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BBC Epstein Files
미국은 트럼프 임명 전부터 논의가 되었던 엡스타인 파일로 여전히 시끄럽다. 엡스타인 섬에 놀러 간 유명인에 빌 게이츠 같이 생각지도 못한 인물도 있고, 노암 참스키(https://www.theguardian.com/us-news/2026/feb/03/epstein-files-noam-chomsky) 같은 대학자도 엡스타인과 주고 받은 메일로 구설수에 올랐다.
엡스타인이 유명인과 찍은 사진에 누가 또 튀어나올지 모르지만, 언론의 힘을 느끼고 있다. 3백만장이 넘는 엡스타인 파일을 한 번에 공개하지 않고, 하나씩 나오고 있다. 언론이 겨냥하는 인물이나 기삿거리가 될 것 같은 인물을 택해 기사가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결국 엡스타인 파일을 가진 주류 언론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우리는 사실을 알 수밖에 없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2022년 무렵에는 엡스타인과 관련하여 길레인 맥스웰(Ghislaine Noelle Marion Maxwell)이라는 인물이 가장 거론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넷플릭스 기록 영화뿐 아니라 다양한 방송에서 그녀를 다룬 영상이 제작되었다.
한때는 노암 촘스키가 현재는 빌 게이츠가 미국 언론에는 가장 논란이 되는 인물 같다. 언어학자이자 철학자인 노암 촘스키는 2020년 뉴욕타임즈 이작 크로티너(Isaac Chotiner)와 인터뷰에서 트럼프에 대해 ‘인류 역사에서 최악의 범죄자(the worst criminal in human history)’라는 발언을 할 정도로 사회 문제에 지속적으로 발언해 왔다.
유럽은 나라별로 자기 나라에 속하는 인물들로 논란 중이다. 노르웨이는 왕실에 속한 왕위 계승자 부인인 메테 마리트가 엡스타인과 친분으로 사과했다. (https://www.bbc.com/news/articles/c78v8wx6jjxo)
영국 수상은 자기가 임명한 미국대사 멘델슨(Mandelson)과 엡스타인 관련에 대해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https://www.bbc.com/news/articles/cp37v4kyv3eo) 그리고 멘델슨 미국대사는 사임했다.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사실 이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이 사건이 사회적 공론화 되면서 악몽을 다시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용기를 내서 언론에 자신의 이야기를 한 피해자도 있지만, 그것조차 못하는 피해자도 있을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이지만, 사죄가 먼저 이루어지고 피해자가 용서하는 게 순리라고 생각한다. 영화 ‘밀양’에서 잘 묘사하듯, 당사자에게 제대로 된 사죄를 하지도 않고 자신은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범죄자는 피해자에게 다시 상처를 준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그 장면에서 우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죄, 제멋대로 생각하는 범죄자에게 상처받는 피해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 중 하나이다. 또한 연습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인 것 같다.
일본 전범들이 일제강점기 저지른 잘못에 대해 제대로 된 사죄를 받지 못한 지 80년이 넘어가고 있다. 일본도 ‘도게자’라던지 잘못했을 때 최선을 다해 용서를 비는 문화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유감’이라는 말 수준의 사죄밖에 받지 못했다.
국가가 제대로 사죄를 받았다면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일본 문화를 즐기고 일본 소설이나 책을 읽고 여행을 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것이 사회생활을 하는 인류가 해야 하는 도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거나 자기 정당화로 일생을 보낼 수 있다. 제대로 된 사죄를 하고 용서를 받고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물론 상사람이 용서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선량한 시민이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빌 게이츠처럼 돈이 많든 노암 촘스키처럼 사회에서 높은 존경을 받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법이 공정하게 적용되는 사회일 것이다. 또 법은 어기지 않았더라도 공인이라면, 유명세가 있는 공인일수록 말과 행동에 신중히 하기를 바라게 된다.
물론 언론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라도 다시 한번 그 손가락이 제대로 가리키는지 확인해 보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언론의 잘못된 손가락질로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