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신과 성도의 견인, 장재형목사(Olivet University)

장재형목사의 로마서 8 31~34절 설교를 중심으로 예지예정, 칭의와 영화, 성도의 견인, 그리스도의 중보를 유기적으로 해설하며 구원의 확신과 평강의 근거를 깊이 묵상합니다.


로마서 8 31절에서 34절까지는 신자의 구원을 둘러싼 모든 불안을 법정의 언어로 정리해 버리는, 바울의 가장 장엄한 확신 선언입니다. 장재형(Olivet University)목사가 이 본문을 해설하며 강조하는 지점은 단순히마음이 편해지라는 감정적 위로가 아니라, 구원의 구조 자체가 하나님 편에서 이미 결속되어 있다는 신학적 사실에 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라는 도입은 사건의 시작이 아니라 결론의 선포입니다. “이 일은 구원의 총체, 곧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성취하시며 마침내 완성하시는 구원 역사의 연쇄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구원을 우연의 산물이나 인간 결단의 불안정한 기록으로 남겨 두지 않고, 미리 아심에서 시작해 예정과 소명, 칭의, 그리고 영화에 이르는 하나님의 황금사슬로 묶어 놓습니다. 장재형목사 이 대목을 집요하게 되짚는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신앙이 흔들리는 순간들은 대개내가 앞으로 잘할 수 있을까라는 미래 불안에서 오기보다, “내가 정말 사랑받고 있는가라는 존재 불안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불안의 뿌리를 겨냥해, 인간의 내면을 설득하기보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먼저 선언합니다. 내가 나를 붙드는 손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는 손이 구원의 지속성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1절의 질문은 논쟁을 부르는 질문이 아니라, 논쟁을 종결시키는 질문이 됩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장재형목사는 이 문장을정서적 용기의 구호로만 소비하지 않도록 경계합니다. 이 문장은 영적 전투의 심리 처방이라기보다, 구원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밝히는 법적 선언에 가깝습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신앙 성적표를 근거로 자기를 변호하려 들면, 그의 영혼은 매일 바뀌는 컨디션과 감정의 기압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우리 편이시라는 전제는, 신자의 신분이 외부 상황과 내부 기분을 초월해 유지되는 근거가 됩니다. 바울은 여기서 구원의 확신을 어떤 낙관적 기질이나 자기암시로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미의롭다라고 선고하셨다는, 바뀌지 않는 판결 위에 확신을 세웁니다. 이 본문을 묵상할 때, 우리는 신앙을내가 하나님을 붙드는 능력으로 오해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는 은혜로 신앙의 중심을 옮기게 됩니다.



바울은 이어서 구원의 논리를 절정으로 끌어올립니다. 32절은 31절의 확신이 결코 허공에 떠 있는 위로가 아니라는 증거 제시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장재형목사 설교의 정점도 늘 여기로 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말의 진짜 무게는, 하나님이아들을 내어주셨다는 사실에서 측정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진술이 추상으로 남아 있지 않게 하는 단 하나의 역사적 중심,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확신은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아니라, ‘아들이 내어주어진 사건이라는 이미 발생한 구속의 사실에서 흘러나옵니다. 내 감정이 은혜를 확인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내 감정을 다시 교육합니다. 내 생각이 하나님의 뜻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내 생각을 항복시키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길과 생각은 인간의 길과 생각보다 높습니다. 장재형목사는 바로 이높음을 신자의 자존과 평강으로 연결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비싼 대가로 우리를 사셨다면, 그 가치평가를 내가 함부로 깎아내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없습니다.


이 대목을 더 깊이 새기게 하는 시각적 증언으로, 17세기 초 카라바조의 명화 〈이삭의 희생〉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캔버스 속에서 아브라함의 손은 이삭을 붙잡고 칼은 치켜들려 있지만, 천사의 개입이 그 폭발 직전의 순간을 멈춰 세웁니다. 이 그림이 주는 충격은 단지 비극적 긴장감이 아니라,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이라는 창세기의 언어가 인간에게 어떤 결단으로 가능한지, 그리고 동시에 인간의 결단이 어디까지나 상징과 예표에 머문다는 사실을 동시에 드러낸다는 데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결국 이삭을 실제로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표에 머물지 않고 실재로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8 32절에서 아브라함의 전승을 배경처럼 깔아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헌신이모형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은본체입니다. 장재형목사가 이 본문에서 반복해 강조하는피값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감상적 문장이 아니라 존재론적 선언입니다. 나는 우연히 괜찮아진 사람이 아니라, 대속의 피로 값 주고 사심을 입은 존재입니다.


33절로 들어오면 법정의 이미지가 더 또렷해집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장재형목사는 이 구절을 설명할 때, 신앙의 적이 바깥의 박해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더 집요한 송사자는 내 안에 숨어 있는자기고발일 수 있습니다. 신자는 종종 죄의식과 회개를 구별하지 못한 채, 회개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끝없이 정죄합니다. 회개가 하나님께로 향하는 방향 전환이라면, 자기정죄는 하나님이 이미 선언하신 칭의의 판결을 다시 끌어내려 인간의 법정에서 재심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고발의 자리에서 최종 발언권을 가진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의롭다라고 선고하셨다면, 누가 그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느냐고. 여기서택하심은 신자를 오만하게 만드는 특권이 아니라, 신자를 무너뜨리는 최후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는 방패가 됩니다. 장재형목사성도의 견인을 말할 때, 그것은 인간이 끝까지 버티는 근성의 미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끝까지 놓지 않으시는 신실하심의 미학입니다. 견인은 신자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서 흘러나오는 약속입니다.


