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안 듣는 아이”라는 라벨이 굳어지기 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처음으로 “오늘 학교에서 또 혼났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많은 부모는 마음이 무너진다. 유치원 때는 “활발하다”는 말로 넘어가던 행동이 교실에서는 규칙 위반이 되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눈치 없는 행동이 된다. 특히 ADHD를 가진 남아의 경우 이런 변화가 더 빠르고 선명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혼란스러워진다. 집에서는 분명 사랑스럽고 똑똑한 아이인데, 왜 밖에만 나가면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더 설명하고, 더 설득하고, 더 엄격해진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은 쉽게 바뀌지 않고, 집 안의 공기는 점점 날카로워진다. 이 지점에서 많은 가정이 놓치는 사실이 있다.
학령기 ADHD의 핵심 문제는 ‘말을 안 듣는 성격’이 아니라, 반복되는 실패 경험 속에서 무너지는 관계와 자신감이다. 아이를 바꾸려다 관계가 먼저 망가지는 순간,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아이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보다 “아이와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가”를 다시 설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학령기 PCIT가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령기 ADHD는 ‘집’만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가 된다
PCIT는 부모-자녀 상호작용을 치료의 중심에 둔다. 단순히 부모에게 이론을 가르치거나 훈육법을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다. 부모가 아이와 실제로 상호작용하는 장면을 기반으로, 그 순간 어떤 말과 반응이 도움이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훈련한다. 그래서 PCIT는 ‘아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치료로 불린다.
ADHD를 가진 아이들은 특히 “알지만 못 하는” 상황을 반복한다. 규칙을 몰라서가 아니라, 순간적인 충동과 주의 전환의 어려움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이때 부모가 설명을 늘릴수록 아이는 더 압도되고, 갈등은 커진다. PCIT는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해 부모의 반응 방식을 구조적으로 조정한다.
흔히 PCIT는 어린 연령의 치료로 알려져 있지만, 학령기에 들어선 이후에도 그 필요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초등학교 시기는 갈등의 종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다. 숙제, 학원, 스마트기기, 친구 관계, 수면 문제까지 하루에도 여러 번 충돌이 발생한다. 이때 부모와 아이 사이의 상호작용 패턴이 정리돼 있지 않으면, 매일이 전쟁처럼 느껴진다.
PCIT가 겨냥하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구조다
학령기 ADHD 남아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나뉜다. 첫 번째는 “뇌의 문제이니 약물치료가 우선”이라는 관점이다. 약물치료는 실제로 많은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 그러나 약이 집중력을 올려줘도, 아이가 관계 속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는 자동으로 배우지 않는다.
두 번째는 “훈육의 문제”라는 관점이다. 이 시선은 부모를 쉽게 지치게 만든다. 충분히 노력하고 있음에도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듣는 순간, 부모는 죄책감에 빠진다.
PCIT가 서 있는 위치는 세 번째 관점이다. 문제를 아이나 부모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상호작용의 구조를 바꾼다. 아이가 실패하지 않도록 돕는 환경을 만들고, 부모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훈련한다. 이 접근은 ADHD와 함께 반항적 행동이나 공격성이 겹쳐 나타나는 경우에도 특히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학령기에도 늦지 않다, 오히려 지금이 효율적인 구간이다
학령기 ADHD 남아에게 PCIT가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 시기의 손상은 주의력 자체보다, 그로 인해 반복되는 관계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혼나고, 지적받고, 거부당하는 경험이 쌓일수록 아이는 스스로를 “문제 있는 아이”로 인식하게 된다. 첫째, 학령기는 갈등의 빈도와 강도가 급격히 증가하는 시기다. 부모는 하루에도 여러 번 아이를 통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때 설명과 잔소리가 늘어날수록 갈등은 커진다. PCIT는 짧고 명확한 지시, 즉각적인 피드백, 감정의 확산을 막는 반응 기술을 훈련해 이런 악순환을 줄인다.
둘째, 학교생활과 가정생활은 분리돼 있지 않다. 집에서의 상호작용 방식은 교실에서의 행동으로 이어진다. 부모가 아이의 긍정적인 행동을 포착하고 강화하는 기술을 익히면, 아이는 학교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반응을 연습할 기회를 갖는다.
셋째, 부모가 바뀌면 아이가 바뀐다는 말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PCIT는 부모에게 “참아라”가 아니라 “이렇게 하라”를 제시한다. 그래서 부모의 소진을 줄이고, 아이에게는 예측 가능한 일상을 제공한다.
넷째, 학령기에 시작하면 늦었다는 걱정은 오해에 가깝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사회적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경험한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연습한 기술은 학교와 또래 관계에서 바로 시험대에 오른다. 그래서 변화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부모와 아이 모두 동기를 유지하기가 더 쉽다.
학령기 ADHD 남아를 키우는 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더 강한 통제가 아니다. 더 정교한 연결이다. 아이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실패하지 않고 연습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PCIT는 아이를 얌전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돕는 구조다. 아이에게는 “나는 매번 혼나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경험을, 부모에게는 “나는 매일 망치는 부모가 아니다”라는 감각을 되돌려준다.
지금 이 시기에 관계를 다시 세우지 않으면, 아이는 점점 더 강한 방식으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반대로 지금 관계를 다듬으면, ADHD라는 특성은 사라지지 않아도 아이의 삶은 훨씬 덜 아프게 흘러갈 수 있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면, 답은 분명하다. 더 많은 말이 아니라, 더 나은 상호작용이다.
지금 아이의 행동이 아니라 부모와 아이 사이의 패턴을 점검해 보자. 부모 훈련 기반 치료, 특히 PCIT에 대해 전문가와 상담하며 우리 가정에 맞는 개입 시점을 논의해보길 권한다. 관계는 바꿀 수 있고, 학령기는 아직 충분히 늦지 않은 시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