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설계한 초정밀 분자 센서가 암 진단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과 마이크로소프트(MS) 리서치 공동 연구팀은 암 발생 초기 단계에서 활성화되는 특정 효소를 포착해, 단 한 번의 소변 검사만으로도 암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을 공개했다. 이번 성과는 의료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동시에 암 정복을 위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행착오' 끝낸 AI의 마법, '클리브넷'의 등장
기존 의료계에서 암 조기 발견의 난제로 꼽혔던 것은 '효소 반응의 불확실성'이었다. 암세포가 주변으로 침투할 때 분출하는 '프로테아제(Protease)' 효소를 추적하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으나, 수조 개에 달하는 단백질 조합 중 특정 암에만 반응하는 펩타이드를 찾아내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려웠다.
연구팀은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AI 기반 펩타이드 설계 모델인 '클리브넷(CleaveNet)'을 구축했다. 클리브넷은 약 2만 건 이상의 상호작용 데이터를 학습한 단백질 언어 모델을 통해, 목표 효소에만 칼같이 반응하는 최적의 후보군을 선별한다. 10개 아미노산 조합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10조 개의 가능성을 AI가 순식간에 계산해 최적의 '분자 열쇠'를 만들어낸 셈이다.
나노입자가 보낸 신호, 소변으로 확인하는 '암 지도'
기술의 핵심 메커니즘은 정교하다. AI가 설계한 특수 펩타이드를 입힌 나노입자를 체내에 투입하면, 이 입자들은 혈류를 타고 암세포를 찾아 나선다. 만약 암세포를 만나면 해당 효소에 의해 펩타이드가 절단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신호 분자가 신장을 거쳐 소변으로 배출된다.
이 방식은 마치 임신 테스트기처럼 간편한 키트 형태로도 구현이 가능하다. 병원을 방문해 고가의 장비를 쓰지 않고도 집에서 스스로 암 재발이나 초기 발병 여부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상기타 바티아 MIT 교수는 "극미량의 신호까지 증폭하여 감지함으로써 수술 후 재발이나 아주 작은 종양까지 잡아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단순 진단을 넘어 '정밀 타격' 치료까지
이번 연구의 가치는 진단에만 머물지 않는다. AI로 설계된 이 정밀 펩타이드는 항암제와 결합해 '지능형 미사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정상 조직에서는 반응하지 않다가, 암세포가 밀집된 특정 환경에서만 약물을 방출하도록 설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항암 치료의 최대 고통인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된다.
현재 연구팀은 미국 ARPA-H의 지원을 받아 무려 30여 종의 암을 동시에 구분할 수 있는 범용 진단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또한, 암종별 효소 활성 패턴을 데이터화한 '프로테아제 활성 아틀라스'를 구축해 향후 차세대 바이오마커 발굴의 핵심 자산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인간의 직관과 실험에 의존하던 바이오 영역이 AI라는 엔진을 달고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번 MIT와 MS의 협업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게재되며 전 세계 과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AI와 생명공학의 결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이번 분자 센서 기술은 암을 '죽음의 병'에서 '관리 가능한 질환'으로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며, 데이터 기반의 정밀 의료 시대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음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