바울의 질문은 34절에서 마지막 봉인으로 찍힙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그리고 즉시 근거가 따라옵니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 예수, 하나님 우편에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구절을 사도신경의 고백과 연결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승천과 보좌 우편의 통치가 단지 교리 문장으로 머물지 않도록 이끕니다. 신자는심판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워하지만, 동시에심판의 주가 나의 중보자라는 사실 때문에 평안을 얻습니다. 법정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재판정의 존재가 아니라, 변호인 없이 홀로 서 있는 상태입니다. 바울은 신자를 그런 상태로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단지 과거에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나를 위해 간구하시는 분입니다. 이 현재진행형의 중보는 신자의 구원이 과거 사건에만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 법정에서 유효하게 적용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성령의 중보와 그리스도의 중보가 함께 작동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신자의 삶을 고립된 개인의 고군분투로 보지 않게 합니다. 신앙은 종종내가 얼마나 강하냐의 경쟁으로 왜곡되지만, 로마서 8장은하나님이 얼마나 확실하냐의 선언입니다. 그래서 은혜와 평강은 서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은혜가 먼저 오고, 그 은혜가 평강을 낳습니다. 히브리인의 인사샬롬이 단지 전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이 하나님 안에서 정렬되는 완전성의 의미를 담고 있듯,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평안은 세상이 주는 피상적 안도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솟아나는 심층적 안정입니다. 장재형목사 설교는 이 평안을 감정의 부드러움으로 축소하지 않고, 구원의 객관적 토대에서 흘러나오는 영혼의 질서로 설명합니다. 내가 흔들릴 때마다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은 내 결심이 아니라,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결단입니다.


이 본문이 신자에게 주는 실제적 유익은, 신앙을 불안의 연료로 쓰지 않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많은 신자가내가 부족하니 하나님이 나를 버리실지도 모른다는 상상 속에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묻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하셨는데, 그 이후에 무엇을 더 아끼시겠느냐고. 이것은 신자를 방종으로 몰아넣는 논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와 경외로 몰아넣는 논리입니다. 값이 치러진 사랑을 알게 될수록, 사람은 자신을 함부로 쓰지 않게 됩니다. 장재형목사는자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신자가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을 지적합니다. 구원받은 자의 자기혐오는 겸손이 아니라, 은혜의 가치를 무시하는 불신의 또 다른 얼굴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인간 이해가 하나님의 형상과 죄성이라는 두 축 위에 서 있듯, 신자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되, 동시에 보혈로 사함 받은 존재라는 새 신분을 인정해야 합니다. 죄의 자각은 은혜로 가는 문이지만, 은혜를 거부한 채 죄의식에 눌어붙는 것은 문 앞에서 돌아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 31절부터 34절까지는구원의 확신을 단순한 확률 계산에서 구출합니다. 확신은 내가 잘할 가능성이 높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완성하신 구원 사역이 나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생깁니다. 바울은 미리 아심과 예정, 부르심, 의롭다 하심, 영화롭게 하심을 한 줄의 단정한 논리로 묶어, 신자가 자기 삶의 변덕에 의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재단하지 않도록 합니다. 그가 반복해 강조하는 것은 결국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크기이며, 우리는 그 사랑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해의 승리가 아니라 영접의 결단입니다. 그 영접은 무작정의 도약이 아니라, 십자가라는 역사적 사실 위에 세워진 신뢰입니다.


오늘의 신자에게 이 본문이 갖는 의미는 더욱 선명합니다. 불안이 일상화된 시대에 사람들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술을 찾지만, 성경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술 대신 마음을 지탱하는 토대를 제시합니다. 그 토대는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선언이며, 그 선언의 증거는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셨다는 사건입니다. 그 결과로 신자는 세상을 향해 당당해지고, 자신을 향해도 정직해지며, 교회를 향해도 귀함을 새롭게 인식합니다. 장재형목사 설교에서 종종 등장하는작은 교회, 작은 공동체의 기쁨은 바로 이 인식의 열매일 것입니다. 규모가 아니라 정체성이 교회의 존귀를 결정합니다. 피값으로 사신 공동체라는 사실을 아는 곳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쁨과 자존이 생깁니다. 그 자존은 교만이 아니라 은혜에서 비롯된 품격입니다. 나는 내가 대단해서 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귀하게 여기셨기에 귀한 것입니다.


바울의 질문들은 결국 신자의 입술에 하나의 고백을 남깁니다. “누가 나를 대적하리요, 누가 나를 송사하리요, 누가 나를 정죄하리요.” 그리고 그 고백의 결론은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죽으시고 살아나셨고,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지금도 간구하시는 그분. 장재형목사가 이 본문을 통해 성도에게 주고자 하는 가장 실질적인 선물도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구조 위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세우는 일. 의심이 올라올 때마다 내 생각을 절대화하지 않고, 하나님의 생각의 높음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일. 그리고 마침내, 내 삶의 심판대가 두려움의 자리이기 전에 은혜의 자리임을 인정하는 일. 그리스도가 나의 심판주이면서 동시에 나의 변호자이시라면, 신자의 미래는 공포의 미지(未知)가 아니라 은혜의 약속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로마서 8 31절부터 34절은 신자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영적 방패이며, 장재형목사 설교는 그 방패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세공해 성도에게 쥐여 주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적으로 삼지 않고, 은혜 안에서 담대히 걸어갈 수 있습니다.


davidjang.org
작성 2026.01.14 21:18 수정 2026.01.1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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