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 책 수백만 권 ‘스캔’ 뒤에 숨겨진 ‘프로젝트 파나마’의 실체

비밀 작전명 ‘파나마’, 실물 도서 수백만 권을 절단기에 넣은 이유

법원은 ‘스캔’에 손 들어줬지만, ‘해적판’에 무릎 꿇었다

메타(Meta) 역시 같은 늪에… AI 업계에 불어닥친 ‘데이터 정화’ 바람

이미지=워싱턴 포스트, 엔트로픽의 마나마 프로젝트

 

인공지능(AI) 업계의 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단순히 인터넷의 데이터를 긁어모으던 시대는 끝났다. 생성형 AI '클로드(Claude)'의 개발사 앤트로픽이 AI 학습을 위해 수백만 권의 실물 도서를 구매한 뒤 스캔해서 데이타베이스를 구축한 사건이다. 이른바 '프로젝트 파나마'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어 저작권자들에게 소송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합법적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사용한 불법 데이터셋의 꼬리가 밟히며 15억 달러(한화 약 2조 1,365억 원)라는 천문학적인 합의금을 지불하게 되었다.

 

비밀 작전명 ‘파나마’, 실물 도서 수백만 권을 절단기에 넣은 이유

 

워싱턴포스트가 입수한 법원 서류에 따르면, 앤트로픽은 2024년 초부터 '프로젝트 파나마'를 극비리에 수행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전 세계에 존재하는 지식의 정수인 도서들을 '합법적'으로 확보하여 AI에게 주입하는 것이었다. 내부 문서에는 "전 세계 모든 책을 파괴적으로 스캔하려는 우리의 노력"이라는 파격적인 문구와 함께, 해당 프로젝트가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앤트로픽은 이 거대한 작업을 위해 과거 '구글 북스'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던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인물, 톰 터비를 영입했다. 수천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해 약 1년 동안 50만 권에서 200만 권에 달하는 서적을 시중에서 직접 구매했다. 단순히 책을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압식 절단기로 책등을 잘라낸 뒤 고속 스캐너를 통해 디지털화하는 '파괴적 스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저작권자가 제기할 수 있는 '무단 복제' 프레임에서 벗어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확보한 실물 자산을 학습에 활용했다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고도의 법적 전략이었다.

 

법원은 ‘스캔’에 손 들어줬지만, ‘해적판’에 무릎 꿇었다

 

이러한 앤트로픽의 전략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작가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윌리엄 알섭 판사는 실물 도서를 구매해 스캔한 행위가 '공정 사용(Fair Use)'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I 모델이 기존 자료를 그대로 복제해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 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변혁적 방식으로 학습에 활용한 것은 교육적 가치와 유사하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앤트로픽의 발목을 잡은 것은 '과거의 원죄'였다. 공동 창립자인 벤 맨이 2021년경 '리브젠(LibGen)'이나 '해적 도서관 미러'와 같은 명백한 불법 저작권 침해 사이트에서 소설 등 방대한 데이터를 대량으로 다운로드한 정황이 밝혀진 것이다. 특히 내부 직원들끼리 불법 사이트 링크를 공유하며 "딱 맞춰 나왔다"라고 기뻐하는 메신저 대화 내용은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결국 앤트로픽은 법정 싸움을 이어가는 대신, 출판사와 저자들에게 15억 달러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합의금을 지급하고 소송을 종결하기로 했다.

 

메타(Meta) 역시 같은 늪에… AI 업계에 불어닥친 ‘데이터 정화’ 바람

 

이번 사태는 비단 앤트로픽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크 저커버그가 이끄는 메타 역시 '라마(Llama)' 학습 과정에서 불법 복제 데이터셋인 '북 3(Books3)'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메타 내부에서도 직원들이 저작권 위반 우려를 표명했으나, 경영진의 승인 아래 학습이 강행되었다는 내부 메일이 공개되며 도덕성 논란에 휩싸였다.

 

법조계와 전문가들은 이번 앤트로픽의 사례가 AI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코넬 공과대학의 제임스 그리멜만 교수는 앤트로픽이 실물 서적을 직접 구매해 스캔한 결정을 "매우 현명한 법적 방어막"이었다고 평했다. 이는 저작권자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기술 혁신을 이루려는 노력을 증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더 이상 공공재가 아니다." 앤트로픽의 2조 원대 합의는 AI 산업의 '무법지대'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선언하는 신호탄이다.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던 저작권 경시 풍조는 이제 막대한 금융적 리스크로 돌아오고 있다. 향후 오픈AI, 구글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소송 결과 역시 앤트로픽의 선례를 따를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기술적 진보와 윤리적 책임의 공존만이 AI 산업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명인자 칼럼리스트 기자 88hagee@gmail.com
작성 2026.01.30 10:54 수정 2026.01.3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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