령들이 감히 넘지 못했던 선을 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는 자신의 결단력을 과시했다. "이런 일들이 가능하다고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나 이전에 어떤 대통령도 이것들을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둘째, 중동에 진정한 평화가 왔다: 대담한 외교적 성공 선언
트럼프가 가자 지구의 휴전을 성공시키고 59개국의 지지를 얻었다고 주장한 대목은 그의 전형적인 '선언적 외교' 스타일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그는 이란의 핵 능력을 "완전히 파괴했다"라고 주장하며 이를 이스라엘 안보와 직결시켰다. 주목할 점은 "중동에 진정한 평화가 있다"는 그의 선언이다. 이는 현재진행형인 역내 분쟁의 냉엄한 현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현실보다는 선언을 통해 승리를 굳히려는 그의 대담한 정치 스타일을 여실히 드러낸다.
셋째, 과거보다 약해졌다: 강력한 동맹을 향한 의외의 경고
연설에서 가장 놀라운 지점은 미국 내 이스라엘 로비를 향한 그의 날카로운 경고였다. 트럼프는 이 로비가 과거만큼 강력하지 않다고 평가하며 이례적인 쓴소리를 던졌다. 전략적으로 볼 때, 이 발언은 단순한 실망의 표현을 넘어선다. 이는 지지 세력의 재결집을 촉구하는 동시에, 향후 관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다층적인 포석으로 읽힐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