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②
동이란 누구인가
― 이름은 어떻게 세계를 중심과 주변으로 나누는가 ―
들어가며
연재 1회에서 우리는 황해를 ‘경계의 바다’가 아니라 ‘내해’로 놓아 보자고 제안했다. 이 단순한 전환은, 동아시아 고대사를 지탱해 온 많은 전제를 다시 묻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다시 질문하게 되는 말이 있다. 바로 ‘동이(東夷)’라는 이름이다.
동이를 다시 묻는 일은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누가 중심에 서 있었는가, 그리고 그 중심이 세계를 어떤 언어로 정리해 왔는가를 살피는 과정이다.
1. ‘동이’는 집단명이 아니라, 관계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동이’는 흔히 고대 중국에서 동쪽에 살던 여러 부족을 가리키는 말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 설명은 이미 하나의 결론을 포함한다. 동쪽은 주변이라는 결론이다.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동이는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타자를 바라보는 위치에서 만들어진 호칭임이 분명해진다. 다시 말해, 동이는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관계 속에서 형성된 범주에 가깝다.
이 명명에는 언제나 전제가 하나 깔려 있다. 자신이 중심에 서 있다는 믿음이다. 중심에 서 있다고 믿는 집단은, 자신과 거리를 두게 된 이들을 방향으로 부른다. 동쪽에 있으면 동이, 서쪽에 있으면 서융이 된다. 이때 방향은 단순한 위치 정보가 아니라, 관계의 변화가 언어로 굳어진 결과다.
이러한 명명은 어느 한쪽만을 불편하게 만든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름이었다. 이 이름이 붙는 순간, 같은 생활권을 공유하던 이들은 설명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언제나 서술의 대상이 된다. 동이는 말해지는 존재였지, 말하는 주체가 되지 못했다.
이 과정에는 인간 사회에서 반복되어 온 심리가 작동한다. 자신이 속하던 공동체에서 밀려났거나, 혹은 스스로 중심 질서에서 멀어지게 된 집단을 바라볼 때, 남아 있는 쪽은 그 거리를 합리화하려 한다. 더 이상 함께 설명하기 어려워진 타자를, 이름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이’라는 호칭은 타자의 본질을 규정했다기보다, 관계가 달라졌음을 정당화하는 언어, 일종의 ‘신 포도’와 같은 명명일 가능성이 크다.
2. 황해를 내해로 놓으면, ‘동쪽’은 주변이 될 수 없다
황해를 오늘날의 국경선 위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중국과 한반도를 가르는 바다처럼 보인다. 그러나 해수면이 현재보다 100미터보다도 더 낮아 뭍으로 남아있던 ‘빙기’와 간빙기를 거쳐 온 장기적 시야에서 보면, 황해는 평균 수심 40미터에 불과한 매우 얕은 대륙붕의 바다다. 강이 흘러들고, 연안이 이어지며, 사람과 물산이 쉽게 오갈 수 있는 비교적 잔잔한 내해였다.
이렇게 놓고 보면, 요하·산동·한반도 서해안은 결코 ‘동쪽 끝’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연안 생활권이며, 교류와 이동이 반복된 공간이다. 그럼에도 이 공간을 통칭해 ‘동이’라 부르는 순간, 연속된 생활 세계는 인위적으로 잘려 나가고, 중심과 주변이라는 위계가 덧씌워진다.
즉, 동이라는 방향은 지리적 사실이 아니라 중심이 설정될 때 함께 만들어지는 관계적 표지다.

[참고] 분홍색으로 둘러친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惟東夷从大. 大人也. 夷俗仁. 仁者壽. 有君子不死之國. 按天大. 地大. 人亦大. 大象人形. 而夷篆从大. 則與夏不殊. 夏者中國之人也.
동이는 오직 ‘대(大)’를 따르니, 이는 곧 ‘대인(大人)’이다. 동이의 풍속은 어질며, 어진 자는 오래 산다. 군자가 사는 나라, 곧 ‘불사의 나라’가 있다고 하였다. ‘대(大)’는 사람의 형상을 본뜬 글자이다. ‘대(大)’는 사람의 형상을 본뜬 글자이다. 그런데 ‘이(夷)’의 전서가 ‘대(大)’를 따르니, 이는 ‘하(夏)’와 다르지 않다. 하란 곧 중국의 사람을 말한다.
