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특집-1] 기독교 구원관의 독창성: 타 종교와의 비교

-신이 내려와 인간 대신 죽은 유일한 종교.

-구원의 보편적 갈망과 기독교의 독특한 해답.

-기독교의 패러다임 전환: '은혜와 믿음'을 통한 구원.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기독교의 구원관은 인류 보편적인 행위 중심의 비기독교와 차별화되는 기독교만의 독창적인 은혜를 기반으로 한다. 대다수 종교가 인간의 노력과 선행을 통해 구원을 성취하려 노력하지만, 기독교만 유일하게 인간의 근본적 무능력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물을 강조한다. 

 

특히,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인간의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으며, 인간은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독교의 구원은 인간의 공로를 배제하고, 오직 신의 주권적인 은혜에 근거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신자는 구원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 감사와 확신이 있는 삶으로 나아가게 된다.

 

끝나지 않는 등반과 멈춰 선 십자가: 종교의 숲에서 길을 묻다

 

우리 인간은 왜 그토록 구원을 갈망하는가. 겉으로 보기에 인류는 더 나은 건강, 더 많은 부(富), 더 안락한 삶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매몰되어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화려하거나 혹은, 비루한 일상의 껍질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인간은 누구나 유한한 삶의 끝자락 너머에 있는 영원한 삶을 본능적으로 갈구하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배고픔이나 목마름처럼, 영혼 깊은 곳에 각인된, 지울 수 없는 본능적인 외침이다.

 

비기독교인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결국 깨달은 사실 하나는 세상의 수많은 종교와 사상 체계는 바로 이 인간의 보편적 갈망에 응답하기 위해 저마다의 해법을 제시해 왔다는 것이다. 유대교의 엄격한 율법, 이슬람의 철저한 규율, 불교의 수행과 해탈, 힌두교의 고행, 그리고 심지어, 종교개혁 이전의 가톨릭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제시하는 길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그것은 바로 ‘행위(Works)’라는 이름의 사다리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는다"라는 인과율의 법칙에 익숙하다. 땀 흘려 일해야 밥을 먹고, 공부해야 성적을 얻는 세상의 이치가 종교의 영역에도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는 가르친다. 선한 일을 많이 하라, 기도를 열심히 하라, 정해진 금식을 지키라, 율법의 조항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행하라. 그러면 그 노력의 끝에 구원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사람들에게 도덕적이고 경건한 삶을 살게 하는 긍정적인 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문화권에서 만난 수많은 구도자의 얼굴에서, 그리고, 율법적인 신앙생활에 지친 성도들의 얼굴에서 내가 읽은 것은 절대 신이 주신 평안이 아니었다. 그건 깊은 그늘, 바로 ‘불안’이었다. 행위에 기반을 둔 구원관은 필연적으로 질문 하나를 던진다. "과연 얼마나 해야 충분한가?". 구원의 기준이 나의 노력에 달려 있기에, 그 기준선은 안개 속에 가려진 산봉우리처럼 모호하다. 인간의 노력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우리는 수시로 넘어지는 존재다. 불완전한 노력에 영원한 운명을 걸어야 하는 이 딜레마 속에서, 그 누구도 완전한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독교는 인류 종교사에 전무후무한 파격, 아니 하나의 거대한 ‘스캔들’을 일으킨다. 그것은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기독교는 단호하게 선언한다. 구원은 인간이 위로 올라가는 등반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래로 내려오신 사건이라고. 기독교 구원관의 핵심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Grace)’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믿음(Faith)’에 있다. 이는 인간 중심의 사고를 신 중심의 계시로 완전히 뒤집는 혁명이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왜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인가? 기독교는 인간의 상태에 대해 가장 냉철하고도 절망적인 진단을 내린다. 예배 참석이나 금식, 자선과 같은 종교적 행위로는 절대 구원에 이를 수 없다. 16세기 개신교가 가톨릭으로부터 분리된 역사적 배경에는 바로, 율법과 행위가 구원을 가져다줄 수 없다는 처절한 깨달음이 있었다. 율법은 우리가 그것을 지켜서 구원받으라고 주신 사다리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철저한 죄인인지를 비춰주는 거울일 뿐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라. 그분은 죄의 기준을 외적인 행위에서 마음의 동기로, 겉모습에서 중심의 문제로 심화시키셨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이요, 음욕을 품는 것이 곧 간음이라 하셨다. 이 엄중한 기준 앞에 떳떳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내면의 생각조차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우리는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절망적인 죄인이다. 우리 스스로 힘으로는 의로워질 수도, 사망이라는 심판을 피할 수도 없는 무력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이 철저한 절망의 끝자락에서 기독교가 제시하는 유일한 해답, 그것이 바로 ‘은혜’다.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이 은혜의 본질은 4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그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Unmerited)으로 우리의 공로나 자격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둘째, 값없이 주어지는 것(Free)으로 대가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뇌물이지 선물이 아니다. 셋째, 일방적인 선물(Unilateral)로 우리가 요청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시작하셨다. 넷째, 받을 자격 없는 자(For the Unworthy)에게 주어진 것으로 의인이 아니라 죄인인 상태에서 받은 것이기에 은혜는 더욱더 충격적이다.

