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마다 피어나는 우리 꽃의 향연… 국립한국자생식물원에서 만나는 생명의 기록
강원도 평창의 고요한 산자락에는 계절의 흐름을 따라 생명이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이 있다.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이다. 이곳은 단순한 관람형 수목원이 아니라, 한국 자생식물이 살아온 시간과 환경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생태 아카이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봄이 오면 노루귀와 동자꽃이 가장 먼저 숲의 기척을 알린다. 여름에는 개병풍과 산딸나무가 잎과 꽃을 넓게 펼치며 생장기를 맞이한다. 가을에는 산국과 단풍나무가 식물원의 풍경을 채우고, 겨울에는 눈 속에서도 생명을 이어가는 자생식물이 또 다른 계절의 표정을 완성한다. 이처럼 식물원은 사계절의 변화 자체가 하나의 전시이자 교육 콘텐츠로 기능한다.
이곳에서 만나는 자생식물의 중심에는 우리 땅에서 스스로 뿌리내린 야생화들이 있다. 단양 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단양쑥부쟁이는 가을을 대표하는 종으로,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분류되어 있다. 개체 수는 많지 않지만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는 특성 덕분에 보전 가치와 생태적 의미가 동시에 주목받고 있다. 비안의언덕 야생화 재배단지에 형성된 벌개미취 군락 역시 식물원을 상징하는 풍경으로, 매년 가을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공간이다. 이른 봄 희귀식물원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깽깽이풀은 작은 꽃잎 안에 자생식물의 섬세한 생명력을 담고 있다.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의 현재는 민간 운영 시절의 축적된 경험 위에 세워졌다. 이 식물원은 20여 년간 사립 수목원으로 운영되다가 2021년 산림청에 기부채납되며 국립기관으로 전환됐다. 민간 차원에서 이어지던 보존 활동이 국가 차원의 관리 체계로 편입되면서 연구·관리 기능이 한층 강화됐다. 이후 이곳은 자생식물 보존과 복원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하며 생물다양성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멸종위기 식물 보존을 위한 역할이 두드러진다. 환경부가 지정한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서, 자연 서식지에서 보존이 어려운 식물을 대상으로 증식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서식지 파괴와 무분별한 채취로 위기에 놓인 식물을 안전한 환경에서 보전한 뒤, 장기적으로는 자생지 복원을 목표로 한다.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은 2004년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지정된 이후 생육 환경 조사와 증식 연구를 지속해왔다.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 역시 식물원의 중요한 기능이다. 식물의 생활사를 이해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압화를 활용한 체험을 통해 식물의 구조와 변화를 직접 살펴볼 수 있다. 도자기와 식물을 결합한 화분 제작 과정은 자연과 예술의 접점을 경험하게 한다. 향기를 중심으로 식물을 기억하는 수업, 자생식물의 형태를 관찰하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활동도 운영 중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관람객이 식물을 지식이 아닌 경험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은 전시 공간을 넘어, 한국 자생식물의 생명력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현장형 교과서다. 평창의 자연 속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은 생태 보전과 인간 공존의 필요성을 조용히 전하고 있다. 이곳이 앞으로도 한국 생태유산을 지키는 기반으로 기능하길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은 자생식물 보존, 멸종위기종 관리, 체험형 교육을 아우르는 국가 생태 거점이다. 사계절 전시와 연구 기능의 결합을 통해 생물다양성 보전 인식을 확산하는 효과가 있다.
자생식물은 지역의 역사이자 생태의 기록이다.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은 그 기록을 현재형으로 보존하며, 자연과 인간의 지속 가능한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