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식은 왜 가장 ‘한국적인 외식’이 되었나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믿어온 오해
짜장면은 중국 음식이 아니다. 이 문장을 처음 들으면 불편함부터 느끼는 사람이 많다. 중국집 간판에 큼지막하게 적힌
‘중화요리’라는 네 글자, 검은 춘장을 듬뿍 얹은 면, 그리고 졸업식이나 이삿날마다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그 음식이
중국 음식이 아니라니,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이 불편함은 사실 우리가 중식을 너무 오래, 너무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처럼 소비해 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짜장면은 중국 본토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 음식이다. 한국에서 우리가 아는 형태의 짜장면은 중국 산둥 지역의
‘자장미엔’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의 모습은 한국 사회의 조건 속에서 완전히 다시 만들어졌다.
짜장면을 포함한 중식이 어떻게 중국을 떠나 한국에서 살아남았고, 왜 지금은 한국 외식 문화의 핵심이 되었는지를
따라가 보려 한다. 중식은 단순한 음식 장르가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생활적인 기록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건너와 한국에서 태어난 음식
한국 중식의 출발점에는 화교 공동체가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중국 산둥 지역을 중심으로 한 화교들은
항구 도시 인천을 통해 한반도로 들어왔다. 그들은 노동자이자 상인이었고, 동시에 이방인이었다.
법과 제도는 이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고, 선택할 수 있는 생계 수단도 제한적이었다. 그중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았던 것이 음식 장사였다. 문제는 본토에서 먹던 음식을 그대로 팔 수 없었다는 점이다. 재료도 달랐고,
한국인의 입맛도 달랐다.
그래서 화교들은 타협을 선택했다. 중국 음식의 조리법을 유지하되, 한국인의 취향에 맞게 맛과 형태를 바꾸는
방식이었다. 짜장면에 설탕이 들어가고, 소스가 걸쭉해졌으며, 양파와 감자가 대거 들어간 것도 이 과정의 산물이다.
이때 중식은 ‘중국 음식’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음식’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중식은 음식이 아니라 시스템이었다.
중식이 한국에서 빠르게 확산된 이유는 맛만이 아니었다. 중식은 구조적으로 도시 생활에 최적화된 음식이었다.
불에 빠르게 볶아 대량 생산이 가능했고, 메뉴 구성이 단순해 회전율이 높았다. 무엇보다 배달에 유리했다.
국물이 있는 짬뽕, 소스가 분리되는 탕수육, 면이 불어도 감내할 수 있는 짜장면은 배달이라는 시스템과 자연스럽게
결합했다. 여기서 중식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하나의 외식 산업 모델이 되었다.
화교들이 만든 이 모델은 한국 자영업 구조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가족 단위 운영, 빠른 조리, 저렴한 가격, 그리고
배달이라는 조합은 중식을 한국에서 가장 접근성 높은 외식으로 만들었다. 중식집은 동네마다 있었고, 누구나 큰 고민 없이 주문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식은 더 이상 낯선 외국 음식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가 되었다.
중식이 한국화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식이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깊이 뿌리내린 이유는 한국 사회의 변화와 정확히 맞물려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빠르고 저렴한 식사를 필요로 했다. 집에서 요리할 시간이 줄어들수록 외식과 배달의 중요성은 커졌고, 중식은
그 공백을 메웠다.
또한 중식은 계층을 가리지 않았다. 특별한 날에는 탕수육을 시켜 나눠 먹을 수 있었고, 평범한 날에는 짜장면
한 그릇으로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중식은 사치와 일상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드문 음식이었다. 이중적 성격은 중식을 한국 사회의 감정과 기억 속에 깊게
각인시켰다. 그래서 짜장면은 단순한 메뉴가 아니라 이사, 졸업, 시험, 야근 같은 삶의 장면과 함께 떠오른다.
이런 음식은 흔치 않다. 중식은 그렇게 한국인의 기억 저장소가 되었다.
중식은 누구의 음식인가
이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짜장면은 중국 음식일까, 한국 음식일까. 아마 정답은 둘 다 아니거나,
둘 다일 것이다. 중식은 국적보다 맥락의 음식이다. 중국에서 출발했지만, 한국 사회의 조건 속에서 재구성되었고,
한국인의 생활 방식에 맞춰 진화했다. 그래서 중식은 가장 외국적인 동시에 가장 한국적인 음식이 되었다.
우리는 종종 음식의 ‘정통성’을 따진다. 하지만 중식의 역사는 정통보다 생존과 적응이 더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중식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큰 메시지는 이것일지도 모른다. 음식은 혈통이 아니라, 먹는 사람의 삶 속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중식을 다시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온 도시의 시간을 다시 보는 일과 닮아 있다. 짜장면 한 그릇에는
이방인의 분투와 한국 사회의 변화, 그리고 일상의 기억이 겹겹이 쌓여 있다. 다음번에 짜장면을 시킬 때,
그 검은 소스 안에 담긴 이야기를
한 번쯤 떠올려도 좋겠다.
중식의 역사와 음식 문화가 더 궁금하다면, 가까운 동네 중국집의 오래된 메뉴판을 유심히 살펴보거나 음식 문화
관련 아카이브를 찾아보길 권한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 속에 생각보다 많은 사회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