 

성경은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을 통해 이 사실을 쐐기 박듯 선언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이 구절을 묵상할 때마다 나는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우리의 땀과 눈물로 쌓아 올린 공든 탑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저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 앞에 우리는 그저 겸손해질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내미신 그 선물을 어떻게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는가. 기독교는 그 통로가 ‘믿음’이라고 말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믿음은 구원을 얻기 위해 내가 발휘해야 하는 또 다른 공로가 아니다. 믿음은 빈손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신뢰하는 통로일 뿐이다.

 

이 믿음은 복잡한 철학적 사변이 아니다. 그것은 정직한 인정(認定)의 과정이다. 내가 내 힘으로는 하나님께 갈 수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 죄의 결과로 죽을 수밖에 없음을 시인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대신해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하셨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으로 나의 죗값이 지불되었고, 더 이상 심판이 없음을 신뢰하는 것. 이것이 믿음의 전부다. 그리고 이 믿음을 가진 자의 삶에는 율법의 의무감이 주는 불안 대신, 선물을 받은 자가 누리는 ‘감사’가 채워진다.

 

이 모든 이야기는 공허한 이론이 아니다. 기독교의 구원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피 묻은 역사적 사건 위에 서 있다. 인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더 나은 지식을 줄 교육가나, 부를 가져다줄 경제학자가 아니었다. 모든 인간에게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죄의 용서와 구원'이었기에, 하나님은 인류에게 ‘구세주’를 보내셨다. 예수의 십자가는 인간의 실패나 하나님의 실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기 위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고 치밀한 계획이었다.

 

세상의 어떤 종교가 신이 인간을 위해 대신 죽었다고 말하는가. 이것은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파격이다.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인간의 죗값을 영원히 지불했다는 이 ‘대속’의 교리야말로 기독교의 가장 독창적인 핵심 주장이자 복음의 정수다. 

 

인간 중심의 종교 사상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선언 앞에서 우리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사흘 만의 부활은 그분이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음을 증명하는 하나님의 도장이었다. 십자가와 부활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으로 구원의 서사를 완성한다. 

 

결국 기독교와 타 종교의 차이는 명확하다

 

세상의 보편적 종교가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Do)?’를 물으며 끊임없이 과제를 던져줄 때,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셨는가(Done)?’를 선포하며 쉼을 준다. 타 종교가 구원을 인간의 능동적 노력으로 획득해야 할 성취물로 볼 때, 기독교는 구원을 믿음으로 수용해야 할 선물로 본다. 율법 준수 여부에 따라 불안해하는 의무감의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에 대한 감사와 확신으로 살아가는 신앙. 이것이 우리가 누리는 축복이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이토록 단순한 ‘믿음’의 길로 여신 이유는 명확하다. 구원의 문턱을 높여 소수만이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구원받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구원의 주도권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기에, 인간은 그 어떤 조건이나 자격 없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작품이다. 그러므로 우리 중 누구도 "내가 구원받을 만해서 받았다"라고, 나의 종교적 ‘열심’이나 도덕적 성취를 자랑할 수 없다. 성경은 이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라고 명확히 못 박는다.

 

자신의 노력으로 쌓은 바벨탑 위에서 불안에 떠는 영혼들이, 십자가라는 튼튼한 다리 위로 내려오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행위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의 온전한 ‘자유함’을 만끽하기를 바란다. 

 

구원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항복함으로 얻는 가장 고귀한 선물이다. 인간의 자랑을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하는 이 은혜의 선언이야말로, 복음의 본질이자, 기독교 구원관의 독창적인 아름다움이다.

 

작성 2025.12.20 03:06 수정 2025.12.2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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