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바논의 국경 지대, 마스나(Masnaa) 검문소의 새벽은 차가운 공기보다 더 뜨거운 숨결로 가득하다. 낡은 트럭 위로 수북이 쌓인 가재도구들, 그 사이로 내민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는 두려움보다 설렘이 서려 있다. 14년이라는 긴 세월, ‘난민’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타국을 떠돌던 이들이 마침내 고향으로 향한다. 2025년 한 해 동안 레바논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간 시리아인은 무려 5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단순한 인구 이동이 아니다. 절망의 끝에서 피어오른 희망의 대이동이자, 중동의 지정학적 지도를 새로 그리는 거대한 사건이다.
무너진 독재의 성벽과 열린 귀환의 문
왜 2025년이었을까. 무엇이 그토록 견고해 보이던 난민들의 발걸음을 고향으로 돌리게 했을까. 그 해답은 2024년 12월 8일의 극적인 역사적 순간에 있다. 시리아를 53년간 통치했던 아사드 가문의 정권과 61년 전통의 바트당 체제가 무너진 것이다. 이슬람권에서 평생을 보낸 이들에게 독재의 종식은 단순히 정권의 교체가 아니다. 그것은 ‘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영적인 해방과도 같다.
시리아 내부의 정권 교체는 난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정치적 박해’라는 장벽을 허물었다. 2025년 1월 취임한 아흐메드 엘-샤라(Ahmed el-Şara) 신임 대통령의 “2년 내 해외 시리아인 전원 귀환” 선언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고향 땅을 밟아도 더 이상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 내 아이가 내 나라의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확신이 그들을 움직였다. 이 희망의 불씨를 정책으로 승화시킨 것은 레바논 정부의 치밀한 설계였다.
501,603명, 숫자로 증명된 기적
레바논 사회부 장관 하닌 에스-세이드(Hanin es-Seyyid)가 발표한 숫자는 501,603명이다. 이 숫자가 갖는 무게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국제사회는 늘 ‘위기’를 말했지만, 단 한 번도 ‘해결’을 숫자로 증명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2025년, 레바논은 처음으로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 난민 문제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 과정의 주인공은 이름 없는 평범한 아버지와 어머니들이다. 레바논 내 난민 약 180만 명 중 4분의 1 이상이 한꺼번에 짐을 쌌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이 삭제되는 것을 지켜보며, 그들은 ‘보호받는 이방인’이 아닌 ‘당당한 시민’의 권리를 선택했다. 레바논 정부는 이를 우연한 현상이 아닌, 2025년 6월에 발표한 ‘다단계 귀환 계획’의 결실이라 평가한다. 조직적 귀환과 자발적 귀환을 병행한 양동 전략이 주효했다.

국경에서 만난 고백과 눈물
국경 근처에서 만난 한 중년 사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교사님, 우리는 이곳 레바논에서 형제처럼 대접받았지만, 마음은 늘 올리브 나무 우거진 다마스쿠스의 뒷마당에 가 있었습니다. 이제야 제 영혼이 제자리를 찾는 기분입니다.” 그의 거친 손등 위로 떨어진 눈물은 14년의 한(恨)을 씻어내고 있었다.
레바논 공공 안전총국(General Directorate of General Security)은 2025년 내내 24시간 체제로 귀환자들을 지원했다. 국제 파트너들과 협력하여 귀환 과정에서 존엄성을 보장했고, 시리아 다마스쿠스 행정부와 직접 소통하며 입국 절차를 간소화했다. 이는 단순히 사람을 보내는 작업이 아니라, 깨어진 영혼들을 다시 잇는 ‘치유의 행진’이었다. 레바논의 국익과 귀환자의 인권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중동의 새로운 평화 모델이 싹트고 있었다.
희망의 연쇄 반응과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
2025년의 대규모 귀환은 하나의 사건을 넘어 전 세계 난민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기존의 ‘영구 정착’이나 ‘인도적 구호’ 중심에서, 출신국의 정치적 변화를 유도하고 수용국과 직접 협력하는 ‘주권 중심의 국가 주도형’ 귀환 모델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레바논 정부는 2026년에도 이 기세를 이어가겠다고 공언했다.
우리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으며,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주는 ‘땅’과 ‘뿌리’ 없이는 온전할 수 없다. 50만 명의 귀환은 그 뿌리를 향한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본능의 승리다. 이제 시리아는 재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돌아간 이들이 닦아놓은 길 위로, 남아있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