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투탕카멘의 역설(逆說)

여계봉 대기자

 

1,600년간 이집트를 이끈 곳, 세계에서 가장 큰 신전이 있는 룩소르 동안(東岸)의 ′산 자의 도시′(아크로폴리스)에서 서안(西岸) ′죽은 자의 도시′(네크로폴리스)로 삼각돛을 단 작은 범선 펠루카를 타고 넘어간다. 수천 년 전부터 나일강을 오고 간 작은 돛단배의 하얀 돛 아래에 앉아서 서안에 있는 왕가의 계곡을 바라본다.

 

이집트의 고도(古都) 룩소르 서안에는 한쪽으로는 나일강이 흐르고 다른 한쪽으로는 황량한 산들이 이어지는 황갈색 석회암 절벽 아래로 무덤들이 늘어서 있는 왕들의 계곡이 있다. 왕들의 계곡에는 당시 파라오의 매장품 도굴을 예방하기 위해 사람들 눈에 띄기 쉬운 피라미드 대신 인적이 드문 계곡 바위틈이나 벼랑에 60여 개의 무덤들이 있었으나 이미 오래전에 모두 도굴된 텅 빈 무덤들뿐이었다.

 

파라오들이 묻혀 있는 왕들의 계곡 입구

 

1922년 11월 26일, 영국인 하워드 카터가 왕들의 계곡에 있는 무덤의 봉인을 뜯고 처음으로 문을 연 투탕카멘의 무덤에는 몇 겹으로 쌓인 관과 미라가 있는 묘실, 대기실과 보물 창고, 곁방에는 3,500여 점의 보물들로 가득했다. 투탕카멘은 이집트 제18대 왕조의 파라오였다. 기원전 1341년에서 기원전 1323경까지 살았던 인물로, 어린 나이인 10살에 즉위하여 약 8년간 재위하다 18세에 급사한 ′비운의 소년 왕′이다. 

 

투탕카멘의 죽음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친남매였던 부모의 근친 혼인으로 인한 극심한 폐해로 태어나자마자 보행이 불편했으며 구개열로 인해 언어 장애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미라의 두개골이 손상된 것을 보고 정치적 음모에 의해 어린 왕이 둔기에 맞아 암살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지만, 미라를 유전자 검사한 결과 유전적 질환으로 면역 체계가 약했던 투탕카멘이 다리 골절상을 입은 상태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젊은 나이로 사망한 것으로 규명되었다고 한다.

 

무덤 왼쪽의 큰 입구는 람세스 6세, 오른쪽의 작은 입구는 투탕카멘의 현실로 들어가는 진입로 

 

규모가 크고 보존 상태가 좋은 람세스 6세의 무덤은 도굴꾼들에게 진작 털렸는데 그 옆에 조그마하게 붙어 있어 존재조차 알 수 없었던 투탕카멘 무덤은 운 좋게도 3,300여 년의 긴 세월을 버텨온 것이다. 람세스 6세의 무덤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색색이 벽화가 빼곡히 들어차 있고 무덤 내부에 기둥과 기나긴 복도, 그리고 널찍한 공간들이 있지만 투탕카멘의 무덤은 좁아터진 복도와 현실(玄室)에는 조각이 아닌 그림 벽화만 그려져 있으니 파라오의 무덤치고는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 단번에 비교가 된다. 무덤 입구에서 좁은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 복도를 지나면 나오는 작은 현실에는 투탕카멘의 미라가 누워있고, 그 옆에는 시신을 안치했던 석관이 놓여있다. 여기서 나온 유물은 모두 이집트 대 박물관으로 이사 가고, 무덤의 차가운 바닥에는 투탕카멘의 검은 미라만 누워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는 그의 미라만 남아있다.

 

아침 일찍 카이로의 나일강 강변에 있는 호텔을 나와 시내로 들어서니 카이로의 아침 거리는 차선도 없는 도로를 곡예 운전하는 출근길 차량으로 북새통이다. 교통체증이 심각한 도심을 겨우 뚫고 외곽으로 나와 달리다 보니 거대한 기자 피라미드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어서 거대한 유리로 만든 삼각형 건물이 시선을 압도한다. 2025년 11월 1일 개관한 약 15만 평 규모의 이집트 대 박물관(Grand Egypt Museum)이다. 피라미드와 나일강 삼각주를 형상화하여 만든 새 박물관은 카이로 시내 중심인 타흐리르 광장에 있던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이집트박물관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20년간 12억 달러를 들여서 만든 세계 최대 규모의 이집트 대 박물관

 

이집트 대 박물관은 1만 년 이집트 역사가 응축된 유물 10만여 점을 소장한 단일 문명 최대 박물관이자 인류 문화재의 보고(寶庫)다. 오벨리스크가 있는 광장을 지나 3층 건물인 박물관에 들어서면, 1층 그랜드홀에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석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높이 12m, 무게 83t의 람세스 2세 석상은 이집트박물관의 1층 로비에 있다가 새로 만든 박물관 준공 이후 가장 먼저 옮겨왔다고 한다. 박물관은 1층 그랜드홀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중앙 계단실에 전시실과 유물을 관람하도록 동선을 배치했다.

