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무너지지 않게 붙드는 거대한 '못'
가장 복잡한 기계도 결국 작은 나사 하나가 빠지면 멈춰 서고 만다. 거대한 건축물을 지탱하는 것은 화려한 외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골조와 골조를 단단히 묶고 있는 '연결 부품'이다. 히브리어 알파벳의 여섯 번째 글자인 '바브(ו)'는 바로 이 '연결'의 신비를 형상화한 문자다. 바브는 문자 그대로 '갈고리(Hook)' 혹은 '못(Peg)'을 의미한다.
단순히 수직으로 내려 그은 선 하나처럼 보이지만, 이 한 획이 품은 에너지는 가히 전율적이다. 바브는 히브리어 문장 속에서 '그리고'라는 접속사로 쓰이며, 단어와 단어, 하늘과 땅, 어제와 오늘을 잇는다. 만약 우리 삶에서 이 '바브'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관계는 파편화되고, 과거의 교훈은 미래의 소망과 연결되지 못한 채 흩어져 버릴 것이다. 오늘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갈고리는 무엇인가? 당신은 지금 무엇과 무엇을 잇는 '바브'의 삶을 살고 있는가? 이 단순한 선 하나가 전하는 연결의 철학은, 고립과 단절이 일상이 된 현대인들에게 존재의 근간을 뒤흔드는 질문을 던진다.
성막을 지탱하는 은 갈고리에서 시작된 역사
바브(ו)의 기원은 고대 광야 생활의 핵심이었던 '성막(Tabernacle)'의 구조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성막의 휘장들을 서로 연결하여 하나의 거대한 성소를 완성할 때 사용되었던 도구가 바로 은으로 만든 '갈고리(וָוִים, Vavim)'였다. 이 갈고리가 없었다면 성막은 그저 흩어진 천 조각들에 불과했을 것이다. 즉, 바브는 '부분을 모아 전체를 만드는 힘'이라는 역사적, 신학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
또한 바브는 히브리어 문법에서 매우 독특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른바 '바브 연속법(Vav Conversive)'이다. 과거형 동사 앞에 바브가 붙으면 미래로, 미래형 앞에 붙으면 과거로 시제를 역전시킨다. 이는 시간이 단순히 흘러가는 소모품이 아니라, 바브라는 연결 고리를 통해 유기적으로 소통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수비학적으로 바브는 숫자 6을 의미하는데, 이는 성경에서 인간이 창조된 '여섯째 날'과 연결된다. 인간은 창조의 정점에서 하늘(신)과 땅(피조물)을 연결해야 하는 특수한 사명을 띤 존재로 지어졌음을 바브의 형상이 웅변하고 있다.

수직적 영성과 수평적 연대의 교차점
바브를 시각적으로 분석해 보면, 하늘에서 땅으로 수직으로 내려오는 형태를 띠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하늘의 신성이 땅의 물질세계로 하강하는 통로'로 해석한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바브는 위대한 중재자다. 높은 곳의 이상을 낮은 곳의 현실로 가져와 고정하는 '못'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꿈만 꾸는 자는 바브가 없고, 현실에만 매몰된 자도 바브가 없다. 진정한 바브의 인간은 이상을 현실에 못 박아 구현해 내는 사람이다.
사회적 관점에서 바브는 '연대'의 상징이다. 접속사 '그리고'는 앞의 단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뒤의 단어를 포용한다. "나 '그리고' 너"가 될 때 비로소 공동체가 탄생한다. 현대 심리학은 관계의 단절이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준다는 데이터를 제시한다. 신학자들은 이를 '바브의 결핍'이라 부른다. 바브가 빠진 인간은 자아라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바브가 회복될 때, 인간은 수직적으로는 신과 소통하고 수평적으로는 타인과 연결되는 '입체적 존재'로 거듭난다. 결국 바브는 나라는 존재가 타자와 우주에 어떻게 고정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존적 지표인 셈이다.
당신은 관계의 접속사인가, 단절의 마침표인가?
우리는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에 살고 있다. 손가락 하나로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듣고 수천 명의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현대인의 외로움 지수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의 연결이 '바브(갈고리)'가 아닌 '이미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바브의 연결은 서로를 지탱하는 '책임'을 전제로 한다. 성막의 갈고리가 휘장의 무게를 온몸으로 버텨내듯, 진짜 연결은 상대의 무게를 견디는 고통을 수반한다.
논리적으로 볼 때, 모든 위대한 성취는 '바브'의 결과물이다. 지식과 지식이 연결되어 지혜가 되고,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문화가 된다. 당신이 지금 누리는 모든 문명의 혜택은 누군가가 바브가 되어 과거의 유산을 오늘로 이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세대에서 무엇을 잇고 있는가? 혹시 당신의 이익이 침해될까 봐 모든 관계에 마침표만 찍고 있지는 않은가?
바브는 곧게 세워진 '사람'의 모습과도 닮았다. 하늘을 향해 머리를 두고 땅에 발을 붙인 인간의 자세다. 우리가 바브처럼 곧게 설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늘의 가치를 땅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다. "내가 너를 돕겠다"는 말은 단순한 선의가 아니라, 내가 너의 삶에 기꺼이 바브(못)가 되어 너의 슬픔을 나의 기쁨과 연결하겠다는 실존적 선언이어야 한다. 이 연결의 책임감을 회복할 때, 우리는 질식할 것 같은 고립에서 벗어나 우주적인 생명력의 흐름 속으로 편입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갈고리가 당신을 살린다
인생의 폭풍우가 몰아칠 때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화려한 돛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닥에 깊이 박힌 '닻'과 그것을 배와 연결하는 '바브'다. 히브리어 여섯 번째 글자 바브는 우리에게 가장 본질적인 안정감을 선물한다. 당신이 신의 사랑에 연결되어 있고, 가족의 따뜻함에 고정되어 있으며, 친구의 우정에 걸려 있다는 확신. 그 연결의 갈고리들이 당신을 존재하게 한다.
이제 당신의 삶을 돌아보라. 당신의 갈고리는 녹슬어 있지 않은가? 혹은 너무 약해서 작은 시련에도 빠져버리지는 않는가? 바브는 우리에게 '그리고'의 삶을 살라고 권한다. 나만 아는 삶에 '그리고 타인'을 붙이고, 오늘만 아는 삶에 '그리고 영원'을 붙이라. 그 접속사가 많아질수록 당신의 삶은 더욱 견고해지고 풍성해질 것이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바브'가 되어줄 수 있는가? 단절된 대화 사이에 '그리고'라는 다리를 놓아보라. 바브(ו)는 겸손한 직선이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앞뒤를 연결하는 데 전념한다. 기독교 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을 잇는 가장 완벽한 '바브'이시다. 우리도 그분을 닮아 세상의 깨어진 틈을 잇는 사랑의 갈고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당신이 놓은 그 작은 갈고리 하나가 무너져가는 누군가의 세상을 붙드는 기적의 못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하늘과 땅을 잇는 바브의 신비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평범한 일상을 거룩한 성소로 바꾸어 놓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