설문해자 계열 문헌에 보이는 ‘夷’에 대한 또 하나의 시선
‘夷’의 훈을 언제부터 누가 ‘오랑캐’라고 붙였는지 굳이 밝히려 하지 않았다.
후대에 ‘夷’를 곧바로 야만으로 해석하는 통념과 달리, 설문해자 계열의 문자 풀이에는 전혀 다른 시선이 남아 있다. 이 풀이에 따르면, ‘夷’는 ‘대(大)’를 따르는 글자이며, 이는 곧 ‘대인(大人)’을 뜻한다. 동이의 풍속은 어질고, 어진 자는 오래 산다고 하였으며, 군자가 사는 ‘불사의 나라’가 존재한다고까지 설명한다. 더 나아가, ‘하늘이 크고, 땅이 크며, 사람 또한 크다’는 인식 아래, ‘夷’의 전서가 ‘대’를 따르므로 ‘夏’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명시한다. (갑골문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굳이 大를 따른다고 풀이했을 것이다.)
이 해석은 동이를 이상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적어도 고대 문자학 내부에는 동이를 곧바로 문명 바깥으로 밀어내지 않았던 인식이 공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문제는 ‘夷’라는 글자가 아니라, 그 글자에 어떤 의미를 덧씌워 왔는가에 있다.
3. ‘夷’는 언제부터 가치 판단의 언어가 되었는가
갑골문과 초기 금문에서의 ‘夷’는 특정 집단을 가리키는 표기였지, 처음부터 멸칭으로 고정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글자가 언제부터 정치적·문명사적 가치 판단을 포함한 범주로 작동하기 시작했는가이다.
왕조 서술이 정비되고, 세계를 중심과 사방으로 나누는 인식이 굳어질수록, ‘夷’는 점점 문명 바깥을 지시하는 언어로 기능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동이가 무엇이었느냐가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부를 수 있었던 권력과 시선이 어디에 있었는가이다.
4. 九夷의 ‘九’는 수량이 아니라 세계를 묶는 방식이다
문헌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구이(九夷)’는 흔히 “여러 동이 부족”이라는 뜻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숫자는 단순한 계수가 아니다.
특히 삼(三)과 그 확장인 구(九)는 세계를 구성하는 질서의 수로 작동해 왔다. 삼족오, 삼재 사상, 그리고 천부경의 81자 모두 이 연장선에 있다.
이 맥락에서 구이는 “많다”기보다는, 동방 세계 전체를 하나의 범주로 묶는 명명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동이가 화하에 흡수·동화되었다는 단선적 서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5. 이름은 권력의 안정기에 만들어지고, 관성으로 반복된다
이러한 명명 방식은 특정 왕조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 중국 대륙을 장기적으로 지배해 온 행정 엘리트 집단은, 왕조가 교체되더라도 놀라울 만큼 유사한 언어 구조와 세계 인식을 반복해 왔다.
관롱집단으로 상징되는 대륙 행정 지배층은, 자신을 중심에 놓고 주변을 분류하는 사고를 제도와 언어 속에 고정시켜 왔다.
이 명명 체계는 당대에는 질서를 설명하는 도구였을지 모르나,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현실과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 어긋남은 곧 다음 시대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후의 역사에서 다시 살펴볼 주제다.
맺으며 ― 다음 회차를 향하여
이번 회차에서 우리는 동이를 특정 집단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대신, 동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지는 구조와 그 언어가 작동한 방식을 살펴보았다.
다음 연재에서는 이 명명 체계가 진·한 이후의 왕조 서술 속에서 어떻게 반복·변주되었는지, 그리고 인류 이동과 북방 남하의 흐름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 가려졌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황해를 내해로 놓는 시선은, 이제 본격적으로 동아시아 역사 서술의 구조 자체를 건드리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