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모두 중력에 굴복하는 순간을 맞는다
인생을 살다 보면 예고 없이 무릎이 꺾이는 순간이 찾아온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사업이 고꾸라지거나, 믿었던 관계가 깨어지거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때, 우리는 속절없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중력을 거스르며 위로만 향하려 했던 우리의 자존심은 산산조각이 나고, 깊은 절망의 심연이 입을 벌린다.
히브리어 알파벳 열네 번째 글자인 '눈(נ)'은 바로 이 ‘넘어짐의 고통’을 가장 정직하게 마주하는 글자다. 알파벳 순서상으로도 '멤(물)'의 깊은 심연을 지나온 영혼이 맞닥뜨리는 현실적 시련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 아픈 글자 속에, 당신이 상상하지 못했던 가장 강력한 신의 위로와 회복의 역설이 숨겨져 있다면 믿겠는가? '눈(נ)'은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의 넘어짐은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신이 당신을 잠시 내려놓은 ‘거룩한 멈춤’이다."
시편 145편의 '사라진 구절' 미스터리
'눈(נ)'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성경 시편 145편에 숨겨져 있다. 이 시편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대로 시작하는 '답관체(Acrostic)' 형식을 따른다. 알레프(א)부터 타브(ת)까지 차례대로 찬양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눈(נ)'으로 시작해야 할 구절이 빠져 있다. 멤(מ) 다음 구절이 눈(נ)을 건너뛰고 사멕(ס)으로 이어진다.
왜 시편 기자는 의도적으로 '눈'을 삭제했을까? 유대 전승인 탈무드에 따르면, '눈(נ)'으로 시작하는 가장 대표적인 단어가 바로 '추락, 넘어짐'을 뜻하는 '네필라(נְפִילָה, Nefilah)'이기 때문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차마 입에 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그다음 구절인 '싸메크(ס)'에 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הַנֹּפְלִים, han-noplim)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시 145:14). 기자는 '넘어짐(눈)' 자체를 언급하는 것은 피했지만, 바로 다음 순간 하나님이 그 넘어지는 자를 즉시 붙들어주신다는 것을 선포함으로써, 추락의 고통을 회복의 희망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눈'의 역설이다. 넘어짐의 순간은 삭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붙드심 속에 감추어져 있다.

구부러진 무릎에서 곧은 기상으로
'눈'은 형태적으로도 깊은 의미를 가진다. 이 '눈'이라는 글자는 마치 스테이플러 심과 같은 구부러진 모양과 아래로 길게 뻗은 듯한 두 가지 모양이 있다.
구부러진 눈(נ)은 단어의 시작이나 중간에 쓰일 때의 모습이다. 마치 사람이 겸손하게 허리를 굽히거나, 혹은 고통에 겨워 무릎을 꿇고 있는 형상이다. 이것은 '현재의 고난'과 '겸손한 항복'을 상징한다. 씨앗이 땅속에 묻혀 웅크리고 있는 상태와 같다. 곧게 뻗은 눈(ן, Final Nun)은 '꼬리형'이라고도 한다. 단어의 끝에 올 때, 눈은 땅 밑으로 길게 뻗은 곧은 직선의 형태가 된다. 이것은 구부러졌던 존재가 마침내 땅을 박차고 '곧게 일어선 상태', 즉 '최종적인 승리와 부활'을 상징한다.
신학적 관점에서 '눈(נ)'의 시간은 필수적이다. 자신의 힘으로 서 있으려는 교만이 꺾이고(구부러진 눈), 철저히 바닥을 경험한 자만이 자기 힘이 아닌 신의 능력으로 곧게 서는 법(곧은 눈)을 배우기 때문이다. 인문학적으로 이것은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근원이다. 바닥을 쳐본 사람만이 바닥을 디딤돌 삼아 튀어 오를 수 있다.
추락은 비상을 위한 도움닫기다
우리는 넘어짐을 '끝'이라고 생각한다.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이라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눈(נ)'의 지혜는 정반대를 말한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자. 높이뛰기 선수가 가장 높이 도약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무릎을 굽히는 것이다. '개구리는 멀리 뛰기 위해 움츠린다'는 말도 있다. '눈(נ)'처럼 구부러지는 순간이 없으면, 강력한 도약도 없다.
'알레프'(א)가 황소의 뿔을 상징하는 것처럼 '눈'(נ)은 '물고기'를 상징하고, 고대 히브리 문화에서 '물고기'는 생명력, 번식력, 그리고 하나님의 공급을 상징한다.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실패와 좌절은 당신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 안에 잠재된 더 큰 생명력을 폭발시키기 위한 도움닫기 과정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넘어뜨리는 분이 아니라, 당신이 넘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아시고 당신 밑에 '쿠션'을 깔아두시는 분이다. 당신이 바닥이라고 느끼는 그곳이 사실은 하나님의 손바닥이다. 그러므로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눈'(נ)의 단계를 통과하지 않은 부활은 없다.
당신은 넘어진 것이 아니라, 심겨진 것이다
히브리어 열네 번째 글자 '눈(נ)'은 우리에게 위대한 관점의 전환을 선물한다. "지금 어둡고 답답한 흙 속에 묻혀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넘어진 것이 아니라, 심겨진 것이다."
구부러진 '눈(נ)'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때가 이르면 당신은 반드시 땅을 뚫고 나와 곧은 '눈(ן)'의 모습으로 찬란하게 서게 될 것이다. 숫자 50을 상징하는 '눈'은 7번의 안식년을 일곱 번 반복한(7x7=49) 후 찾아오는 완전한 해방의 해, '희년(Jubilee)'의 숫자다. 49번 넘어져도 50번째 일으키시는 것이 신의 계산법이다.
당신의 무릎이 꺾여 있다면, 바로 그 자리가 성지(聖地)다. 절망의 바닥에서 당신을 떠받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길을 느껴보라. 넘어진 자리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겸손의 지혜를 배우라. 그리고 믿으라. 구부러진 당신을 곧게 펴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지금 가장 분주하게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