 

박물관 1층에 있는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석상

 

이 거대한 박물관에서 가장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은 3층에 있는 투탕카멘 갤러리다. 신왕국 18왕조 파라오 투탕카멘(재위 BC1334∼BC1325년) 무덤에서 발굴한 5,000여 점의 유물은 박물관의 백미(白眉)다. 그의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 중 황금 관, 황금 마스크, 전차, 목관, 침대와 의자, 항아리 등이 전시되어 있다. 투탕카멘은 불과 8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재위했던 평범한 인물이어서 역사에서 사라진 ′잊힌 파라오′였다. 하지만 그가 쟁쟁한 파라오들을 제치고 가장 유명한 인물로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파라오 무덤 가운데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채 발굴된 무덤 속의 유물들이 고대이집트 연구의 출발점이 됐기 때문이다. 

 

 3층 갤러리 너머로 보이는 기자 피라미드

 

이집트를 대표하는 유물인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는 고대 이집트 아마르 시대의 예술 양식을 엿볼 수 있는 걸작으로, 길이 54㎝에 무게가 무려 10.23㎏이다. 매끄럽게 가공된 외양과 아름다운 선으로 소년 왕 투탕카멘을 신격화한 모습을 표현한 황금마스크는 눈에는 석영이, 눈동자에는 흑요석이 박혀 있다. 이전되기 전에도 매년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박물관을 방문하도록 하는 신비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유물이기도 하다. 영생을 믿었던 이집트인들은 망자가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상태로 시신을 처리해 장례를 치렀다. 처음에는 생전의 모습을 본뜬 조각을 빚어 무덤에 넣었고, 차츰 얼굴 모습을 그대로 본뜬 마스크를 씌워 생전 분위기를 살려냈다. 금은 영원히 변하지 않아 영생과 잘 어울리니 신으로 대접받는 파라오는 황금 마스크를 쓰게 된 것이다. 

 

 이집트 문화재를 대표하는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투탕카멘의 황금 의자는 황금 마스크와 함께 투탕카멘의 보물 중 가장 유명한 유물 중 하나다. 보통 신왕국 시대의 왕좌들은 팔걸이가 여성의 머리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 왕좌는 팔걸이가 사자로 장식되어 있다는 게 특이한 점이다. 왕좌 자체는 나무로 만들었고 금박으로 덮은 후 준보석, 방해석, 색유리 등으로 화려하게 상감했다. 등받이 그림 속에서 투탕카멘은 편안한 자세로 기대어 쉬고 있고 이복누나인 아내 안케세나멘이 남편의 어깨에 향유를 발라주고 있다. 발판에는 당시 이집트가 정복한 민족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투탕카멘의 황금 의자 

 

투탕카멘 묘실 한가운데에 떡하고 자리 잡고 있었던 황금빛 상자 캐노피 신전은 미라를 만들 때 장기를 담은 카노푸스 단지들을 보관하는 용도로 썼는데, 이시스, 네프티스, 네이트, 세르케트 여신이 양팔을 뻗은 자세로 관을 수호하고 있다. 틀은 나무를 깎아 만들었고 그 위에 금박 판을 붙였다. 투탕카멘 왕의 간, 위, 폐, 내장의 장기를 보관한 4개의 카노푸스 단지에는 투탕카멘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당시에는 죽은 왕이 사후에도 계속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미라의 내장을 잘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투탕카멘의 카노푸스 단지를 넣었던 황금 상자 캐노피 신전(사당)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영생을 얻으려고 죽은 뒤에 신으로 부활해서 자신이 머물 궁전을 건설했지만 그 대가는 엄청났다. 수많은 돈을 퍼부은 소위 잘 나가던 파라오의 무덤은 매장된 지 얼마 안 되어서 도굴꾼에 의해 참혹하게 털려 싼값에 팔려 나갔다. 그들이 쏟아부은 돈의 수천만분의 1도 안 되는 싸구려 값에 말이다. 그러나 재위 기간이 짧고 별다른 업적이 없어서 역사에서 잊힌 존재감 없었던 ′비운의 왕′ 투탕카멘은 그 덕분에 무자비한 도굴을 피할 수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무덤에서 화려하게 부활하여 이집트의 찬란한 문명을 대표하는 파라오의 대명사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것이 바로 투탕카멘의 역설(逆說)이 아닌가.

 

 

[여계봉 대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6.01.14 10:53 수정 2026.01.14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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