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25일 베트남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직을 수행하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공무출장 중 심근경색으로 순직했 다. 이해찬 전 총리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후보를 각각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핵심참모 또는 특등공신 중 한 사람으로서 만년야당이나 마찬가지였던 민주당을 여당으로 만든데 이어 교대로 집권하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혁혁한 업적으로 그는 7선 의원, 교육부장관, 책임총리, 민 주당 당대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 고위공직을 두 루두루 맡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현직 대통령이 빈소로 찾아와 직접 조문했다.
필자는 대학시절 학우였던 이해찬 전 총리와 정동영 통일부 장관 등과 함께 또는 적어도 따로따로 만나 남북신뢰와 상시교류 등에 관해 자연스럽고 허심탄회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 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평화통일이라는 마지막 꿈을 이루고자 투병 중에도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큰 경륜을 미처 펼치지 못한 채 별세했다. 너무나도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이승에서는 그 누구도 그를 만날 수 없다. 삶과 죽음이 갖는 엄청난 의미를 새삼스럽게 무겁게 느끼면서 홀연히 이승을 떠난 영 원한 벗님 고 ‘이해찬’ 전 총리께서 평온하신 영면에 드시어 고문 없는 자유로운 세상에서 명복을 누리시길 기원한다.
하지만, 그의 별세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개개인 한 사람으로 서의 대등한 죽음과 달리 여러 가지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에 그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남긴 유산과 그 세대의 역할을 되돌아보고 한다.
당시 대학 2학년생이었던 이해찬 전 총리는 1973년 10월 2일 대 학가에서 최초로 발생한 대규모 반유신민주화투쟁이라고 평가받는 서울대 문리대 학내 시위에 적극 동참했다. 1974년 4월 3일에는 반국가세력의 배후조정 아래 자생적 빨갱이들이 국가변란을 획책했 다고 유신정권이 엄청나게 부풀리고 조작한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 되어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했지만, 비상고등군법 회의가 10년으로 감형했다. 대전교도소에서 필자를 비롯한 충남이고향인 동지들과 함께 갇혀 있다가 1975년 2월 중순 석방되었다.
이런 연고로 그때부터 87년 6월 항쟁까지 우리는 이심전심으로 서로 이해하고 아껴주던 특별한 사이였다. 예컨대 노동현장에 근무 했던 나를 가장 열렬하게 지지하고 응원했던 벗이었고, 6월 항쟁 이후 소신에 따라 각각 하는 일이 달라졌지만, 그 어디에서 그 무 엇을 하든 우리는 화이부동 정신을 지켜왔다.
이제 켜켜이 쌓여있는 고운 정 미운 정을 모두 내려놓고 그가 홀 연히 이승을 떴다. 여기저기서 추모와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은 한 인간이 걸어왔던 길을 평가하기에는 너무 빠르고 적절하 지 않다. 하지만, 살아서도 그는 청렴성과 실천력을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고위공직자였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므로 역사는 그가 평 생을 민주화 운동과 정치 일선에 바친 상징적 인물 가운데 한 사람 이라고 기록할 것이 틀림없다.
민청학련동지회(상임대표 강창일, 공동대표 최철·임상우)도 비교적 빠른 지난 월요일(1.26) “이해찬 동지, 이제 편히 쉬시오”라고 전 하는 추도사(첨부1 참조)를 통해 회원이기도 한 그가 우리나라 민 주화 등에 남긴 업적을 기렸다. 다음날(1.27) 낮 4시쯤에는 전·현직 고위공직자 등 회원 약 20명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가 영전 앞에서 조의를 표하고, 가족을 위로했다.
이들은 독재시절 불법체포, 고문, 수배, 제적 등 극심한 탄압을 겪 으면서도 민주화와 평화통일, 시민사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모 두 고희를 훌쩍 넘겼고, 몇몇은 팔순까지 넘긴 이들 성명이나 관직 또는 소속단체와 직위 등은 나열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아직도 상 당수는 시민사회운동 현장에서 시대적 소명의식에 따라 이런저런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도 영전 앞에서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각각 자기 일생과 우리나라 역사를 성찰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아래와 같은 함의를 갖는다.
첫째, 민주화 세대의 경험과 가치가 여전히 시민사회와 정치에 영 향을 미치고 있다. 7∼80년대 민주화운동 세대 가운데 상당수가 고 위공직자를 역임했음에도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동지회원과 활동가 들이 여전히 시민사회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은 민주화 가 이미 완성된 단순한 과거유산이 아니라 그 정신에 따른 실천이 현재진행형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윤석열 친위쿠데타가 일깨워 준 것처럼 민주화 정착과 발전 등은 개인의 헌신과 집단적 연대, 그리고 제도적 변화가 맞물릴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제 우리는 민주화 세대의 헌신을 기리는 데 그 치지 않고, 그들이 남긴 과제 등을 냉정하게 돌아보면서 민주화 운 동이 일구어 낸 성과의 제도화와 각종 한계보완, 그 과정에서 새로 운 세대와의 소통, 사회적 다양성의 포용, 그리고 권력의 투명한 운영 등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렇다. 이해찬 전 총리의 별세는 한 시대의 마감이자, 새로운 시 대적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민주화운동 세대의 경험을 미래 세대와 공유하고, 그 정신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민사회와 정치권 모두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하는 사회적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특히, 민주화는 완결된 역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는 그들의 헌신을 기억하되, 직접민주제 도입강화와 평화통일 등 오늘날 현실에서 또 내일 요구되는 과제 및 각 세대가 맡아야만 하는 적절한 역할이 무엇인지 등을 스스로 에게 각각 끊임없이 질문해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