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플랫폼의 검색창에 '한국의 단청(Dancheong)'을 입력해 본다. 잠시 후 화면을 채우는 것은 우리가 사찰이나 궁궐에서 보아온 그 유려하고 절제된 색감의 단청이 아니다. 붉은색이 과하게 강조된 중국풍이거나 화려함의 결이 다른 일본풍의 이미지가 뒤섞인 기묘한 결과물이다.
이는 단순한 알고리즘의 실수가 아니다. 디지털 공간 속에서 우리 문화의 형체가 타자의 시선에 의해 왜곡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서늘한 경고음이다. 인공지능이 창작의 영역까지 빠르게 확장되는 지금, 우리가 '한국적인 것'을 데이터로 정의하지 않는다면 과연 미래 세대는 무엇을 보고 한국을 기억할 것인가? 이 질문은 이제 단순한 예술적 고뇌를 넘어, 국가적 차원의 '문화적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절박한 시대적 과제로 부상했다.

소버린 AI 시대의 생존법, 'K-데이터'라는 문화적 보루와 디지털 영토
글로벌 빅테크의 알고리즘이 전 세계의 표준을 재편하는 '소버린 AI(Sovereign AI, 국가의 언어와 문화를 반영한 독자적 AI 주권)' 시대다. 데이터가 곧 국가의 주권이자 정체성이 되는 이 시대에, 과거의 영토 분쟁이 물리적 공간에서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데이터셋이라는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거대 자본과 데이터를 무장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의성을 학습하는 지금, 우리는 뼈아픈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한류가 확산되며 전 세계가 한국 문화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시대가 열렸지만, 정작 기준이 되는 데이터가 타국에 종속되어 있다면 ‘한국적’인 것을 만들고 싶어도 한국의 기준으로 표현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중국은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 데이터가 방대하고, 일본 역시 전통을 현대 콘텐츠로 축적해온 데이터셋이 매우 크다. 반면 한국은 조선왕조실록 같은 훌륭한 기록은 있지만, AI가 학습할 수 있는 시각적·현대적 데이터셋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며 그나마 있는 자료들도 아날로그 상태로 흩어져 있다. 이러한 데이터의 공백이 결국 글로벌 플랫폼 속에서 한국 문화의 왜곡과 주권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경계를 허무는 56인의 아티스트, '한국성'을 향한 도전적 정의와 실천
이러한 위기 속에서 예술적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 K(Project-K)'의 행보는 문화적 가치를 재정의하는 공론의 토대였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56명의 작가와 창작자들은 전통과 현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업을 선보였다. 현장의 한 창작자는 “이제는 장르를 나누거나 전통과 현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구분하려는 태도 자체가 무의미해졌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경계가 모호할수록 더 도전적이고 새로운 지점이 열린다는 것이다.
특히 작가들이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정의하는 '셀프 큐레이션'은 인공지능 시대에 대응하는 인간 예술가들의 주체적인 행보였다. 작가들은 알고리즘이 결코 복제할 수 없는 '결'과 '한(恨)', '흥(興)'의 정서를 공유하며, 데이터로 환산되지 않는 인간의 삶과 시대적 아픔이 투영된 가치를 지키려는 예술가들의 단호한 몸부림이었다. 이는 ‘한국적’이라는 개념이 누군가의 좁은 기준에 갇히지 않고 각자의 정의로 존중받아야 함을 역설한다.
전통 장인과 IT의 공조, 3단계 AX 전략으로 여는 미래의 헤리티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단순히 과거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기준을 정교한 데이터로 남겨 미래 세대와 기술로 확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제시된 3단계 AX(AI Transformation, 인공지능 전환) 전략은 문화 주권 확보를 위한 핵심 로드맵이다.
1단계는 전승자나 장인에게 흩어진 방대한 아날로그 데이터를 AI가 활용 가능한 형태로 표준화하는 '디지털 자산화'다. 2단계는 구축된 데이터셋을 글로벌 AI 플랫폼에 제공하여 전 세계 사용자가 한국적인 것을 요청했을 때 실제 한국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결과물이 나오도록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것이다. 마지막 3단계는 기술자와 전통 장인이 협업하여 기준을 정립하는 ‘전통 특화 AI’ 개발이다. 이 거대한 국가 단위 프로젝트는 단일 부처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유산청 등 범부처 간의 강력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결국 AI 시대에 한국적인 것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 영혼의 등대를 세우는 일과 같다. 기술의 진보가 문화의 색채를 흐릿하게 만드는 시대일수록 우리만의 ‘문화적 서사’와 ‘정체성의 확립’은 국가적 생존 전략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데이터로 정의하지 않는다면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은 타국의 시선으로 우리를 규정해버릴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격언은 이제 감성적인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교하게 구조화된 '데이터 주권'이라는 무기를 가질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56인의 아티스트가 던진 화두는 AI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미래 유산(Heritage)을 어떻게 열어갈 것인지 묻고 있다.
칼럼니스트의 시선
이번 '프로젝트 K'는 단순히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보여준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거대 자본과 데이터를 무장한 글로벌 AI라는 파도 앞에서 우리 문화의 원형을 잃지 않으려는 절박한 '문화적 독립선언'이다. 특히 인공지능이 단청을 오염시키는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데이터가 곧 권력인 시대에 우리가 침묵한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중국풍 단청'을 한국의 것이라 믿으며 자라날지도 모른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창작자들은 이 3단계 AX 전략을 국가적 아젠다로 설정하고 즉각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문화적 주권이 없는 기술 강국은 모래 위에 세운 성과 같기 때문이다.
독자를 위한 행동 촉구
인식의 전환: 우리 주변의 전통문화가 디지털 데이터로 어떻게 변환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문화적 소비의 자각: 글로벌 AI 플랫폼을 사용할 때 생성된 결과물이 우리 문화의 원형과 맞는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정책적 지지: 정부의 '디지털 헤리티지' 및 'K-데이터' 구축 사업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라. 우리 고유의 데이터를 지키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