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은 일 년 중 가장 짧은 낮과 가장 긴 밤이 존재하는 시기이다. 12월 22일 동지冬至를 맞이하고, 며칠 후인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한다. 이 두 절기가 시간적으로 이토록 근접해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 이상의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동지는 천문학적으로 태양이 가장 남쪽에 위치하여 낮의 길이가 극단적으로 짧아지는 날이며, 이 시점 이후부터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태양의 부활'을 알리는 날이었다.
인류 문명 초기부터 이 가장 어두운 시기는 공포와 기대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듯했지만, 동지를 기점으로 태양이 다시 힘을 얻어 봄을 약속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이 현상을 태양신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신화적 사건으로 해석했고,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축제를 통해 이를 기념했다. 이 '빛의 승리'를 기념하는 보편적인 문화적 배경이야말로 훗날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절기인 크리스마스가 이 시기에 자리 잡게 되는 근원적인 토대가 됐다. 즉, 크리스마스는 단순한 종교적 기념일을 넘어, 수천 년간 인류가 어둠 속에서 희망을 갈망했던 인문학적, 천문학적 역사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왕을 메시아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민족을 신 바빌로니아의 압제(BCE586~BCE539)에서 해방시켜 주었고, 바빌로니아제국에 의해 파괴된 예루살렘 신전까지 재건축하도록 재정지원을 해주었으며, 종교적 자유인으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대인의 메시아로 인식됐던 페르시아왕이 신봉하던 종교가 바로 '조로아스터교'였고, 따라서 유대인들은 자연히 조로아스터교의 메시아 사상을 유대교 교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로마에서 3~4세기에 국교가 된 크리스트교(서방 카톨릭교회)에 아직도 미트라교 풍습이 남아 있는데, 로마 교황이 대관식 때 쓰는 관을 '미트라'라고 한다. 초기 크리스트교는 로마 전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예수를 태양신의 상징으로 신격화하여, 이 과정에서 태양신인 미트라신의 생일 12월 25일을 예수의 생일(크리스마스)로 정하여 기념하게 되었다(서방 카톨릭은 354년, 동방졍교는 379년부터).
미트라신을 군인의 신, 태양신, 계약의 신이라고 한 것은 조로아스터교와 로마문화, 유대문화의 특색이 골고루 나타난 때문이다. 로마는 군인의 통치 제국이고, 미트라교의 뿌리인 조로아스터교는 빛의 신(빛은 태양을 상징)이며 유일신인 '아후라 마즈다'를 숭배하며, 유대종교의 계약 사상이 크리스트교를 통해 로마문화에 영양을 주었다. 또한 로마제국에서 국가적 축제로 행했던 농신제農神祭(농경신앙의 제의) 중에 미트라신을 섬기는 절기로 12월 25일을 정하고 있었다. 이 12월 25일이 로마달력으로는 서양의 동지절에 해당한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 내에서 성장하던 시기, 이교도들이 이미 '태양의 부활'을 축하하고 있던 이 강력한 전통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당시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교도 문화를 완전히 배척하기보다는, 그 시기를 활용하여 기독교의 메시지를 포장하는 전략을 택하게 된다. 태양신이 아닌,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12월 25일을 지정함으로써, 기존 문화의 관습을 흡수하고 변용하는 놀라운 문화적 융합을 이루어냈다.
성경 그 어디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날짜가 12월 25일이라고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는 기록은 추운 12월보다는 봄철에 가까운 시기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왜 기독교는 굳이 이교도의 강력한 태양신 축제일과 겹치는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삼았을까? 이 결정은 순수한 종교적 동기보다는, 기독교 확산을 위한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선택이었다.
서기 3세기 무렵, 기독교는 급성장했으나 로마 제국의 뿌리 깊은 이교도 전통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에도 로마 시민들의 오랜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불가능했다. 당시 교부들은 기존 이교도들이 태양신을 숭배하며 태양이 다시 길어지기를 축하했던 그 날, 즉 12월 25일을 '참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날로 지정하여, 그 의미를 완전히 뒤집는 '기독교화'를 시도했다. 이것은 이교도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당시로서는 매우 영리하고 실용적인 문화 포섭 전략이었다. 12월 25일은 단순한 달력상의 날짜가 아니라, 기독교가 이교도를 넘어 문화적 주도권을 확보하려 했던 역사적 전환점의 상징이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크리스마스 문화의 핵심 요소들 속에서도 고대 동지 축제의 DNA는 생생하게 남아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크리스마스 트리이다.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상록수를 겨울에 실내로 들여오는 풍습은 고대 게르만족과 로마인들이 동지 축제 때 어둠과 추위에 맞서 생명의 지속성을 기원했던 전통에서 유래했다. 이 상록수는 태양의 재탄생을 기다리며 희망을 상징하는 강력한 주술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수천 년에 걸쳐 인류가 암흑을 이겨내고 빛의 귀환을 염원했던 동지 문화의 모든 요소를 흡수하여 완성된 기념일이라고 할 수 있다. 동지와 크리스마스는 서로 다른 종교적, 천문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관통한다. 그것은 바로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가장 강력한 빛과 희망을 기다린다'는 인류의 보편적인 염원이다. 고대인들은 자연의 순환 속에서 태양의 부활을 기원했고, 기독교인들은 어둠과 죄악 속에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했다.
절기의 경계를 넘어선 이 두 기념일은 현대인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연말연시의 혼란과 개인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가장 어두웠던 밤이 지나면 반드시 새로운 빛이 도래하리라는 믿음, 그리고 이 희망을 가족 및 이웃과 함께 나누는 화합과 연대의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크리스마스의 밝은 빛 아래 감춰진 동지의 깊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단순히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수천 년의 인류 역사가 응축된 '희망의 재탄생'이라는 인문학적 가치를 되새기는 일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