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는 날이 다가오자 그동안 인연이 있던 직장 동료들의 안부 인사가 잦아졌습니다.
얼굴 보며 밥 한 끼 먹고 싶다고 일부러 멀리서 다녀가는 사람도 있고, 사무실이나 집 근처로 찾아오거나 전화로 작별 인사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나’를 기억하고 안부를 묻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작별 인사라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헤어질 때는 오로지 진심만이 남아있을 테니까요.
혹 그런 사람이 서너 명에 불과하더라도 제가 지나온 시간이 의미 있었다는 증거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중에서도 여운이 오래 남는 작별 인사가 있습니다.
퇴직을 보름 앞두고 C가 휴가를 내어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제가 식물을 좋아하는 것을 잊지 않았는지 그의 손에는 작고 예쁜 화분이 들려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한참을 깔깔 웃으며 담소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우리 관계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같이 근무했지?”
“음. 3개월이요.”
“뭐. 고작 3개월이라고. 그런데 이렇게 편하게 웃고 있어?”
3개월이면 서로 알아갈 틈도 없었을 텐데, C는 금쪽같은 휴가를 내고, 애써 고른 화분을 들고 작별 인사를 나누려 찾아온 것입니다.
또 다른 특별한 작별 인사도 있습니다.
퇴직한 지 2년이 지난 S가 전화를 걸어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도 가끔 S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일부러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의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사무실에서 인정받는 직원이었지만, 오래 기다려왔던 임신에 성공하여 어쩔 수 없이 1년도 못 채우고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S는 꼭 만나서 인사하고 싶은데, 둘째 아이 출산일이 임박해서 집 밖을 못 나간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안부를 묻고 퇴직을 축하하는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후 더 기뻤습니다.
통화 중에 S는 남편이 먼저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권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저에 대해 무슨 말을 했기에 남편이 그런 말을 했을까 싶으니 기분이 삼삼해졌기 때문입니다.
S도 C처럼 저와 함께 근무한 시간보다 떨어져 있던 시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그런데도 진심이 느껴지는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어 매우 행복했습니다.
두 사람이 다녀간 후 자연스레 이들과의 관계를 돌아보았습니다.
‘함께 일한 시간은 한 뼘 남짓으로 짧았는데 이들은 왜 나를 기억하고 찾아온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는 밋밋한 관계입니다.
함께 밥을 먹는 것은 고사하고 커피를 같이 마신 기억도 안 나니 말입니다.
어렵사리 짚이는 점을 찾기는 했지만 그게 정답인지는 지금까지도 자신이 없습니다.
계약직이었던 C 에게는 정규직 채용에 도전해도 좋겠다는 말을 두어 번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뿐입니다.
S와도 특별한 추억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S가 여러 번의 실패를 겪고 임신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저는 편의점에서 파는 값싼 초콜릿을 그의 책상에 슬며시 놓아둔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복도에서 만났을 때 힘들면 눈치 보지 말고 쉬어도 괜찮다는 말을 딱 한 번 건넸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리 탈탈 털어도 생각나는 일이라곤 정말 이것뿐입니다.
제 추측이 맞다면 C와 S는 아주 작은 ‘친절’을 마음 깊숙이 담아두었나 봅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나서 그 마음을 꺼내 들고 찾아온 것이겠고요.
저는 스치듯 했던 가벼운 말 한마디를 반짝이는 보석으로 되돌려 받았습니다.
기쁨의 보석, 행복 말이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회사를 여러 번 구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심히 일한 성과를 기억하고 찾아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직장에서 탁월한 성과나 역량만을 쫓았던 저의 당당했던 모습이 철 지난 허수아비처럼 초라해졌습니다.
반면에 투박하게 표현했던 작은 관심과 친절은 저를 기억하고 위로하는 기쁨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를 기억하는 실체는 조직과 실적이 아니고 사람과 친절이었습니다.
이런 소박하고 경이로운 사실을 퇴직 때가 되어서야 깨달았으니 저는 늦어도 너무 늦은 셈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C와 S의 진심어린 작별 인사로 만족합니다.
그리고 독자님들과 후배들은 저보다 더 빨리 알아챌 테니까요.
작은 친절이 삶의 의미로 되돌아왔습니다.
K People Focus 김황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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