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의 홍수 속에서 상실된 인간의 서사
기계가 밤새 일어난 일을 단 세 줄로 요약해 주는 시대. 우리는 1초 만에 정답을 얻는다. 반면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 이야기는 점차 잃어버리고 있다. 편리한 정보가 넘쳐날수록 독자들은 지독한 피로와 갈증을 느낀다.
기계가 뱉어낸 규격화된 결과물에는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람의 땀방울과 망설임이 철저히 소거되어 있다. 내 삶을 위로하고 영감을 주는 진짜 이야기가 희미해진 모순.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정보 생태계의 민낯이다.

로이터가 경고한 43% 폭락과 정보의 상품화
2026년 1월 발표된 영국 '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의 로이터 2026 전망은 이 서늘한 체감을 정확한 데이터로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3년 내 언론사 웹사이트로 향하는 검색 유입은 43퍼센트 폭락할 것으로 예측된다.
구글이나 챗지피티 같은 답변 엔진이 사용자의 질문에 직접 완성된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정보의 유통 구조가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단순한 사실 전달이나 요약 뉴스는 누구나 쉽게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값싼 공산품이 되어버렸다. 이른바 '범용 정보의 상품화' 현상이 뉴스의 전통적인 존재 가치를 근본부터 뒤흔들고 있다.
글로벌 언론의 생존 공식: 구별되는 콘텐츠와 인간 서사
이 거대한 파도 앞에서 전 세계 뉴스 리더들은 속도와 양을 포기했다. 대신 철저히 깊이를 택했다. 설문에 참여한 언론사 경영진들은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일반 뉴스 비중을 38퍼센트 줄인다. 오리지널 수사(91퍼센트), 맥락 분석(82퍼센트), 인간 서사(72퍼센트)에 투자를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속보는 인공지능에 맡긴다. 저널리즘은 의미와 해석, 판단을 가져가야 한다는 뼈아픈 자성이다. 기계가 결코 복제할 수 없는 짙은 인간의 서사와 구별되는 콘텐츠만이 범용 정보 시대의 유일한 생존 공식으로 떠올랐다.
기계는 과거를 조립하지만, 인간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상상한다
인공지능은 수만 개의 데이터를 학습해 단 몇초 만에 요약본을 찍어낸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세계관을 빚어내는 것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다. 본지가 19화에 걸쳐 끈질기게 연재 중인 아티스트 아카이브 시리즈는 이 명제를 증명하는 생생한 기록이다.
1화의 제이든 박 작가는 지난 5년간 1만 7천여 점의 그림을 쏟아냈다. 창작의 순수한 유희를 지켜내기 위해 그는 기꺼이 LA에서 사업을 이어가는 선택을 했다. 11화의 박성진 작가는 쉰 살의 나이에 굳어진 조직 생활을 뒤로했다. 인공지능으로 소설을 쓰는 실험을 거듭했다. 그 기술 위에 멀티버스를 살아가는 알고리즘이라는 확고한 자신만의 세계를 세웠다. 19화의 소소 작가 역시 종이 조각의 충돌 속에서 완전한 균형을 찾고자 수만 번의 가위질을 묵묵히 반복했다.
결과를 요약하는 기계, 맥락을 묻는 아날로그 취재
우리의 아카이브는 비단 좁은 의미의 예술가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굳이 예술의 길을 걷지 않더라도 좋다. 오랜 꿈을 품고 살다가 생의 결정적 순간에 마주해, 열정과 신념을 동력 삼아 스스로 현실을 개척하는 모든 이들의 고군분투를 쫓는다. 기계가 이들의 이력서나 작품을 순식간에 요약할 수는 있다. 그 이면의 맥락을 포착하는 과정은 철저히 아날로그적이다.
