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여전히 전쟁과 기근, 인공지능의 거센 파도 속에 침몰하는 듯 보였으나, 그 붕괴의 틈새마다 ‘영원한 나라’를 향한 갈망은 더욱 선명한 무지개를 띄웠다. 2025년 기독교 세계를 뒤흔든 열 가지 장면을 통해, 우리는 시스템이 아닌 ‘생명’의 본질로 돌아가라는 음성을 듣는다.
2025년 기독교 세계는 화려한 대형 교회의 외형이 아닌, 고난 받는 현장과 보이지 않는 골방에서 더 큰 울림을 냈다. 첫 미국인 교황의 선출은 가톨릭을 넘어 전 기독교계에 기술 문명에 대한 영적 응답을 요구했고, 중동과 아프리카의 핍박 속에서 피어난 개종의 역사는 ‘복음의 야성’이 무엇인지 증명했다. 냉철한 분석가의 눈으로 보면 종교의 세속화와 위기라 하겠지만, 이는 껍데기를 태우고 알곡을 남기시는 성령의 연단이었다. 2025년, 기독교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한 결정적 순간들을 기록한다.
1. 교황 레오 14세 선출과 ‘디지털 금식’ 선언: 역사상 첫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가 선출되었으며, 취임 일성으로 AI 시대의 영적 중독을 경고하는 ‘디지털 금식’을 선포했다.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시대에 종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기계가 아닌 창조주와의 관계 회복을 촉구했다.
2. 아프리카 사헬 지대의 순교적 부흥: 나이지리아와 수단 등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핍박 속에서도 기독교 공동체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는 명제를 증명하듯, 고난 속에서 타협하지 않는 순수한 복음의 힘이 무슬림권 영혼들을 매료시켰다.
3. 가자지구 폐허 위에서 열린 ‘평화의 성찬식’: 이스라엘-이란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가자지구에서 유대인 신자와 아랍인 신자들이 연합하여 예배를 드렸다. 정치적 갈등과 종교적 적대감을 넘어선 그리스도의 사랑이 중동 평화의 유일한 대안임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4. AI 목사 논란과 ‘영혼의 비물질성’ 논쟁: 유럽과 미국의 일부 교회에서 AI가 작성하고 낭독하는 설교가 도입되자, 기독교계 내부에 거대한 신학적 논쟁이 벌어졌다. 기계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성령의 임재’에 대한 본질적 성찰로 이어졌다.
5. 유럽 제트(Z)세대의 ‘거실 교회’ 운동 확산: 세속화된 유럽의 대성당들이 문을 닫는 가운데,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가정 기반의 소그룹 신앙 공동체가 급증했다. 제도권 교회의 경직성에 실망한 청년들이 초기 기독교의 역동적인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자발적 움직임을 보였다.
6. 대한민국 ‘이주민 선교’의 패러다임 전환: 국내 이주민 사역 단체들이 이슬람권 회심자들을 훈련시켜 역 파송하는 전략이 결실을 보았다. 한국이 더 이상 ‘보내는 선교’를 넘어 ‘와 있는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음을 확인시켜 준 해였다.
7.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녹색 복음(Green Gospel)’: 전 지구적 가뭄과 폭염 속에 세계교회협의회(WCC) 등 주요 교단들이 창조 세계 보존을 기독교의 핵심 사명으로 결의했다. 환경 보호가 단순한 사회 운동을 넘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청지기적 신앙 고백임을 재확인했다.
8. 북한 지하 교회와 탈북민 인권 운동의 국제화: 중국 내 탈북민 강제 북송 반대 운동이 기독교 단체들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인권 캠페인으로 확산되었다. 가장 어두운 곳에 있는 형제들을 향한 기도가 구체적인 정치적·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지며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일깨웠다.
9. 성경 문해력 위기와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성경의 등장: 텍스트 중심의 성경 읽기가 한계에 부딪히자, VR과 인터랙티브 기술을 활용한 성경 공부 콘텐츠가 주류로 부상했다. 다음 세대의 언어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기술을 선교의 도구로 적극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10. 애즈버리 부흥을 잇는 캠퍼스 영적 각성 운동: 미국과 한국의 대학가에서 인위적인 프로그램 없는 자발적 찬양과 회개 운동이 며칠씩 이어지는 현상이 재현되었다. 공허한 물질주의 속에서 방황하던 청년들이 절대적인 진리와 초월적인 평안을 갈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스템의 붕괴와 갈망의 탄생 2025년 기독교 세계는 거대한 ‘탈피’를 경험했다. 수십 년간 교회를 지탱해 온 대형화, 세속화, 기술 만능주의라는 성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것은 인간의 이성이 쌓아 올린 유토피아가 전쟁과 기후 재앙, AI라는 괴물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지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제 화려한 조명과 세련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내 영혼의 깊은 갈증을 해소해 줄 ‘진짜 생수’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유럽의 거실 교회와 미국의 캠퍼스 부흥은 바로 그 결핍이 만들어낸 거룩한 폭발이었다.
고난의 현장에서 피어난 그리스도의 향기 숫자와 지표가 지워버린 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가자지구의 폐허에서 아랍인 형제의 발을 씻겨주던 유대인 신자의 손길, 탈레반의 감시를 피해 골방에서 성경을 필사하던 아프간 소녀의 눈물, 그리고 한국의 시장통에서 터키 출신 난민에게 따뜻한 국밥을 대접하며 복음을 전하던 교회 어느 집사의 미소. 2025년 기독교 뉴스의 주인공은 교단장이나 유명 목회자가 아니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았던 ‘성도’들이었다. 그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의 삶 자체가 곧 살아있는 복음서였다.
사막의 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노래 지난 10월, 나이지리아 북부의 불타버린 교회 터에서 만난 한 선교사는 이렇게 고백했다. "건물은 무너졌지만, 성도들의 가슴 속 성전은 더 단단해졌습니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예수님이 말씀하신 ‘좁은 길’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2025년 기독교 세계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 사도행전의 시대로 돌아간 듯했다. 기술은 가장 앞서갔으나 영혼은 가장 근원적인 곳을 향했다. 인간이 만든 바벨탑이 무너질 때, 비로소 하늘 문이 열린다는 역설적인 진리가 전 대륙의 성도들 가슴에 새겨진 한 해였다.
다시, 십자가의 야성으로 2025년 기독교 뉴스를 마무리하며 기자의 가슴에 남은 것은 ‘본질’이라는 단어다. 기독교는 시스템이 아니라 생명이며, 종교가 아니라 관계다. 교황의 디지털 금식 선언부터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피까지, 올 한 해의 모든 사건은 우리를 한곳으로 몰아넣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이다. 2026년은 더 캄캄한 어둠이 올 것이라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빛은 어둠 속에서 더 찬란하다. 우리는 이제 화려한 성전을 떠나, 세상의 가장 낮고 아픈 곳으로 흘러가야 한다. 그곳에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