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바니아의 에디 라마 총리는 이스라엘 의회를 방문하여 ‘가자’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국제 평화 유지 활동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했다. 그는 이번 연설에서 튀르키예 및 아랍 국가들과 협력하여 ‘가자’의 평화 구축 업무를 수행할 것임을 강조했다. 알바니아 의회는 이미 미국의 제안에 따라, 가자 평화위원회 합의안을 공식적으로 승인한 상태다. 라마 총리는 과거 나치 점령기 당시 유대인들을 보호했던 역사를 언급하며 이스라엘과의 역사적 유대감을 환기시켰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아랍권 및 튀르키예와의 외교적 관계를 동시에 강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스라엘 의회서 튀르키예를 ‘형제’라 부르다... 알바니아의 숨겨진 역사와 평화의 중재자 모델
전쟁의 포성과 복수의 외침이 끊이지 않는 중동의 지정학적 무대, 그 중심인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에서 최근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그 주인공은 발칸 반도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의 에디 라마 총리였다. 그가 연단에 올라 쏟아낸 말들은 단순히 외교적인 덕담 수준을 넘어, 수십 년간 이 지역을 짓눌러온 경직된 동맹 구도를 뒤흔드는 대담한 승부수였다. 오랜 적대감이 지배하는 장소에서 가장 민감한 국가의 이름을 '친구' 목록에 올리고, 잊힌 역사의 조각을 꺼내어 현재의 평화를 위한 무기로 삼은 그의 연설. 오늘 우리는 그날의 충격적인 순간을 복기하며, 라마 총리가 이스라엘의 심장부에서 꺼내든 세 가지 외교적 카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놀라운 사실들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한다.
적의 안방에서 터트린 ‘튀르키예’라는 시한폭탄
라마 총리가 이스라엘 크네세트 연단에 선 순간, 장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는 차분한 어조로 알바니아가 이스라엘은 물론 여러 아랍 국가와도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음을 강조했다.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외교적 수사였다. 하지만 청중의 숨을 멈추게 한 것은 그 직후, 마치 작심한 듯 터져 나온 한마디였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여기에 튀르키예도 추가합시다."
이 발언의 무게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튀르키예와 이스라엘.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 지도자들 사이에 오갔던 날 선 독설과 상호 비방의 역사를 고려할 때, 이스라엘 의회의 심장부에서 튀르키예를 '형제'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외교적 금기를 깨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이는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알바니아가 이 지역의 고질적인 이분법적 갈등을 넘어서겠다는 명확한 의지 표명이었다. 라마 총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는 이 관계들을 깊게 만들고자 하며, 가자 지구의 미래 국제 안정군에 아랍, 튀르키예 그리고 다른 형제들과 함께 참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대립각을 세우는 국가들을 '형제'라 칭하며 가자 지구의 평화 유지군 구성에 그들 모두를 포함시키겠다는 대담한 구상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적과 아군을 명확히 나누는 기존의 중동 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새로운 평화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홀로코스트 속에서 빛난 '베사(Besa)'의 정신
그렇다면 작은 나라 알바니아의 총리가 어떻게 이런 대담한 발언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자신감의 원천은 바로 알바니아만이 가진 독특하고도 숭고한 역사에 있다. 라마 총리는 연설에서 이 잊혀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끄집어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전보다 더 많은 유대인을 영토에 보유하게 된 유일한 국가, 그것이 바로 알바니아입니다."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악의 비극 속에서, 나치의 칼날이 전 유럽을 휩쓸 때, 알바니아인들은 종교를 넘어선 환대의 정신인 '베사(Besa: 맹세, 약속)'에 따라 자국민과 피난민을 가리지 않고 모든 유대인을 보호했다. 이슬람 국가인 알바니아가 유대인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낸 이 기적 같은 역사는 오늘날 라마 총리가 이스라엘 의회에 서서, 그들의 적대국까지도 친구로 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도덕적 권위이자 신뢰의 자산이다. 이는 그 어떤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도 살 수 없는, 알바니아만이 가진 가장 강력한 외교 무기인 셈이다.
평화의 중재자를 향한 포부: 가자 지구의 눈물을 닦아줄 '새로운 가교'
라마 총리의 이스라엘 방문은 시기적으로도 매우 공교로웠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제안으로 구성된 '가자 평화 위원회'에 알바니아 의회가 참여를 승인한 직후 이루어진 행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알바니아의 외교가 단순히 눈앞의 실리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가치와 평화를 지향하는 '가치 기반 외교'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이 위원회를 통해 알바니아가 "가자 주민과 이 지역 전체를 위한 새로운 희망과 번영을 제공하는 임무"에 이바지하고자 한다고 천명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개입 의지는 단순히 국제 사회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제스처가 아니다. 그것은 유대인을 품었던 역사적 자부심(2번)과 이스라엘, 아랍, 터키를 모두 아우르는 현재의 포용적 외교 정책(1번)이 결합되어 탄생한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알바니아는 자신들의 독특한 위치와 역사를 활용해, 갈등의 골이 깊은 이 지역에서 진정한 평화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드러낸 것이다.
작은 거인의 외침, 중동의 닫힌 문을 열 수 있을까?
알바니아 총리가 적의 심장부에서 터키를 친구로 부르고,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상기시키며 가자 지구 평화의 중재자를 자임한 이 일련의 과정은 고도로 계산된 하나의 정교한 외교 전략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도덕적 권위와 중립적 위치를 무기 삼아, 진영 논리에 갇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중동의 경직된 질서에 파열음을 내고자 했다.
작은 국가의 대담한 외침. 이것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용기 있는 행동을 넘어,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 속에서,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를 형제로 부르는 진정한 용기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알바니아의 이 독특하고도 실험적인 외교 행보가 얼어붙은 중동의 땅에 새로운 평화의 싹을 틔울 수 있을지, 이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