본지의 취재진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작가들을 직접 찾아가거나 긴 전화 통화로 그들의 생생한 숨소리까지 녹음한다. 작가 한 사람의 삶에 맞춘 심층 질문지를 설계하고 여러 차례의 대화를 통해 파편화된 답변을 하나의 온전한 이야기로 묶어낸다.
치열한 창작 이면에 숨겨진 고민과 방황의 순간들을 집요한 질문으로 끄집어내는 프레임 설계. 이는 결과만 요약하는 인공지능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다. 정답이 범람하는 시대에 인간의 서사가 단순한 정보로 휘발되지 않도록 꼭 필요한 기록으로 남기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 신문사가 중심에 둔 확고한 지향점이며 어떤 시대가 오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저널리즘의 본질이다.
데이터가 확인해 준 '인간 서사'의 가치
효율성 대신 사람의 체온과 시간을 기록한 실험. 이게 유의미한 트래픽으로 돌아왔다. 창간 직후인 2026년 1월 1만여 건 수준이던 월간 페이지뷰는 3월 현재 15만 7천여 건으로 가파르게 치솟았다. 같은 기간 방문자 수 역시 14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해 5만 4천여 명을 돌파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지표는 체류 시간이다. 유입량이 급증하는 구간에서도 독자들은 기사에 평균 127초를 머물렀고, 55퍼센트대의 안정적인 이탈률을 유지했다. 디지털 기사 소비 패턴을 고려할 때, 독자들이 긴 호흡의 아카이브 기사를 두세 편씩 연달아 읽어 내려가고 있다는 뜻이다.
공산품처럼 쏟아지는 범용 정보의 피로감 속에서 대중이 진정으로 목말라했던 대상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객관적인 지표다. 독자들은 기계의 요약본이 아닌, 사람이 직접 부딪히며 쌓아 올린 시간과 노동의 질감에 응답하고 있다.
우리의 중심축, 상상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밝힌다
거대한 기술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을 배척하지 않는다. 번거로운 자료 정리를 돕는 훌륭한 백엔드 도구로 적극 활용할 것이다. 질문을 설계하고 흩어진 시간에 시대의 맥락을 부여하는 것은 오롯이 인간 기자의 몫이다.
본지 더 이매지너리 포커스는 오랜 시간 자신만의 상상 세계를 가슴에 품고 이를 현실로 구현해 내는 모든 이를 진정한 아티스트로 정의한다. 이들의 시간 축을 묵묵히 기록하는 일. 우리는 이 원칙을 고수할 것이다. 나아가 아카이브의 대상은 한층 넓어진다. 예술가를 넘어 치열하게 삶을 개척하는 모든 상상가들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정답이 단순한 정보로 휘발되는 시대. 우리는 꼭 필요한 인간의 기록을 흔들림 없이 쌓아갈 것이다.
[전문 용어 사전]
▪️로이터 2026 전망: 옥스퍼드대학교 산하 연구소가 전 세계 언론계 리더들을 설문해 저널리즘과 기술 동향을 예측하고 검색 유입 감소 등의 위기 대응 전략을 분석한 핵심 보고서.
▪️답변 엔진: 사용자가 검색창에 질문을 입력하면 여러 웹사이트의 링크를 나열하는 대신 인공지능이 직접 완성된 형태의 답을 요약하고 정리해 보여주는 기술.
▪️범용 정보 상품화: 기술의 발달로 단순한 사실 전달이나 요약 뉴스가 누구나 쉽게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흔한 공산품처럼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
▪️아티스트 아카이브: 단발적인 인터뷰에 그치지 않고 창작자가 겪어온 과거의 실패부터 현재의 성취까지 그들의 생애와 작업 과정을 시간 축을 따라 촘촘히 보존하는 본지의 [창간특집기획연재] ‘oo을 사랑한 아티스트” 시리즈
▪️인간 중심 스토리텔링: 효율성이나 정보의 양에 기대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인물의 감정 고뇌 선택의 맥락 등 사람의 짙은 서사에 초점을 맞추어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서술 방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