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의 일상이 과거를 불러오는 순간
며칠 전 블로그 이웃 ‘별꽃’님의 글을 읽다가 뜻밖의 시간 여행을 하게 되었다. 스케이트장에 다녀온 이야기 속에서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 장면은 자연스럽게 필자의 어린 시절로 이어졌다.
누군가의 오늘이, 다른 누군가의 어제를 두드리는 순간이었다. 어릴 적 골목에는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친구가 있었다. 앞바퀴 두 개, 뒷바퀴 두 개가 달린 그 신발은 당시 어린 나에겐 거의 텔레비전 속 장난감처럼 보였다.
결국 그 친구가 한 번 타보라고 내게 건네주었고, 처음 신던 날의 설렘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균형을 잡지 못해 수없이 넘어졌고, 무릎과 손바닥에는 상처가 가득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몸은 바퀴 위에 익숙해졌다.
넘어지며 균형을 배우고, 다시 일어서며 자신감을 쌓아가던 시간이었다.
몸으로 배웠던 성장의 감각
롤러스케이트에 익숙해질 즈음, 롤러브레이드라는 더 빠른 세계가 열렸다. 바퀴가 일자로 달린 신발은 훨씬 빠르고 불안정했다. 처음에는 겁이 났지만, 그 두려움을 넘어서자 바람을 가르는 감각이 찾아왔다.
속도가 붙을수록 마음까지 가벼워졌다. 어린 시절의 놀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몸으로 배우는 훈련이었다. 그 기억 위로 더 오래된 장면 하나가 겹쳐졌다.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 주신 ‘꼬챙이 썰매’다.
나무판 아래에 쇠를 덧대고, 양손에 쥘 수 있도록 꼬챙이를 만들어 준 그 썰매는 겨울이면 시냇가 위를 달리는 탈것이 되었다. 얼음 위를 찍으며 앞으로 나아갈 때, 세상에서 가장 빠른 존재가 된 것처럼 느껴지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자연이 교실이던 시절
또한 비료포대를 타고 눈 덮인 산을 미끄러져 내려오던 기억도 마찬가지다. 속도를 조절하고, 나무를 피해 내려오는 기술을 몸으로 익혔다. 그 기술을 익히기 전까지는 넘어지고 부딪히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웠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자연이었고, 교과서는 몸이었다. 지금의 아이들은 다르다. 학원과 스마트폰이 일상의 중심이 되었다.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도 있다. 몸으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세상을 배우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기억은 개인의 것이지만, 메시지는 사회의 것이다
이 추억은 개인의 향수로만 끝나지 않는다. 오늘날 아이들이 경험하는 세계는 점점 더 안전하고 관리된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만큼 실패와 시행착오, 몸으로 배우는 감각은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과연 아이들에게 무엇을 잃게 하고 있는가. 놀이는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넘어져 본 아이만이 균형을 알고, 부딪혀 본 아이만이 조심함을 안다.
꼬챙이 썰매 위에서 배운 균형과 두려움,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힘은 교과서로는 가르칠 수 없는 삶의 언어였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지금의 우리는 아이들에게, 몸으로 배우는 실패의 기회를 충분히 주고 있는가.
추억이 아니라 가치로 남아야 할 것
꼬챙이 썰매는 단순한 놀이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몸으로 배우는 인생의 연습장이었다. 빠르게 달리다 넘어지고, 다시 찍어 앞으로 나아가는 그 반복 속에서 삶의 리듬이 만들어졌다.
오늘의 아이들에게도 그런 공간은 필요하다. 안전하게 넘어질 수 있는 자리,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여지, 그리고 스스로 속도를 조절해 볼 수 있는 시간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놀이를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성장 그 자체로 다시 바라봐야 한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