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점일획의 절대적 권위와 1,500년의 거대한 서사… 인류의 영혼을 빚어온 두 경전의 비밀
이집트 카이로의 유서 깊은 알-아즈하르 도서관, 수백 년 된 양피지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그곳에서 나는 한 노학자가 ‘꾸란’을 필사하는 장면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의 붓끝은 숨소리조차 멈춘 듯 정교하게 움직였다. “이 글자는 인간의 창작물이 아니라, 하늘의 보좌에 있는 원형이 지상으로 내려온 것이라네.” 그의 목소리에는 경전을 향한 경외심이 가득했다.
반면, 예루살렘의 좁은 골목길 성서 박물관에서 만난 어느 수도사는 닳고 닳은 ‘성경’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이 안에는 1,500년 동안 하나님과 함께 울고 웃었던 인간들의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중동의 거친 모래바람과 서구의 고요한 수도원 사이를 오가며 내가 목격한 것은,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닌 인류 문명의 뼈대를 이룬 두 ‘거룩한 음성’이었다. 이슬람의 꾸란이 하늘에서 직접 ‘내려온’ 절대적 권위의 결정체라면, 기독교의 성경은 인간의 역사 속으로 ‘찾아오신’ 신의 점진적 계시다. 이 두 경전이 어떤 산고를 거쳐 우리 손에 쥐어졌으며, 무엇이 그토록 수많은 이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는지, 그 장엄한 형성 과정과 권위의 뿌리를 추적한다.
하늘의 음성을 기록하다: ‘직설’의 꾸란과 ‘영감’의 성경
이슬람에서 꾸란은 ‘내려보내진 것(Tanzil)’이다. 610년 히라 동굴에서 시작하여 23년 동안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을 통해 전달된 알라의 직접적인 말씀으로 무슬림들은 믿는다. 무슬림들에게 무함마드는 저자가 아닌 ‘전달자’였다. 그는 들리는 대로 읊었고, 동료들은 그것을 대추야자 잎사귀나 뼈, 가슴속에 새겼다.
무함마드 사후, 3대 칼리파 우스만 시대에 이르러 표준화된 정경이 완성되었다. 꾸란의 형성 과정은 ‘완벽한 보존’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은 아랍어 꾸란만이 진짜 꾸란이며, 번역본은 단지 ‘해설서’일 뿐이라는 주장은 꾸란이 가진 절대적 권위의 원천이다.
기독교 개혁 복음주의 관점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Inspiration)’으로 기록된 책이다. 약 40명의 저자가 1,500년이라는 방대한 시간 동안 기록했다. 여기에는 왕, 어부, 의사, 목자 등 다양한 인간의 삶이 녹아 있다. 하나님은 저자들의 인성과 문체, 역사적 배경을 그대로 사용하시면서도 성령의 감동을 통해 오직 진리만을 기록하게 하셨다.
성경은 구약의 약속이 신약의 예수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으로 수렴되는 ‘점진적 계시’의 과정을 거친다. 꾸란이 하늘에서 떨어진 ‘완제품’이라면, 성경은 긴 역사의 터널을 지나며 완성된 ‘거대한 유기체’와 같다.
‘책이 된 말씀’과 ‘육신이 된 말씀’: 권위의 본질
이슬람 신학에서 꾸란은 ‘영원 전부터 존재한 하나님의 속성’이다. 이를 ‘인리브레이션(Inlibration, 말씀의 도서화)’이라 부른다. 기독교가 말씀이 ‘인간(예수)’이 되었다고 믿는다면, 이슬람은 말씀이 ‘책’이 되었다고 믿는다. 따라서 꾸란은 그 자체가 기적이며, 아랍어 문장 하나하나가 신성한 힘을 가진다. 무슬림이 꾸란을 암송(타즈위드)하고 정교하게 필사(캘리그래피)하는 행위는 신과 직접 소통하는 가장 거룩한 의례다. 꾸란의 권위는 그 언어적 완벽성과 신적 기원에서 나온다.
기독교 정경(Canon)의 권위는 ‘성령의 증거’와 ‘사도성’에 뿌리를 둔다. 초대 교회는 수많은 문서 중 성령의 감동이 명백하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히 증언하는 66권을 정경으로 확정했다. 성경은 그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자 예수께로 인도하는 ‘길’이다. 기독교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외치며 모든 전통과 교회의 권위 위에 성경을 두었다. 성경의 권위는 그 문자의 마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음성’에 있다.
읊조리는 암송과 번역되는 생명: 삶 속의 경전
중동의 시장이나 광장에 서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꾸란 낭송 소리를 듣게 된다. 무슬림 어린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꾸란 전권을 암기하는 ‘하피즈(Hafiz)’가 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긴다. 아랍어를 모르는 무슬림조차 아랍어 꾸란을 소리 내어 읽으며 평안을 얻는다. 꾸란은 일상의 법도이자, 예술의 영감이며, 죽음의 순간 곁을 지키는 유일한 위로다. 이슬람의 현장에서 꾸란은 ‘변하지 않는 바위’처럼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구심점이다.
기독교의 현장은 ‘번역의 역사’다. 성경은 모든 민족이 자기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듣게 하려는 열망으로 3,0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16세기 종교 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한 이유는, 말씀이 학자들의 서재를 넘어 평범한 농부의 식탁 위에 놓여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각 시대와 문화의 옷을 입고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개인의 양심과 사회를 변화시킨다. 기독교의 현장에서 성경은 ‘흐르는 생명수’처럼 매일의 삶을 새롭게 빚어가는 역동적인 에너지다.
당신의 가슴에 새겨진 경전은 무엇인가
오늘 두 경전이 공통으로 지향하는 바를 비교해 보았다. 결국 신이 우리에게 글자로 된 책을 주신 이유는, 그 글자를 통해 인간의 비루한 일상을 ‘거룩한 이야기’로 바꾸고 싶어 하셨기 때문이다. 꾸란의 준엄한 외침은 무질서한 삶을 신의 질서 아래 세웠고, 성경의 따뜻한 서사는 소외된 영혼을 신의 자녀로 회복시켰다.
우리는 경전을 ‘소유’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이슬람의 철저한 보존 정신은 우리에게 진리의 절대성을 일깨우고, 기독교의 역동적인 번역 정신은 우리에게 진리의 현재성을 가르친다. 당신의 책상 위에 놓인 그 경전이 먼지만 쌓인 골동품인가, 아니면 당신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생명의 편지인가? 하늘의 음성이 지상의 언어가 된 이 신비로운 사건은, 오늘 당신이 그 책장을 펼쳐 들 때 비로소 완성된다. 말씀의 집 안으로 들어가라. 그곳에 당신의 잃어버린 이름과 영원한 안식이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