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혹시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1993)'의 주인공처럼,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 갇혀 있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아침마다 울리는 자비 없는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실으며, 모니터 앞에서의 사투 끝에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밤. 이 끝없는 순환 속에서 우리는 자주 묻는다. "내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현대인은 유례없는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어느 시대보다 깊은 허무와 권태에 시달린다. '지루함'은 현대인의 고질병이 되었고, 우리는 이를 달래기 위해 더 자극적인 소비와 일시적인 쾌락에 탐닉한다. 그러나 여기, 2천 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을 지켜온 신비로운 시간의 지도가 있다. 바로 '교회력'이다. 누군가에게는 매년 돌아오는 지루한 종교적 관습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의 망가진 일상을 구원하고 존재의 중심을 바로잡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더 깊은 생명으로 이끄는 거룩한 리듬이다.
교회력이 형성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시간'의 성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에서 시간은 자연의 순환이나 신성한 사건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시간은 철저히 '생산성'과 '효율성'의 척도가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에게 '직장인의 달력'을 강요한다. 분기별 실적, 연봉 협상, 휴가 시즌, 그리고 대규모 쇼핑 축제로 점철된 이 달력은 우리를 끊임없이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생산하는 존재'로 몰아넣는다. 이 선형적이고 무자비한 시간 속에서 인간은 부품으로 전락하기 쉽다. 반면, 교회력은 기독교 초기 공동체가 로마 제국의 이교적 시간 체계에 저항하며 만들어낸 '대안적 시간'이다. 그들은 태양신 축제나 황제의 생일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과 고난, 부활과 성령의 임재를 중심으로 일 년을 재구성했다. 이는 단순히 날짜를 바꾸는 행위를 넘어, 인생의 주인이 황제나 돈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선포하는 정치적이고 영적인 선언이었다.
오늘날 심리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인간의 정신 건강에 있어 '의례(Ritual)'와 '리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발견하고 있다. 현대인의 불안 중 상당수는 삶의 예측 불가능성과 의미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정기적인 리듬이 사라진 삶은 뿌리 뽑힌 나무와 같다. 이런 관점에서 교회력은 우리에게 '영적인 항상성'을 제공한다. 대림절의 기다림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사순절의 절제를 통해 중독된 욕망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과정은 심리적으로도 매우 탁월한 치유 효과를 발휘한다.
또한, 교육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단 한 번의 강렬한 체험보다 '의미 있는 반복'을 통해 변화한다. 일반적으로 명확한 절기와 전통을 지키는 공동체일수록 구성원의 회복탄력성이 높고 세대 간 가치 전달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교회력은 그리스도의 생애라는 거대한 서사를 매년 우리 몸에 새기는 교육적 장치이자, 파편화된 현대인의 자아를 통합하는 강력한 영적 도구인 셈이다.

그렇다면 교회력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우리의 일상을 구원하는가? 핵심은 '이야기의 전이'에 있다. 우리는 흔히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세상이 들려주는 수많은 가짜 이야기(Success Story)의 조연으로 살고 있다. 교회력은 우리를 그 허구의 이야기에서 끄집어내어 '하나님의 이야기(God's Story)' 속으로 밀어 넣는다. 대림절에 우리는 보잘것없는 마구간에 오신 아기 예수를 기다리며, 화려한 성공이 아닌 '낮아짐의 신비'를 묵상한다. 사순절에는 자신의 연약함과 죽음을 대면하며, 역설적으로 진정한 생명의 가치를 깨닫는다. 부활절의 기쁨은 우리 삶의 어떤 절망도 끝이 아님을 선포한다.
이 리듬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나의 사소한 고민과 아픔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연결되고, 나의 작은 성취가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반복은 지루한 것이 아니라,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몸짓"이라는 신학자 본회퍼의 말처럼, 교회력의 반복은 우리 존재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간다.
우리는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세상이 설계한 시계추에 맞춰 영혼 없이 흔들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선물하신 거룩한 리듬에 몸을 맡길 것인가? 교회력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의 소망을 오늘로 끌어당겨 사는 방식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우리에게는 변하지 않는 영원의 리듬이 필요하다.
교회력이라는 비밀 통로를 통해 당신의 일상을 들여다보라. 지루했던 출근길이 누군가를 섬기는 성육신의 현장이 되고, 고단했던 육아가 생명을 돌보는 거룩한 사역이 될 것이다. 시간은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향해 쌓여가는 선물이다. 당신의 달력을 기도로 색칠하라. 그때 당신의 삶은 지루한 반복이 아닌, 날마다 새로워지는 은총의 축제가 될 것이다.
[ 허동보 목사 ]
ㆍ現 수현교회 담임목사
ㆍ現 수현북스 대표
ㆍ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학석사(M.Div)
ㆍ미국 Covenant University 신학석사(Th.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