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공기가 매서웠다. 그러나 그 찬 기운 속에서도 국사봉을 향하는 이들의 발걸음은 가볍다. 계룡산의 능선은 아직 어둠에 잠겨 있었고, 동쪽 하늘만 희미하게 붉어지고 있었다. 이른 새해 아침, 그곳을 찾은 이유는 단순한 산행이 아니라, 새해의 첫 빛을 ‘계룡의 향기’ 속에서 맞이하고자 함이었다. 국사봉은 계룡산 주능선에서 갈라져 나온 짧은 암릉 위에 자리한다. 비록 고도는 높지 않지만, 산세는 곱고 단단하다. 바위 틈마다 고드름이 맺히고, 나무 가지 사이로는 서릿빛이 반짝인다. 한 걸음씩 오르며 뒤를 돌아보면 논산평야가 점차 눈에 들어오고, 계룡시의 마을 불빛이 서서히 사그라든다. 봉우리에 오를수록 찬 바람이 매섭지만, 마음은 점점 고요해진다.
정상에 다다를 무렵, 태양이 능선 위로 떠오른다. 붉은 빛이 천지창운비를 비추며 대지와 하늘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 산행객들은 저마다 두 손을 모으고 새해의 바람을 속삭인다. 그 순간, 계룡의 산세는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삶과 시간의 경계’를 넘어선 성찰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국사봉 자락에 자리한 무상사는 작은 산사지만, 그 안에는 세계로 향한 불교 수행의 숨결이 담겨 있다. 2000년 숭산 행원 스님이 창건한 이 도량은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국제 수행공동체’의 중심으로 세워졌다. 숭산 스님은 약 30여 년 동안 해외에서 불법과 참선 수행을 전하며, 한국 불교의 명상 전통을 전 세계로 알린 인물이다.
그가 계룡산 자락을 수행의 터전으로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산의 기운이 맑고 강한 곳, 진정한 깨달음의 숨결이 흐르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스님은 서울 화계사에 국제선원을 개원하며 외국 제자들과 함께 수행의 장을 열었고, 이어 국사봉 아래 무상사를 통해 참선 수행의 보편적 가치를 세계로 확장했다. 무상사는 종교나 국적, 나이, 성별의 구분이 없다. 누구나 이곳에서 ‘참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수행의 목적은 개인의 깨달음에 머물지 않고, 자비의 실천으로 세상과 연결된다. 무상사의 고요한 대웅전에는 “깨달음은 앉은 자리에서 시작되고, 세상 속에서 완성된다”는 스님의 가르침이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다.

국사봉 정상에는 두 개의 비석이 있다. 천지창운비와 오행비다. 그 비석 앞에 서면,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라 ‘하늘과 땅의 질서’를 상징하는 사상적 유물처럼 느껴진다. 천지창운비는 하늘이 열리고 땅이 응하는 ‘창운(創運)’의 의미를 담고, 오행비는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조화를 통해 우주의 근본 이치를 전한다. 비석의 글자 하나, 배열 하나에도 동양 철학의 상징이 녹아 있다. 대종교 계열에서 세운 것으로 알려진 이 비석들은 천문과 역학, 오행 사상을 아우르며 계룡산이 단순한 조망의 산을 넘어 ‘정신적 성산’으로 여겨진 이유를 보여준다.
천황봉에서부터 이어지는 능선은 마치 하늘의 용이 몸을 틀 듯 굽이치고, 그 중심부에 국사봉이 자리한다. 그래서 이곳은 오랜 세월 동안 ‘천지의 기운이 응집된 곳’으로 불렸다. 수많은 수행자들이 이 능선에서 깨달음을 구했고, 지금도 이 비석 앞에서 묵념하는 이들의 모습은 계룡산의 오랜 신앙과 사상의 흐름을 잇고 있다.
국사봉의 오름길은 짧다. 그러나 그 짧은 길에는 삶의 은유가 숨어 있다. 오르는 동안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정상에 서면 세상의 넓이를 본다. 그리고 내려서는 길에서는 그 마음을 다시 일상으로 가져간다. 하산길은 치유의 숲으로 이어진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은 따스하고, 물탕 팽나무 쉼터를 지나면 고요한 숲속이 펼쳐진다. 한동안 천황봉을 바라보다 내려선 길은 어느새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게 한다. 숲길 끝에 다다를 즈음,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소리는 수행의 마무리처럼 들린다.
계룡산의 향기는 단순한 자연의 냄새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의 향기이며, 세상과의 연결을 일깨우는 바람이다. 국사봉에서의 새해 아침은 그런 의미에서 ‘깨달음의 시작점’이자, ‘삶의 새로운 페이지’로 남는다.
국사봉의 새벽은 고요하고, 그 고요함 속에서 삶의 본질이 드러난다. 무상사의 종소리, 천지창운비의 상징, 그리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숨결은 모두 한 방향을 향한다. “스스로를 깨닫고, 세상에 나누라.”
계룡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바위와 나무, 바람과 비석이 함께 어우러진 그 능선에서 사람들은 오늘도 자신을 비춘다. 새해의 첫 아침에 이 산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다. ‘계룡의 향기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다시 만나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