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④ ‘海’라는 언어가 만들어낸 분별의 지리
― 화하의 시야, 동이의 탄생, 그리고 기록의 비대칭 ―
앞선 연재에서 우리는 황해를 ‘사이에 있는 바다’가 아니라
생활권을 묶는 내해로 인지할 때 고대 동아시아의 이동과 유물 분포가 설명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제 남게 되는 문제는 보다 명확하다.
화하족은 왜 이 내해권과 그 너머의 세계를 끝내 자기 세계로 인식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동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방위 명칭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동이’는 방위가 아니라 분별의 언어였다.

1. 사기·한서 이후의 지명은 ‘현대적’이지만, 시야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언어는 발전하였다고 인식해야 한다.
『尚書』와 『山海經』 같은 고대 문헌이 다루는 세계는, “선으로 나눈 영토”의 세계가 아니다.
이 문헌들에서 말하는 州, 國, 夷, 海는 행정 경계가 아니라
산과 강 등으로 구분되는 지형적 묶음이며 생활권의 범주에 가깝다.
『사기』·『한서』 이후의 지명, 그리고 우리나라의 『삼국사』·『고리사(고려사)』에 등장하는 지명들은,
오늘날의 지명과 구조적으로 동질적이다.
즉, 이 시기 이후의 지명은 더 이상 신화적·추상적 공간명이 아니라, 실제 지형과 강·산·도시를 가리키는 실재 지명이다.
문제는 지명의 성숙이 아니라, 기록자의 시야다.
화하 중심 사서들은 자신들이 직접 통제·인지·왕래하지 못한 공간을 끝내 내부화하지 못했다.
그 결과, 그 공간은 행정적 명칭을 부여받지 못하거나, ‘海’라는 추상적 경계 개념으로 밀려난다.
2. 화하족에게 ‘海’란 무엇이었는가
오늘날 우리는 ‘海’를 곧바로 대양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화하족의 ‘海’는 그런 개념이 아니었다.
화하족에게 ‘海’는 다음과 같은 공간을 가리켰다.
끝없이 펼쳐진 시야가 닿지 않는 평탄한 대지
물과 육지가 반복되는 늪·택·호의 연속 지대
강이 흘러가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수계의 말단
하남성 일대를 차로 횡단해 본 사람이라면 이 감각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산도 보이지 않고, 먼지로 시야를 가리며, 끝이 가늠되지 않는 평원.
화하족에게 이러한 공간은 이미 ‘경계 너머’였다.
여기에 더해, 강소성 남경 일대에서 북경으로 이어지는 고대의 광대한 호수·습지대,
즉 고우호·홍택호·미산호·동평호·광아택(발해?)·백양정으로 이어지는 수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물의 세계’였다.
이 공간은 바다가 아니라 내륙의 海가 되었다.

3. ‘海’는 미지의 공간이자, 동질성을 부정하는 장치였다
화하족은 자신과 동일한 정치·제의·문자 체계로 묶이지 않는 집단을 “보지 못하는 공간”에 배치했다.
그 공간이 바로 ‘海’였다.
이때 중요한 점은, ‘海’는 단절이 아니라 시야의 한계라는 사실이다.
화하족은 그 공간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과 같은 세계에 속하지 않는 타자로 규정했을 뿐이다.
이렇게 해서 ‘海’의 동쪽에 사는 사람들은 ‘東夷’가 된다.
동이는 단순하게 ‘동쪽 사람’이 아니라, 화하 세계가 끝나고 그 넘어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4. 황해 연안과 그 동쪽이 ‘동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황해를 직접 접하는 연안과 그 너머의 육지는, 역사적으로 동이 계통의 생활권이었다.
이 공간은 내해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화하 중심 세계에서는 해를 사이에 둔 외부로만 인식되었다.
그 결과는 분명하다.
비파형 동검은 황해 양안에 널리 분포하지만, 화하 중심 서술에서는 ‘변방 유물’로 취급된다.
고인돌 또한 요동보다 적게 분포되지만 산동·강소·절강으로 이어져 있음에도, 중원 문명 서사에서는 주변부로 밀린다.
고구리·백제·신라는 대륙에서 건국과 멸망을 겪었음에도, 그 역사 무대는 압록강 이남으로 축소된다.
이 모든 왜곡은 하나의 전제에서 출발한다.
화하족 시야를 벗어나는 평원과 함께 황해 연안의 남북으로 연결된 호수는 경계이며, 그 동쪽은 세계 밖이라는 전제다.
5. 연재 ④의 결론
‘동이’는 종족명이 될 수 없으니, 시야의 한계를 언어로 분별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海’는 바다를 말함이 아니라, 화하 세계가 닿지 못한 공간의 이름이었다.
이제 다음 회에서는 이 분별의 언어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굳어지고,
어떻게 식민사학과 결합해 오늘날까지 재생산되었는지를 정면으로 다루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