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 중동의 고요한 새벽, 미나렛에서 울려 퍼지는 아잔 소리가 공기 중의 습기마저 정화하는 듯한 순간이었다. 곁에 있던 이맘이 나직이 읊조렸다. "인간의 마음은 메마른 대지와 같아서, 알라의 숨결(Ruh)이 닿지 않으면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네." 그가 말한 '루흐(Ruh)'는 단순한 공기의 흐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깨워 창조주에게로 인도하는 가장 신비로운 신의 도구였다.
중동의 척박한 땅에서 기독교인으로 살며, 나는 인간이 어떻게 신의 뜻을 깨닫고, 그분의 영감을 입는지에 대한 두 개의 장엄한 강줄기를 목격했다. 이슬람의 천사 가브리엘로 상징되는 ‘거룩한 영(루흐 알 꾸두스)’을 통해 신의 의지를 명확히 전달받는 방식이라면, 기독교는 믿는 자의 내면에 직접 거하시는 ‘성령(Holy Spirit)’을 통해 신과 인격적으로 연합하는 방식이다. 보이지 않는 신의 숨결이 어떻게 인간의 유한한 언어와 삶 속에 깃드는지, 그 영적인 신비의 지형도를 함께 그려나가 본다.
신의 숨결은 어떻게 내려오는가: ‘전달된 지혜’와 ‘함께 걷는 지혜’
이슬람 신학에서 영적 영감의 핵심은 ‘와히(Wahy, 계시)’와 ‘일함(Ilham, 직관적 영감)’으로 나뉜다. 여기서 ‘루흐 알 꾸두스(Ruh al-Qudus, 거룩한 영)’는 대개, 천사 가브리엘을 지칭한다. 이슬람에 이 영적 존재는 신과 인간 사이의 거룩한 ‘전령’이다. 신의 말씀이 일점일획의 오차 없이 인간에게 전달되도록 돕는 수호자이자 전달자인 셈이다. 이슬람의 관점에서 영적 영감이란 신이 인간의 영혼에 직접 내려주시는 ‘빛’이며, 이는 인간이 스스로 도달할 수 없는 진리에 눈뜨게 하는 신적 개입이다. 무슬림들은 이 영감을 통해 꾸란의 진리를 확신하며, 매일의 삶 속에서 신의 뜻을 분별할 힘을 얻는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인간의 가슴에 닿을 때… ‘전달된 계시’와 ‘함께하는 임재’의 평행이론
기독교의 관점에서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 격으로,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천사를 넘어선다. 성령은 ‘파라클레토스(Parakletos, 보혜사)’, 즉, 곁에서 돕고 위로하며 가르치는 분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영적 영감은 외부로부터 오는 소식이라기보다, 내면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비추는 ‘조명(Illumination)’의 역사다. 성경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이슬람이 신의 ‘명령’을 전달받는 영감에 집중한다면, 기독교는 신의 ‘성품’과 ‘임재’를 경험하는 영감에 집중한다. 이는 인간의 전 인격을 변화시켜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는 거룩한 동력이다.
빛으로 빚은 메신저와 불로 임한 보혜사: 영적 주체의 정체성
이슬람의 ‘거룩한 영’은 철저히 피조물이다. 비록 가장 고귀한 빛으로 창조되었으나, 그는 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종일 뿐이다. 꾸란은 예수를 포함한 예언자들이 이 ‘거룩한 영’에 의해 강화되었다고 증언한다. 무슬림들에게 영적 영감은 인간의 마음속에 ‘확신’과 ‘평온(사키나)’을 가져다주는 신의 선물이다. 그들에게 영감이란 신의 법도(샤리아)를 더 잘 이해하고 실천하게 하는 도덕적, 영적 동력이다. 이는 신의 ‘타우히드(유일성)’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거룩한 소통이다. 영적 주체는 신의 보좌에서 내려와 인간의 의식을 깨우고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수직적 운동을 반복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령은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 그분 자신이다. 오순절 다락방에 불의 혀처럼 임했던 성령은, 이제 모든 믿는 자의 몸을 ‘성전’ 삼아 내주하신다. 복음주의자들에게 영적 영감이란 나의 자아가 죽고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시는 ‘생명의 흐름’이다. 성령은 성경 기록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진리를 기록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신자들에게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최고의 스승’이기도 하다. 이슬람의 영감이 신의 ‘의지’를 비추는 등불이라면, 기독교의 영감은 신의 ‘생명’을 수혈하는 혈관과 같다. 영적 주체는 신자 안에 영구히 거하며 일상의 모든 순간을 거룩함으로 물들인다.
내면의 직관 ‘일함’과 성령의 ‘인도하심’: 일상을 깨우는 영감
일반적으로 무슬림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일함(Ilham)’에 귀를 기울인다. 이는 정직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에게 신이 주시는 ‘영적 직관’이다. "내 마음속에 빛이 들어왔다"라는 고백은, 신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영감은 일상의 사소한 선택조차 알라의 뜻에 합당하게 조율하려는 치열한 경건의 산물이다. 영적 존재들은 보이지 않지만, 무슬림의 등 뒤에서 그들의 발걸음을 지탱하는 든든한 파수꾼들이다. 특히, 위기나 환난의 순간에 임하는 ‘사키나’ 즉, 평혼은 두려움을 몰아내고 신뢰를 회복하게 한다고 믿는다.
기독교의 현장은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역동적인 서사로 가득하다. 일생, 삶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세밀한 음성을 듣는다. 이는 단순히 예언적 환상을 보는 것을 넘어, 고난 속에서 기뻐할 힘을 얻고,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받는 ‘기적의 현장’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영적 영감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사랑, 희락, 화평 등)를 통해 증명된다. 이슬람의 영감이 신의 ‘질서’ 속에 머물게 하는 힘이라면, 기독교의 영감은 신의 ‘사랑’을 향해 질주하게 하는 엔진이다. 성령의 감동은 때로 합리적 판단을 넘어서는 담대함과 평강을 통해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나타난다.
결국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인도’와 ‘임재’ 사이에서
오늘 우리는 두 종교가 말하는 영적 영감의 본질을 반추해 보았다. 결국, 신이 우리에게 숨결을 불어 넣으시는 이유는, 인간이 흙으로 빚어진 존재임을 넘어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게 하려는 자상한 배려다. 이슬람의 '루흐 알 꾸두스'와 기독교의 '성령'은 각기 다른 교리적 체계 안에 있지만, 인간의 영혼이 신의 터치 없이는 결코 온전해질 수 없다는 지고한 진리를 공유한다.
이슬람의 '루흐 알 꾸두스'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신의 말씀에 대한 ‘경외와 복종’이다. 기독교의 성령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신과의 ‘친밀함과 변화’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볼 수 없지만, 흔들리는 잎사귀를 통해 바람의 존재를 안다. 우리의 삶이라는 나무는 지금 누구의 숨결에 흔들리고 있는가? 신의 영감이 닿는 곳마다 메마른 심령에는 생명의 싹이 돋고, 닫힌 마음에는 하늘의 문이 열린다. 성경은 우리의 영혼이 오늘 그 거룩한 숨결에 닿아, 이 땅에서 하늘의 꿈을 꾸는 ‘거룩한 나그네’가 될 수 있음을 되기를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