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이슬람권은 ‘정적’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자지구의 비명은 휴전이라는 짧은 안식 뒤에 더욱 날카롭게 터져 나왔고, 이란과 이스라엘은 수십 년간 이어온 그림자 전쟁의 규칙을 깨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거대한 꿈이었던 네옴시티는 현실이라는 벽 앞에 멈춰 섰으며,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침묵의 감옥’에 갇혔다.
1. 이스라엘-이란 '12일 전쟁'과 ‘일어서는 사자 작전’: 6월,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직접 타격하자 이란이 수백 발의 미사일로 보복하며 전면전에 돌입했다. 이란의 핵 개발 임계치 도달에 대한 이스라엘의 생존적 위기감과 모사드의 정밀 타격이 결합하며 중동 전체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었다.
2. 가자지구 '제노사이드' 판결과 깨어진 평화: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이스라엘의 행위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하는 충격적인 판결을 내렸으나 무력 충돌은 계속되었다. 인질 석방과 생존권을 둘러싼 네타냐후 정부와 하마스의 극단적 대립이 인도적 재앙을 가속화했다.
3. 사우디 '더 라인(The Line)'의 굴욕적 축소: 빈 살만 왕세자의 야심작인 네옴시티 핵심 프로젝트가 재정난과 기술적 한계로 98% 축소되었다. 저유가 기조와 막대한 건설 비용에 대한 현실적 자각이 '비전 2030'의 대대적인 수정을 불러왔다.
4. 수단의 '침묵하는 대기근'과 잊힌 전쟁: 정부군과 신속지원군(RSF)의 내전으로 인구의 절반인 2,500만 명이 아사 직전의 위기에 처했다. 국제 사회의 관심이 가자와 우크라이나에 쏠린 사이, 수단의 민초들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기아 속에 홀로 남겨졌다.
5. 아프가니스탄 '도덕법' 시행, 여성을 지우는 탈레반: 탈레반이 여성의 공공장소 목소리 노출과 외출을 엄격히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인권의 종말을 선포했다.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의 고착화가 여성들을 사회적 사형 선고 상태로 몰아넣었다.
6. 시리아의 변신, 아흐마드 알샤라의 국제 무대 복귀: UN이 시리아 실권자 알샤라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며 시리아의 정상화가 시작되었다. 무장 조직 HTS가 테러주의를 벗어나 국가 통치 기구로서의 국제적 기준을 준수하려는 파격적인 변신을 꾀했다.
7. 튀르키예 경제 위기와 이스탄불 이맘올루 시장의 탄압: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속에 유력 대권 주자인 이스탄불 시장이 체포되며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 에르도안 정권의 장기 집권을 위한 야권 탄압이라는 의혹 속에 민생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다.
8. 홍해 봉쇄와 후티 반군의 '글로벌 물류 인질': 후티 반군이 상선을 무차별 공격하며 홍해 항로가 마비, 세계 경제에 치명타를 입혔다. 이란-이스라엘 전쟁 발발에 따른 연대적 보복으로, 홍해는 다시 한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가 되었다.
9. 걸프 국가들의 '디지털 이슬람'과 문화적 변천: 사우디와 UAE가 AI와 메타버스를 이슬람 전통과 결합한 새로운 사회 모델을 대대적으로 도입했다.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한 체질 개선 노력이 교육과 문화 전반에 걸쳐 급진적인 개방화 물결을 일으켰다.
10. 이슬람권의 기후 역습,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의 소멸: 역대급 폭염과 가뭄으로 수자원이 고갈되면서 이라크와 이란 간의 물 전쟁이 현실화되었다. 기후 위기가 안보와 직결되면서 물은 이제 석유보다 귀한 갈등의 원천이 되었다.
낡은 성채가 무너진 자리 2025년 이슬람권은 수십 년간 지탱해 온 '현상 유지'의 규칙이 산산조각 난 해였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6월 13일부터 24일까지 벌인 '12일 전쟁'은 그 상징이다. 과거 대리전을 통해 서로를 견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직접 상대의 심장부를 겨냥하는 노골적인 적대 행위로 돌아섰다. 이는 미국의 영향력 약화와 이란의 핵 기술 진전, 그리고 이스라엘 내부의 강경한 생존 전략이 맞물린 결과다. 이 과정에서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는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으며, 세계는 무력하게 그 비극을 생중계로 지켜봐야만 했다.
숫자가 지워버린 인간의 얼굴 뉴스 속의 숫자는 잔인하다. 가자지구 사망자 7만 명, 수단 실향민 1,000만 명, 튀르키예 금리 50%. 이 숫자 뒤에는 저녁마다 아이의 배고픔을 달래려 빈 그릇을 긁는 ‘가자’의 어머니가 있고, 감옥에 갇힌 시장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이스탄불의 청년이 있다. 사우디의 네옴시티가 170km의 꿈을 접고 2.4km의 현실로 내려온 것은 단순한 건설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 했던 바벨탑의 좌절이자, 사막의 신기루보다 뜨거운 현실의 고통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무너진 폐허에서 들려오는 진실 지난 8월, 카불의 한 지하 서재에서 기자가 만난 한 여대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목소리가 죄가 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은 우리의 침묵 속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을 듣고 계실 것입니다." 2025년 이슬람권의 시간은 첨단 AI와 7세기 원리주의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괴물 같은 모습이었다. 중동의 뜨거운 사막에서 만났던 난민 아이의 눈빛과 테헤란의 광장에서 마주친 지친 청년의 어깨는 본질적으로 닮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내일은 오늘보다 낫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다시 사람이 길이다 2025년 이슬람권의 뉴스는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이 땅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큰 소망'이 필요한 곳이다. 화려한 네옴시티의 불빛이 꺼진 자리에, 그리고 이란과 이스라엘의 미사일이 지나간 궤적 아래에 우리는 다시 '인간'을 세워야 한다. 정치가 실패하고 경제가 무너진 곳에서 남은 것은 결국 서로를 향한 긍휼과 연대다. 이슬람의 붉은 광야는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저들의 비명을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할 것인가, 아니면 한 영혼의 아픔으로 함께 껴안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