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이란 내 경제적 문제로 촉발된 대규모 시위에 대해 드디어 침묵을 깬 이슬람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하메네이는 국민의 경제적 불만에 근거한 평화적 집회는 정당하다고 인정하면서도, 폭력적인 폭동에 대해서는 엄중히 대응하겠다는 차별화된 방침을 천명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력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며 압박을 가하자 이란 정부는 이를 내정 간섭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란 당국은 현재 휴교령 등을 통해 내부 열기를 식히려 노력 중이며, 미국과의 군사적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테헤란의 찬 공기 속에 섞인 비릿한 연기의 진실
2026년의 새해 아침, 수도 테헤란의 심장부인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r)에는 예년과 다른 무거운 정적이 흐른다. 수천 년 동안 동양과 서양을 잇던 실크로드의 후예들이 자물쇠를 굳게 걸어 잠갔다. 2022년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이 자유를 향한 외침이었다면, 지금의 들불은 생존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어제 만난 노년의 상인 아흐마드는 먼지 앉은 찻잔을 만지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우리는 천국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오늘 저녁 식탁에 올릴 빵 한 조각을 기다리는 것이라오." 이 말 한마디는 화려한 국제 정치의 수사 뒤에 숨겨진 이란의 진짜 얼굴을 보여준다. 이번 시위 보도를 넘어, 이란이라는 거대한 퍼즐 조각이 2026년 세계 질서에 어떤 균열을 내고 있는지 그 막후의 숨 가쁜 역학 관계를 알아본다.
최고 지도자의 고해성사인가, 정교한 덫인가: "시위는 정당하나 반란은 죽음이다"
며칠간의 은둔을 깨고 나타난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입술에서 나온 말은 세계를 경악케 했다. 그는 국민의 경제적 고통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30년 넘게 이슬람의 가치를 수호하며 무슬림들과 함께 호흡해 온 필자의 시선에, 이는 단순한 양보가 아닌 생존을 위한 '영적 위장술'로 보였다. 하메네이는 시위(Protest)와 반란(Rebellion)이라는 단어 사이에 깊고 날카로운 칼날을 꽂았다.
배고픔에 울부짖는 백성은 품어 안는 척하며 대중의 분노를 희석하고, 체제 전복을 꿈꾸는 조직적 저항군은 '신의 적'으로 규정해 섬멸하겠다는 의도다. 이는 시위대의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우리는 시위대와 대화해야 하지만, 반란군과는 무력으로만 대화할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자비의 탈을 쓴 강권 통치의 변주곡이다. 이 이중적 태도는 이란 정권이 현재 얼마나 벼랑 끝에 몰려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트럼프의 '조준 고정'과 민족주의의 역습: 외부의 적은 정권의 방패가 되나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진 것은 바다 건너 워싱턴에서 날아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독설 때문이었다. "목표물에 조준 고정(Locked and Loaded), 탄약 준비 완료." 이 한 문장은 이란의 내부 경제 분쟁을 단숨에 국제적인 전쟁 접경 상황으로 격상시켰다. 이란인들에게 외세의 개입은 치욕적인 역사적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일이다.
정부의 실정에 분노하던 시민들조차 미국의 노골적인 군사 위협 앞에서는 "우리 내부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한다"라며 다시 국기 아래로 모여드는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의 강경 발언은 역설적으로 하메네이 정권에 '국가 안보'라는 강력한 방패막이를 선물한 셈이다. 이란 외무부는 이를 "주권에 대한 야만적 도발"이라 규정하며 민족주의의 불을 지폈고, 거리의 분노는 잠시 방향을 잃고 서구를 향한 오랜 증오와 섞이기 시작했다.
이란의 '냉탕과 온탕' 전략: 31개 주 중 29개 주 휴교령의 이면
미국의 위협에 대해 이란의 모함마드 바게르 칼리바프 국회의장은 "악마의 절규"라며 모든 미군 기지를 표적으로 삼겠다고 포효했다. 하지만, 테헤란 내부의 움직임은 의외로 신중하고 주도면밀했다. 정부는 전국 31개 주 중 29개 주에 전격적인 휴교령을 내렸다. 표면적으로는 "시민의 안전"을 내세웠지만, 진실은 젊은 에너지가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혈관을 막겠다는 계산이다.
학교가 문을 닫고 광장이 통제되자 거리의 열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외부를 향해서는 당장이라도 미사일을 쏠 듯 으르렁대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직접적인 유혈 진압의 부담을 피하려고 '강제적 고요'를 선택한 것이다. 이는 이슬람 통치자들의 전형적인 '타끼야(Taqiyya, 위장)' 전술과 닮았다. 강한 언사 뒤에 숨은 신중한 조치는 이란이 현재 직면한 위기가 얼마나 복합적인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긴장 속의 고요, 2026년의 운명은 어디로 흐르나
현재 이란의 거리는 폭풍 전야의 고요함에 잠겨 있다. 경제적 결핍이라는 불씨는 여전하고, 외부의 압박이라는 산소는 계속해서 공급되고 있다. 이 압력이 이란 국민을 하나로 묶어 정권을 지탱하는 기둥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임계점을 넘은 분노가 체제 자체를 녹여버리는 용암이 될 것인가. 2026년의 세계는 이란이라는 화약고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오늘 밤 테헤란의 어느 골목에서 굶주린 채 잠드는 아이의 눈물이다. 그 눈물이 닦이지 않는 한, 어떤 강한 통치도 모래 위에 쌓은 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